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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16. <松花江의 뱃노래>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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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16. 松花江의 뱃노래

金東煥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 보면은 고국이 천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리나

갈 길은 만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 3)

정형률에 의거한 자유시로, 민요조에 분류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사시 <국경의 밤>과 같은 계열의 씩씩한 남성적 노래로 일제시대 우국지사들의 활동무대였던 북만주의 공간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4연) 우국지사의 눈에 비친 이역의 살벌한 강, 그것은 ‘우는 강’이었으리라. 그러나 ‘우는 강’ 때문에 운다는 ‘우는 장부’의 배치에서 망국인의 격렬한 ‘울음’이 승화되는 싯적 여운을 높인다.

[金東煥 1901~?] 호는 파인. 함북 경성 출생. 소설가 최정희 부군. 서울 중동학교 거쳐 일본 도오요오대학 문과 수료. 우리나라 신시사상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1925)을 내어 이광수. 주요한 등과 함께 文名을 떨쳤다. <삼천리> <삼천리문학>을 주재하였고, 6.25때 납북됨. 서사시집 <승천하는 청춘>, 춘원. 요한과의 공저인 <삼인 시가집>(1929), 서정시집 <해당화>(1942), <돌아온 날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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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parksinja님의 댓글

아~
어렵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정해관님의 댓글

최정희 (崔貞熙 1906. 12. 3 함북 성진~1990. 12. 21 서울.)
소설가.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심리묘사에 뛰어난 글을 썼다. 호는 담인(淡人). 15세에 함경남도 단천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살았으며, 1928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이듬해 서울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다. 한동안 유치원 보모로 근무하다 1930년 일본에 건너가 학생극예술좌에 참여했다. 귀국 후 〈삼천리〉 기자로 일했으며 1934년 2차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검거시 맹원도 아니면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6·25전쟁 때는 여자의 몸으로 공군종군작가단에 참가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국세청 자문위원, 한국여류문학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정당한 스파이〉(삼천리, 1931. 10)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초기에 발표한 〈명일의 식대〉·〈성좌〉 등은 자기고백적인 작품이다. 이어 〈문장〉에 발표된 〈지맥〉(1939)·〈인맥〉(1940)·〈천맥〉(1941)은 여성의 불행한 운명을 다루는 등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3부작이라 불린다. 여주인공들의 불행의 원인이 그들 개인에게 있고 도덕적 성실과 인내로 극복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8·15해방 후에는 사회의 혼란과 농촌의 궁핍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는데, 〈점례〉(문화, 1947. 4)·〈풍류잡히는 마을〉(백민, 1947. 9)·〈청량리역 근경〉(백민, 1947. 11) 등이 대표작이다. 소설집으로 〈녹색의 문〉(1954)·〈바람 속에서〉(1955)·〈인간사〉(1964)·〈찬란한 대낮〉(1976) 등이 있다. 1958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4년 여류문학상, 1971년 예술원상, 1983년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kmryel님의 댓글

엄동설한(嚴冬雪寒) 꽁꽁 얼어붙었던 땅바닥에
휘어질 듯 솟아오른 푸른 빛 막대
벚꽃잎이 날리거나 단풍잎이 날리거나
사시사철 변함없이 지조(志操)의 그림자
위태위태 부러질 듯 하면서도
곧고 곧게 그리고 꿋꿋이 하늘로 뻗쳐,
공기조차 없이 텅빈 줄기 속은
마음을 비운 無名의 賢者이다 !

정해관님의 댓글

[ 송화강] - 중국 동북의 길림성·흑룡강성을 관류하는 하천이다. 만주어로는 숭가리강이라고 한다. 길이 약 1,960km이며 흑룡강의 최대 지류이다. 백두산(白頭山)의 천지(天池)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길림성 북서단의 삼차하에서 눈강(嫩江)을 합친 뒤 북동쪽으로 물길이 바뀌어진다.. 하얼빈[哈爾濱]을 거쳐 의란(依蘭)에서 목단강(牧丹江)을 합치고, 다시 가목사(佳木斯)를 지나 흑룡강성 북동단에서 본류에 합류하고 있다. 송화강 유역은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BC 108년부터 부여가 이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정해관님의 댓글

생애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이다. 중동중학교 졸업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요 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함북에서 발행된 《북선일일보》를 비롯하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 발표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가 본격적인 등단작이다.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1925)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시적 특색으로는 국경 지대인 고향에서 얻은 북방적 정서와 강한 낭만성, 향토적인 느낌을 주는 민요풍의 언어를 들 수 있다.

1929년 종합월간지 《삼천리》와 문학지 《삼천리문학》을 창간해 운영했는데, 일제 강점기 말기에 삼천리사를 배경으로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위한 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광복 후 이광수, 최남선 등과 함께 문단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꼽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했다는 기록 이후 행적과 사망일시를 알 수 없다.

친일 작품으로는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이인석을 칭송하며 젊은이들에게 참전할 것을 촉구하는 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1943)을 비롯하여 총 23편이 밝혀져 있다.[1] 이는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수록자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편수임에도, 창작 작업보다는 단체 활동을 통한 친일 행적이 더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흥아보국단, 조선임전보국단,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민동원총진회, 대화동맹, 대의당 등 많은 친일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3남인 김영식이 김동환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한 예는 친일파로 지적되는 인물의 후손이 조상에 대한 친일 혐의를 인정한 드문 예로 종종 인용된다.[2]

두번째 부인이 소설가 최정희이며, 최정희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딸 김지원과 김채원도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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