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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8. 동아시아 정세와 일.명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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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8. 동아시아 정세와 일.명무역

1] 시대개관

남북조의 내란기, 특히 ‘간노노조란(觀應の 優亂)’을 계기로 하여 왜구들의 침구가 활발해 진다. 이 무렵 중국대륙에서는 원나라가 붕괴되고 1368년에 朱元璋이 명국을 건설하였고, 또 한반도에서는 고려왕조가 망하고 1392년 조선왕조가 건국 되는 격동기였다. 왜구는 이런 격동기를 조성하는 한 요인이 되는데, 이 시기의 왜구를 ‘前期倭寇’라고 한다.

명나라 태조인 홍무제(朱元璋)는 일본측에 왜구의 금압을 요구하였고, 이에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스도 일.명무역의 막대한 이익에 착안, 막부의 재정을 확립하고 외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명과의 국교를 열기로 결심하였다. 16세기가 되자, 왜구의 활동이 또 다시 활발해 졌다. 이 왜구를 ‘後期倭寇’라고 부르는데, 주로 동중국해와 동남아 해역에서 활동하였다.

2] 왜구와 고려. 명과 왜구

1) 왜구와 이성계 :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라 할 수 있다. 그는 왜구토벌 과정을 통하여 실력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1380.9 전북 운봉에서 벌어진 전투는 ‘황산대첩’이라 하여 유명하다.

당시 왜구의 우두머리는 ‘아지발도’라는 불과 나이 15세 안팎의 어린 나이에 용모와 무용이 뛰어난 장수로, 백마를 타고 전장을 휩쓸고 다니고 있었다. 고려 병사는 그를 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성계는 활로 아지발도를 쏘아 쓰러뜨림으로써 대승을 올릴 수 있었다.

“전사자들의 피로 흐르는 강물이 6~7일 동안이나 붉게 물들었고, 또 1600여 필의 말을 획득하였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2) 막부의 대응과 고려. 명에 끼친 왜구의 영향 : 당시 왜구는 이후 중국까지 침구해, 중국과 고려, 중국과 일본, 고려와 일본 사이의 외교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고려는 왜구의 금압을 종종 일본에 요청해, 막부나 규슈탄다이인 이마가와 료순도 이에 응했지만 곧바로 왜구를 금압할 수는 없었다.

당시 왜구행위를 한 주체세력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규슈 일대에서 남북조 내란의 주역으로 싸우고 있던 무장세력 들이었다. 그들은 전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량미와 노동력을 필요로 했는데, 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고려를 우선 침공한 것이었다. 왜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고려 국내에서는 신흥 무장세력 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대표격인 이성계에 의해 고려조는 멸망하고 조선왕조가 성립하는 중요한 하나의 원인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명의 태조인 홍무제는 건국 이듬해, 다자이후에 있던 남조측의 총대장인 정서장군 가네요시 왕자에게 왜구를 금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스의 권력이 확립되자, 일본 상인들은 막부에 대하여 명과의 무역촉진을 기대하였고, 이에 요시미스도 막부의 재정확립을 위해 명과의 국교를 열기로 결심 하였다.

1401년 요시미스는 규슈탄다이에 왜구를 단속할 것을 명령함과 동시에, 하카다의 상인과 승려를 사신으로 삼아서 명에 파견하여 통교할 것을 요청하였다. 명은 이에 대하여 일본을 속국으로 간주하고 ‘그대, 일본국왕원도의(日本國王源道義)’라고 부르는 국서로 답하면서, 조공선의 형식으로 무역할 것을 요구하였다. 요시미스는 이에 응하여 ‘日本國王臣源(일본국왕신원)’이라고 자칭하며 명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1404년부터 감합부(勘合符)‘를 사용하는 무역이 시작 되었다.

3] 일.명 무역

1) 勘合貿易 : 감합부는 명나라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행한 통제무역에 사용한 징표로, 그 배를 감합선이라 하고, 감합선은 10년에 한 번씩 오도록 정했지만 실제로는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또 1회에 10척이나 되는 감합선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1404년부터 시작된 감합무역은 1410년 까지 6차례 교역선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아카시카 요시미스의 아들 요시모치가 쇼군이 되자, 명에 대한 조공을 바치는 것을 싫어하여 이 무역을 중단 시켰다. 하지만 막부의 재정이 궁핍해져 무역을 안 할 수 없어 제6대 쇼군인 요시노리는 1432년 일.명무역을 재개하기로 하였다. 무역의 규정도 이때 개정되어, 10년에 한번, 선박은 3척, 승무원은 300명으로 정했다. 이후 1547년까지 11회 감합선이 파견되었다.

감합선은 명의 영파에서 입국허가를 받고 북경에서 교역을 하였다. 일본의 수출품은 구리. 유황. 금. 도검. 부채. 칠기 등이었고, 수입품은 동전. 생사. 견직물. 면사. 사탕. 도자기 등이었는데, 가장 이익이 많이 남았던 것은 생사로서 4~5배, 경우에 따라서는 20배의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2) 후기왜구 : 16세기의 동아시아는 중국 역사상 ‘북노남왜(北虜南倭)’라고 불릴 정도로, 북방의 몽고족의 침입과 더불어 동남지방의 해상에서는 왜구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이 시기의 왜구를 ‘후기왜구’라 부른다. 그 구성원은 왜구 중에 순수한 일본인은 20~30% 정도였고, 실제로는 중국인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왜구의 선단은 작게는 2~3척, 많게는 200~300척에 이르렀는데, 그 주된 근거지는 마쓰라. 대마도. 이키 등지로, 그 중에서도 유명한 두목은 규슈의 히라토(平戶). 고토(五島)지방에 본거지를 둔 중국인 왕직(王直)이었다.

3) 왜구왕 왕직 : 왕직은 중국 안휘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뛰어난 지략과 협기에 넘치는 리더십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1545년 경에 무역을 하기 위해 일본에 온 왕직은, 하카다 상인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 갔다. 그 이후, 일본인들 중에 중국에 가서 밀무역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점차로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에 활동하던 해구들의 대부분은 밀무역으로 인한 위험 속에서도 본국과 여러 외국, 특히 일본과의 통상을 중재하는 중개무역상을 통해 쌍방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었다. 왕직은 그러한 중개무역을 통해 한편으로는 해상에서의 적대세력을 배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본토의 관리. 토호 등과 교묘하게 결탁하여 거부. 거상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들 해구들의 두목은 중국 연해지방에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그 본거지는 일본에 두었다.

1557년 왕직이 체포되어 살해된 뒤로는 후기왜구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적단속령’을 발포하기에 이르자 마침내 사라지게 되었다.

4] 조.일관계

1) 오에이의 왜구와 삼포왜란 : 건국 초 조선은 왜구를 금지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한편 일본으로서도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기대하였으므로, 양국은 이해관계가 일치해 통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선은 1419년 대마도 출신자들로 구성된 왜구가 조선을 침구하자, 이를 계기로 세종이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토벌하였다. 20여척의 병선과 1만7천명의 병력으로 세종 때 행하여진 대마도 정벌을 일본에서는 ‘오에이(應永)의 외구(外寇)’라고 하는데, 막부는 조선의 대마도 정벌의 의도를 이해하였으므로 양국 사이의 무역은 지속되었다.

규슈. 주고쿠 지방의 다이묘와 호족들은 빈번하게 조선에 사절들을 파견하여 무역의 이익을 얻고자 하였으므로, 조선은 대마도의 소(宗)씨에게 이를 통제해 줄 것을 의뢰하여, 1443년 소씨와 계해조약을 맺고, 소씨가 파견하는 무역선을 1년에 50척으로 정하고 통신부를 가지고 무역하기로 하였다.

또 무역항도 부산포. 내이포. 염포의 소위 삼포에 한정하여, 삼포와 서울에 왜관을 설치하였다. 삼포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항거왜(恒居倭)라고 하였는데, 이 항거왜는 점차 증가하여 15세기 말에는 3천명을 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주 조선 관리들과 충돌하다가, 마침내 1510년에 ‘삼포왜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 후 그 특권은 대폭적으로 제한되어, 무역은 점차로 위축되어 갔다.

2) 조.일무역 : 당시 조선왕조와 일본 사이에 행하여진 무역에서 취급된 물품은, 일본의 수출품으로서 구리. 유황과 후추. 약재. 蘇木. 香木과 같은 동남아시아 산물들이고, 수입품은 綿紬나 목면 제품 외에 대장경도 대량으로 수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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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이봉배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경북왜관 의 지역명이 일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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