희극적인 비극--곽산지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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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적인 비극
정주 곽산지서 수감사건(1945.10. 1주일 가량)
"선생님은 40년 동안 감옥에 들락날락하기를 여섯 번이나 했어요. 감옥에서 5년 이상 살았다구요. 욕을 먹은 것도 천하에, 역사 이래 나 이상 욕먹은 사람이 없다구요. 눈물을, 피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이북에 가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세 번까지 감옥살이도 했지만 말예요, 그때는 돈 때문에 걸려 들어갔다구요. 돈 때문에. 화폐문제 때문에 걸려 들어 갔던 거예요. 이걸 전부 다 끊기 위해, 돈에 대한 미련을 끊기 위한 것이라구요. 일체를 부정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참부모님 생애노정Ⅱ> page 69
1. 참아버님의 6대 고난의 노정 개관
복귀해야하는 섭리노정에서 탕감조건으로서의 고난은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사탄數라 알려진 6수의 고개를 넘어야 할 필연인가, 아니면 이른바 6천년 복귀역사에 필요한 여섯고개 때문인가? 참으로 보통의 인간들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모진 고난의 길을 여섯차례에 걸쳐 헤쳐 나오신 길이 ‘고난의 노정’인 것이다. 이를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44.10~’45.02 (약4개월) 경기경찰부. 일본에서의 지하 애국활동 조사.
2] ‘45.10.초 (5일 전후) 곽산지서. 위폐소지 혐의.
3] ‘46.08.11~11.21.(3월 10일) 대동보안서. 종교사칭 사기 혐의.(복중교 사건)
4] ‘48.02.22~’50.10.14.(2년 8월) 흥남감옥. 남한의 스파이 혐의.
5] ‘55.07.04.~10.04.(3월) 서대문형무소. 병역법 위반 혐의.(이대,연대 사건)
6] ‘84.07.20~’85.08.20.(1년 1월) 댄버리. 예금이자소득세 탈루혐의.
위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를 나라별로 구분해 보면 일본(1]), 북한(2~4]), 남한(5]), 미국(6]) 등 4개국에 걸쳐있고, 영어살이의 기간은 4년 8개월이 된다.
2. 희극적 비극인 ‘곽산지서 수감 사건’
일반적으로 통일가의 모든 식구들은 많은 증언과 말씀을 통해 위 2]번의 곽산지서 수감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분명 6大 고난의 노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곽산지서 사건은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한 것이다. 아마도 가장 짧은 기간의 고난인데다, 그를 증언하는 분이 유일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 이 사건 전후의 상황
‘43년 10월 중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신 참아버님께서는 아찔했던 관부연락선 ‘골론마루(崑崙丸)’ 피격사건을 피해 무사히 귀국하셨다. 그리고 이듬해(1944) 2월경, 원래 아버님께서는 ‘만주전업’이라는 전기회사에 취직이 되시어 하얼빈 위의 하이라얼 이라는데서 소련, 중국, 몽고어를 익히기 위해 거주하실 생각이셨으나, 당시 국제정세가 여의치 아니하여 그 회사를 포기하시고, ‘44.3월경에 ’가시마구미(鹿島組)‘라는 회사의 전기부에 취업하시게 된다. 그리고 하늘의 명령에 따라, ’44.05.04.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평양 새 예수교의 이호빈 목사의 주례로 곽산출신의 崔先吉님과 결혼식을 올리시게 된다.
“선생님이 뜻을 알고나서 성진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그 사람도 영계의 지시하에서 만난거라구요.” <참부모님 생애노정Ⅰ> P257
2] 곽산지서사건의 전말
갑과 을은 사촌형제 간 이었다. 을은 심성이 착하고 순한데다 노래도 잘 했는데, 평소 인물 좋고 공부 잘하는 갑(형)을 무척 존경하며 잘 따랐다. 1945년 10월 초순 어느 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당시 신혼 초였던 갑이 정주군 곽산(면)에 있는 처가에 가기위해 사촌 동생인 을을 불러 동행을 요청했다. 어려서부터 자주 함께 어울리는 사이였기 때문에 기꺼이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면 소재지의 한 과일가게에서 처가에 가지고 갈 사과 한 상자를 사게 되었는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당시 사과 한상자에 70~80원이라서 갑은 회사에서 월급으로 받은 100원짜리를 건냈는데, 가게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그 100원짜리가 위조지폐라고 지서에 신고해 버렸고, 꼼짝없이 갑과 을은 그 지서의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 남과 북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3개월 밖에 안 되었고, 각자 다른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데, 상대방의 경제교란을 위해 위조지폐를 유통시킬 위험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실정이었다 함)
지서 유치장에서의 상황 :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아우 을은 그 무섭던 ‘순사’에 이끌려온 유치장이라는 데에서 잔뜩 겁을 먹고 어찌나 떨던지,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하며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형인 갑은 추워서 그러나 보다 하고 외투를 벗어 덮어 주었다고 한다.
한편, 위폐범과 같은 중요 경제사범은 지서장이 처리할 수 없어 상부인 (정주)군 경찰서에 보고하고서 그 처리 지침을 받아야 했는데, 군경찰서장이 깜짝 놀라 직접 순방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경찰서장은 갑의 옛 초등학교 담임선생이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서장은 갑의 인물됨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책임하에 둘을 석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2000년대에 노래 잘 하시던 문용기 장로님께서 간증하신 내용으로, <사보>어느 호에 실렸는데, 필자가 읽은 후 기억을 더듬어 구성해 본 내용이다.여기서 갑은 물론 참아버님이시고, 을은 문장로님이다.---
은행원이 되면 가장 먼저 돈세는 연습을 지겹토록 시킨다.(지금은 기계가 있어 다르지만) 그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어서인데, 하나는 실제로 돈을 빨리 세어야 하는 필요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으로 돈 다발이 가치있는 물건이 아니고 취급하는 상품 일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즉, ‘견물생심’이 들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참아버님께서는 위의 곽산지서 사건을 ‘돈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노라고 규정하셨다. 살피건대 철없는 세상 사람들은 아버님의 6개의 별에 대하여 ‘아니 땐 굴둑에 연기나랴’하면서 그 억울함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지 않지만, 위 사건이 보여 준 바와 같이 별을 달아야 하는 범죄가 있어서가 아니고 모두가 탕감복귀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어두움의 세력에 의한 ‘억울한 고난’이었음을 교훈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오죽하면 가장 위험하고 힘들었던 흥남감옥에서의 수인번호가 ‘596’(억울한 번호)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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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선생님은 여섯 번 감옥에 갔는데 묵묵히 다녀왔다.
감옥에 가더라도 원수의 개념을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평양에 갈 때 27세였다.
이번 사건은 하늘이 지켜준 사건인 것을 세계가 다 알게 돼 있다.
너희들도 선생님이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천국 들어갈 수 없다.
하늘만이 봄을 맞이하고 하늘만이 백성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중요한 식에는 예복을 입고 참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간 길을 너희들 누구든지 따라서 가야 한다.
너희들이 부모로서의 할 일 남편으로서 할 일 왕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선생님과 일심 일체가 되어 남겨야 한다. 심정의 담이 남아 있으면 안 된다.
만주평야의 제일 큰 땅에 송화강이 있고 거기에 사람 키보다 더 큰 메기가 있다.
절대성을 지켜야 한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가 없어야 한다.
우리 외갓집은 경주김씨 안동김씨이다. 경주김씨나 안동김씨는 같은 거와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인천 주안에서부터 고기를 잡아서 팔기 시작했다.
인천을 점령 못 하게 되면 서울을 점령할 수 없다. 맥아더 장군도 그렇게 했다. 이것은 섭리사관과 맞게 되어 있다.
지상을 천국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 놀음을 선생님이 하고 있다.
축복 가정은 3대를 품기 전에는 씨족이 축복 받을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은 중국인과 일본인에게 생식기를 잘리는 수난을 겪어왔다.
문총재 이상권 외에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족속이 국가 앞에 달려야 한다. 족속 앞에 국가가 달릴 수 없는 것이다. 족속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가 있을 수 없다.
고구려인의 해방의 날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것을 선생님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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