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13.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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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13.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1] 시대개관
‘헤이지의 난’에서 겐지 무사단을 제압하고 성립한 헤이시정권은 기요모리가 태정대신에 오르고 일족이 전체 국사직의 1/3을 차지하는 등, 권력이 헤이시 일족에 집중되면서 점점 전제화되어 갔다. 이런 헤이시의 전제정치는 고시라카와 상황. 귀족. 대사원. 지방 무사단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1180년 고시라카와 상황의 둘째아들인 모치히토왕(以仁王)이 전국의 겐지 무사들에게 헤이시를 타도하라고 명령한 것을 계기로 하여 이후 5년간에 걸쳐서 내란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 내란의 최종적인 승리자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당시 무사들의 최대관심사였던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무사세력의 결집에 성공하였다. 교토에서 관료제도를 장악함으로써 권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헤이시와는 달리, 일본의 동부지방인 가마쿠라(鎌倉)라고 하는 지방에 정권의 기반을 두고 이 지역 무사들의 지지를 정권의 확실한 토대로 삼고자 했던 요리토모는 무가 정권의 독자적인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요리토모는 고시라카와 상황이 죽은 뒤에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되지만, 그가 죽은 뒤에 쇼군직을 계승한 두 아들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어, 겐지 쇼군(源氏將軍)은 3대에 그치게 된다.
2]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미나모토씨는 가마쿠라를 본거지로 정하고 도코쿠 지방을 중심으로 무가정치를 개시했다. 그 정치조직은 사무라이도코로. 만도코로. 몬추조 등과 같이 무사의 통솔을 위한 실질적이고 간소한 것이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개시된 이 정권을 가마쿠라 막부라 하며, 막부가 멸망할 때 까지의 140년간을 가마쿠라시대라 한다.
가마쿠라막부는 쇼군과 무사 간의 주종관계를 토대로 성립했다. 쇼군은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무사를 고게닌(家人)이라하여 그들의 기존 영지를 인정하고 보호함과 동시에 슈고(守護)나 지토(地頭)로서 새로운 영지를 부여했다. 이를 고온(御恩)이라고 하는데, 그 대신에 고케닌은 쇼군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고, 전투가 있으면 생명을 걸고 봉공의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지방의 각국에는 여전히 조정이 국사를 임명하고 있었으며, 장원에는 귀족이나 사사의 권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해, 전국의 정치는 크게 조정과 막부의 이원체제하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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