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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7. <불 놀 이> ---주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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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7. <불 놀 이> 朱耀翰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 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으며,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위에 내어 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 다시 안 돌아 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 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달 따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 모란봉 높은 언덕 위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리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 박히고, 물결치는 뱃속에서 조름 오는 <리즘>의 형상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情態를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이는 욕심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 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위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 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컴컴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 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거늘--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창조> 창간호(1919년 2월호)--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5연의 산문체 구성과 표현을 취하고 있다. 얼핏 보면 산만한 형태의 표현인것 같으면서도, 발랄한 동적 구성과 표현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시사적 위치는 막중하다. 재래의 정형성을 벗어나서 그 스타일이 새롭다. 7.5조나 4.4조의 제한을 대담하게 탈피하고 있으며, 자유시로서의 상징성과 함축성이 내재된 발랄한 시상을 포착하였다.

-순수한 우리 말로 시를 쓰고자 했다.

-육당이나 춘원의 시에 나타난 계몽적 입장, 목적 의식이 과감히 배제되고, 예술적 차원으 로 육박했다.

朱耀翰 (1900~79) : 호는 송아. 평양출생. 도쿄 메이지학원과 제일교교를 거쳐 상하이 호강대학 졸업. 중학 때부터 시를 발표하여 김동인과 함께 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1919)를 발간하면서 신시의 선구자가 되었다. 김 억과 함께 신체시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 시를 진일보시킨 대표적 시인이다. 시집에 <아름다운 새벽> <복사꽃> <삼인 시가집> 등이 있다.

동아, 조선일보 편집국장. 민의원. 상공, 부흥부 장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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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김동건님의 댓글

'주요한' 님을 애기 하면 나는 인도의 詩聖이라 일컫는 '타 -고르'의 詩 한 首가 떠 오릅니다.

"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불의 하나인인 코리아 ! 그 등불 ......."

서기 1929년 일본을 방문한 시인께, 한국 방문 요청을 받고 아쉬운 가운데 인도 귀국길에 오르면서
1929.3.29 동아일보 도꾜지부 '이태로' 기자에게 건네준 詩 입니다.
급히 본사에 전했고 당시 동아일보 '주요한' 편집국장이 번역하여 1929.4.2 1면에 실려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재림론 강의때 많이 인용 해서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詩이죠.

문정현님의 댓글

1919년 2월에 발표된 자유시 한편으로 수요아침에
흔적을 남깁니다.
불놀이의 전체를 읽는건 처음입니다.
그 시대에 너는 조국이었고 광복을 향한 의지였을까요?

사랑잃은 청년의 가슴속 !~~
좀더 강열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속에서라도 더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

파란의 시대에 태어나서 풍운의 꿈을 다 이루신 귀한분의
작품을 대하면서, 2009년 용광로 같은 뜨거운 마음으로 지펴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주요한]
〈불놀이〉를 지어 한국근대시 형성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능성(綾城). 필명은 벌꽃·주락양(朱落陽). 호는 송아(頌兒).

목사인 아버지 공삼(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은 그의 아우이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선교목사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등부를 졸업했다. 중학시절에 회람잡지 〈사케비〉를 펴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도쿄 제1고등학교[東京第一高等學校]에 다니면서 1919년 2월 김동인·전영택 등과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펴냈고, 그해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1925년 후장대학[滬江大學]을 졸업했다. 1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1926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으며, 1929년 광주학생사건 때 잠시 투옥된 적도 있었다.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전무를 역임하고, 1935년부터 실업계에 입문하여 화신상회 이사로 근무했다. 8·15해방이 되자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민주당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1960년 재선되었으며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1965~73년 대한일보사 회장, 1968년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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