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8, 중국불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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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佛敎
[槪觀]
불교는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 경 <베다>의 전통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사상가인 사문에 속한 혁신사상으로 처음 출현 하였다. 석가는 인생의 고통을 벗어나는 해탈의 방법으로 ‘三法印’ 또는 ‘四聖蹄’를 제시하였고, 구체적인 수행 방법으로 八正道를 가르쳤다. 불교는 이 세계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에 고정된 불변의 자아가 없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것이 ‘諸法無我’의 깨달음이며, 연기법의 인식이다. 연기법은 나는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원인-결과의 무수한 고리를 거쳐 만들어 낸 지금 여기에서의 현상적인 존재일 뿐, 결코 항상되고 불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불교는 수당시대의 천태, 화엄, 선 불교가 해당되는데, 인도 유식 불교의 아라야식 연기가 중국 불교의 진여 연기로 변화하였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진여 연기론은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1. 불교의 思想史的 背景 : 革新思想으로의 불교의 등장
불교가 출현한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전통 <베다>를 신봉하는 바라문과 그를 반대하는 사문이라는 신흥 사상가 그룹으로 크게 이분되어 있었다. 바라문은 종교적 제사를 주관하고 세습되며 혈통의 순수성을 존중하였으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인 아트만이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만과 동일하다는 ‘범아일여’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바라문에 대항하는 세력인 사문은 혁신적인 사상가이며 자유 수행자로서,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숲 속에 들어가 수행하고 설법하였고 그 설법의 대가로 받은 보시의 음식물로 생활하였다. 수행생활의 특징에 따라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도는 유행자, 숲에서만 수행하는 둔세자, 설법의 보답으로 보시된 음식으로만 생활하는 걸식자, 고행자, 비구 등으로 불리었고, 그들의 생활공동체인 상가의 지도자는 사문이라고 하여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베다>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언어적으로는 바라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의 언어인 프라크리트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계급을 불문하고 출가를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신흥도시들이 성장한 갠지스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혁신적인 사문들이 활동하였고, 석가도 바로 이들 가운데 한 사상가였다.
석가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떠나는 중도를 바른 견해라고 가르쳤다. 내용으로는 ‘三法印’ 또는 ‘사성제’이고, 구체적인 수행방법으로는 팔정도가 석가 교설의 핵심이다. 사성제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의미로서, 인생의 고통인 원인과 고통을 벗어나는 해탈의 방법을 4가지로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고성제 ;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
-집성제 ; 고통의 근원은 집착이라는 것.
-멸성제 ; 고통의 소멸은 열반이라는 것.
-도성제 ; 열반에 이르는 것은 도라는 것.
이를 간단히 ‘고, 집, 멸, 도’라고 표현한다.
이 사성제는 諸行無常, 諸法無我, 涅槃寂靜의 삼법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팔정도는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사유(正思惟), 올바른 말(正言), 올바른 행위(正業), 올바른 생활(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주의(正念), 올바른 선정(正定)을 뜻한다. 이 8가지에는 도덕성(戒, 계율), 정신집중(定, 삼매), 지혜(慧, 반야)라는 3단계 수행으로 요약된다.
불교는 인간 삶의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一切皆苦’의 실존적 상황을 얘기 한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는 인생을 ‘불난 집’에 비유하면서 여기에서 벗어날 해탈의 길을 찾으려고 하였다. 불교는 그 길을 이 세계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현상에 고정된 불변의 자아가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諸法無我’의 깨달음이며, 연기법의 인식이다. 緣起法의 기본내용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난 까닭에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고정불변하고 영원하며 무한한 가치를 지니며 우주의 대자아와 합일하는 자아는 실제로는 나의 착각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원인-결과의 무수한 고리를 거쳐 만들어낸 지금 여기에서의 현상적인 존재일 뿐, 결코 항상되고 불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수한 원인과 결과들, 즉 인연이 모여서 지금 여기의 내가 되었을 뿐, 그 인연이 흩어지면 바로 몇 가지의 물질적 원자들로 분리되어 소멸되어 버릴 존재가 바로 지금 여기의 나이다. 불교는 이를 ‘공’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현상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현상의 모습이 된다.(色卽是空, 空卽是色)
2. 중국불교의 특징 : 眞如緣起論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정착하기 까지는 의탁불교 시대, 격의불교 시대, 본의불교 시대라는 단계를 거쳐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 중국 불교로 재창조 되었다.
[의탁불교]는 불교가 도가사상의 한 일파로 이해되던 시기의 불교이고,
[격의불교]는 불교와 비슷한 도가사상의 개념, 즉 노자의 무나 장자의 소요개념을 빌려 공 사상을 이해하던 시기의 불교이다.
[본의불교]는 불교사상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시기의 불교이고, 종착점인 중국불교는 원래의 인도불교와는 아주 다르게 새롭게 창조된 불교이다.
중국불교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이렇게 천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적으로 중국화한 불교를 가리키며, 구체적으로 수당시대의 천태, 화엄, 선 불교가 여기에 해당 한다. 그런데 이때 중국화 하였다는 의미는 바로 인도 유식불교의 아라야식 연기가 중국불교의 ‘眞如緣起’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현상계의 모든 현상이 진심, 또는 진여에 의거하여 생겨난다고 보는 관점을 ‘진여연기’라고 한다.
아라야식 연기는 인도 유식불교의 緣起觀을 가리킨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아라야식에서 전변한다는 것이 아라야식 연기설의 내용이다.
[眞如緣起]는 중국및 한국불교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진여연기는 생멸 변화하지 않는 불생불멸의 실체인 진여가 생멸 변화하는 객관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불생불멸한 실체에서 생멸 변화 현상이 나온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진여연기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승기승론>에서는 이 모순을 “실체인 一心에 진여문과 생멸문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一心開二門).”라는 설명으로 해결한다. 실체인 일심에는 진여라는 문과 함께 생멸이라는 문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두 측면인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은 각각 모든 대상을 총섭하므로, 이 두 측면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인도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無明의 측면을 중시하고 외부의 절대적인 진리인 불성에 의지하여 훈습과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수행해 나갈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불교에서는 인간 내면의 각성을 중시하여 번뇌가 바로 보리이고 생사가 바로 열반이라고 하면서 깨달음 자체를 강조한다. 인도 유식불교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더러운 것을 모두 깨끗한 것으로 바꾸어 가야 하기 때문에 ‘革新’이라할 수 있고, 중국 천태, 화엄, 선 불교에서는 이미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불성, 즉 마음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심성을 되돌아 봄으로써 깨달을 수 있으므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유식불교에서는 진여를 생멸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아라야식과 진여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아라야식 만이 현상계의 본원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때 모든 중생이 아라야식에 본래 더러움이 없는 종자(無漏種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중생이 부처가 될 수는 없다. 이에 반하여 중국불교에서는 불성이라는 진여가 항상 편재하고 있으므로,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고 따라서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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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ㅁ도갑사연혁
도갑사는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96년 주지로 부임한 범각(梵覺)스님에 의해 '도갑사 성보관'이 건립되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제8차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도갑사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잡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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