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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19. 琉璃窓(유리창)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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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19. 琉璃窓(유리창)

鄭芝溶

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리, 반짝, 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조선지광> 제89호 (1930. 1)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하염없는 부성을 불과 10행에 담은 서정시다. 이광수의 <비둘기>, 김광균의 <은수저> 등도 어린 아이를 잃고 쓴 시들인데, 그 표현 기법에서는 적지않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본다.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인데도,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의 절제를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죽은 아이’와 서정적 자아(화자)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인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차단의 기능을 또한 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추상성을 중시하는 현대시의 중요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 이광수의 <비둘기>

오오 봄 아침에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

죽은 그 애가 퍽으나도 설게 듣던 비둘기

그 애가 가는 날 아침에도 꼭 저렇게 울더니.

그 애, 그 착한 딸이 죽은 지도 벌써 일년

(나두 죽어서 비둘기가 되고 싶어

산으로 돌아 다니며 울고 싶어) 하더니.

<조광> 1936. 5.

김광균의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문학> 1946. 7.

[鄭芝溶 1903~? ] 충북 옥천출생. 휘문고보 거쳐 교토의 도오시샤 대학 영문과 졸업. 휘문고보 교원, 이화여전 문과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휘문고보 재학 때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 발간. 30년대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 참신한 감각적 이미지의 시를 발표햇으며, <카톨릭 청년>(1933) 편집 고문시 이 상을 시단에 등장시켰고, <문장>을 통해서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켰다.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 1948. <산문> 194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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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parksinja님의 댓글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인데도,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의 절제를 보이고 있다.

정해관님의 댓글

정지용
출생 1902년
출생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사망 1950년 9월 25일
사망지 평양
사망원인 폭사로 예측
국적 대한제국
학력 도시샤 대학
직업 시인
종교 카톨릭
배우자 송재숙
자녀 구원(장녀)
부모 정태국/ 정미하

정지용(鄭芝溶, 음력 1902년 5월 15일/양력 1902년 6월 20일 ~ 1950년 9월 25일)은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호는 지용(池龍)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1]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생애
1902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서 한의학 한의사였던 부친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정은 유복한 편이었으나 정지용이 어릴 적에 홍수를 당하여 소년시절이 순탄치는 않았다. 1914년 옥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21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22년에 도일하여 도시샤 대학 영어와 영문과에서 수학한다. 1927년 26세 때 <향수>를 비롯한 문학작품 30여편을 발표하였고 1929년 도시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모교인 휘문고보의 영어과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한다. 1945년 해방된 후 휘문중학교 교직을 그만두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 전쟁시에 정치보위부에 붙잡혀 평양 감옥으로 이송되었으며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1988년 정지용의 시가 해금되었고 1989년 정지용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작품경향
시인 정지용은 초기엔 모더니즘과 종교적(로마 가톨릭 교회) 경향의 시를 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보다는 널리 알려진 작품 <향수>에서 보이듯이 후기엔 서정적이고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즘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그만의 시 세계를 평가 받고 있으며 전통지향적 자연시 혹은 산수시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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