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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僊)脈과 風流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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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僊)脈과 風流道

 

                                     김 주 호(학회 부회장)

 

<요약>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원치 않는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는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대도(大道)가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선(仙: 僊)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신라 말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풍류도의 내력이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고 했다. 신선의 역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땅 위에 썩어 추악한 시신을 남기지 않는 종교는 선 밖에 없다. 풍류도의 핵심은 선이다. 선에는 죽음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그 원리는 천부경, 삼일신고에 제시되어 있다. 영육쌍수(靈肉雙修), 성통공완(性通功完), 반진일신(返眞一神)하여 ‘한’의 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비롯은 마침이 되고, 마침은 곧 비롯이 되니 본아(本我)는 본시 생(生)과 사(死)가 없는 영원불멸이다. 영육이 쌍수 하여 함께 노닐 다가 영육이 함께 천상천국으로 돌아가는 신선관이다. 동양의 우리나라를 근원으로 하는 선맥(仙脈)의 가지는 성서에 보듯 기독교에까지도 뻗고 있음을 살폈다.

중국의 선은 현실에 소극적이고, 처세에 초연해야하고, 현세와 멀어져야 함을 그 본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의 선은 현실 속에 뛰어들어 능동적인 구국 구세를 주도해 나가는 사상이다. 신라의 국선(國仙) 화랑이나 고구려의 조의선인(衣仙人)은 적극적 보국충정에 나섰던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내 자신이 천궁(天宮)에 살자는 것이고, 내 나라가 천궁을 이루자는 주의이다. 대단히 현실적인 신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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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一. 시작하며

二. 仙(僊)과 風流道

1. 仙과 僊(선)

2. 선의 연원

(1) 최초로 선을 창설

(2) 선은 영생사상

3. 선의 원리

(1) 단학파의 외도

(2) 天符經, 三一神誥에 선의 원리가

4. 선맥과 풍류도

(1) 仙人王儉과 풍류도

(2) 고구려의 皁衣仙人

(3) 신라의 國仙花郞

(4) 백제의 신선사상

(5) 기독교 聖書 속의 선 맥

三.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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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시작하며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원치 않는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고뇌하며 발버둥 치는 처절한 실존들이다. 인간에게 있어 영생불사의 길로 인도하는 대도(大道)가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선(仙: 僊)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에는 죽음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없는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선이야 말로 대도가 아닐까. 이 선이야 말로 인간에게 있어 본래의 대도요 상도(常道)임을 깨닫게 한다.

모든 종교가 우리 인간들에게 전하는 복음과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약속한 것이 아니겠는가. 참된 종교는 영원한 생명의 차원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노자, 공자, 모세, 예수, 무함마드, 크리슈나, 라마 등 선각들은 어둠속의 한기(寒氣)에 떨고 있는 인간들, 미개한 심전(心田)들에게 빛나는 불빛을 주고, 따뜻한 열을 주고 있다. 이들이 밝힌 진리의 등불로 무명고해의 중생은 개안(開眼)되고 미개한 마음 밭은 일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명 있는 존재의 본래적인 욕구는 죽음이 없는 영생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같이 원치 않는 죽음이란 왜 생긴 것일까. 기독교 성서는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 했으므로 죽음이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를 거꾸로 말하면 참고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지켰다면 죽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죽음이 없는 영생의 차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시작 됐던 것이다. 기독교 역시 영생의 복음을 들고 죽음 이후에 나온 종교인 것이다.

노자(老子)는『도덕경』에서 “大道廢有仁義”를 말했다. 즉 “대도가 폐한 이후에 인의의 종교가 있다”는 말이다. 유교, 불교, 도교와 그 밖의 종교들 역시 그 이후에 출현한 것들이다. 그 이전엔 본래의 대도가 있었을 뿐이다.

대도란 무엇인가. 고운 최치원은 ‘난랑비서(鸞朗碑序)’에서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는데 풍류(風流)라 한다. 종교를 창설한 근원이다. 이 가르침의 내용이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 실로 유교, 도교, 불교의 가르침을 이미 자체 속에 지니고 있다.”

 

고 밝혀 놓았다. 풍류도는 선도이므로 선사라는 역사책에 실려 있는 것이다. 풍류도 즉 선도가 모든 종교에 대한 근원성과 포함성을 지녔음을 말해 준다고 본다.

선사는 풍류도 즉 신선사상의 내용을 담은 역사서다. 그러나 이 귀중한 ‘선사’는 멸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신선역사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평양은 본시 선인 왕검의 집(平壤 本 仙人 王儉之 宅也)”

 

이라고 했다. 단군왕검의 이름이 보인 최고(最古)의 문적(文籍)이다.

선 곧 풍류도는 모든 종교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선의 풍류도는 본래적이고 제1의적 종교요, 차안(此岸)의 종교이다. 풍류도 이후의 유, 도, 불 등 모든 종교는 비 본래적이고 제2의적 종교요, 피안(彼岸)의 종교라 볼 수 있다.

그럼, 이 대도의 근원은 어디인가.『신사기』‘치화기’편에

 

“한웅이 사람으로 인간 세상에 오시어 대도를 세우시고 큰 가르침을 베푸시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감화 시켰다”

 

고 했다. 문헌상 최초로 등장한 이 대도가 곧 풍류도이다. 이는 이미 단군 이전 배달나라 한웅께서 대도를 펴셨다는 말이다. 이 내용은 대도의 연원을 알려주는 귀중한 정보이기도 하다.

이 선의 대도가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거쳐 삼국시대의 고구려에선 조의선인(皁衣仙人), 신라에선 화랑도(花郞道<徒>, 風流道, 風月道)로 나타났다. 신라는 당시 유입된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 속에서도 화랑도(풍류도)를 적극 육성한 결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요 풍류의 민족이면서 현실적으로 분단된 비극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더욱 이 대도인 풍류도와 그 정신과 사상을 되찾아 살리는 일이야 말로 온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통일의 대도를 열어 가는 일에도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풍류도의 본질은 선이다. 조의선인이니 국선화랑(國仙花郞)이니 말한다. 그러나 선을 제대로 설명해 놓은 문헌기록이나 선의 역사서조차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니 안타깝다. 오직 희미한 선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선의 오솔길을 뚫어가고픈 마음이다. 따라서 이 글은 풍류도의 본질인 선의 본의를 찾아 먼저 짚어 보고, 현묘한 대도인 풍류도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二. 仙(僊)과 風流道

 

1.仙과 僊(선)

먼저 선(仙)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자.『새 우리말 큰 사전』(신기철‧신용철 편저)에선 ‘선’을 영어로 ‘Cent’라 했고, 신선을

 

“선도를 닦아서 신통력을 얻은 사람. 속세를 떠나서 선경에 살며 온갖 고통이나 질병이 없고 늙지 않는다고 하는 상상의 사람”

 

이라고 했다. 고구려 27대 영류왕 7(624)년 당나라에서 전래 됐다고 설명해 놓았다. 선이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漢韓大辭典』에는

 

“‘仙’은 人변에 山이 합친 글자로서 山사람이라는 뜻이다. 산 속에 가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術을 얻은 사람”

 

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또 仙과 함께 僊(선)을 쓰기도 한다. 옥편에는 ‘仙: 신선선, 가볍게 날 선, 신선스러울 선’이라 했고, ‘僊: 선인선, 춤 훨훨 출 선’이라 했다. ‘遷’은 ‘옮길 천, 바뀔 천’자이다. 산바람을 뜻하는 ‘嵐(山氣, 山風也)’은 ‘아지랑이람, 폭풍 람’이라고 했다. 중국 사마천의『史記』등에도 신선사람을 ‘仙人’이나 ‘僊人’자로 표기하기도 했다. 仙과 僊을 같이 사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仙과 僊은 개념상 동의어인 듯 하나 차이를 갖는다고 본다. 동양철학자이며 한학자인 김범부(金凡父)는 仙과 僊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仙은 人변에 山字를 하거나 또는 僊字를 쓰는데 山에 사는 사람 또는 인간에서 천거(遷去)한 사람이란 뜻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즉 죽어서 땅에 파묻히는 것이 아닌 살아서 신선이 되는 것, 비양승고(飛揚昇高)라 표현한다.

최남선도

 

“僊자의 義가 본디 昇高를 의미함에 그침에서도 그 古義를 분명히 짐작할 것이요…”

 

했다.

유병덕은 위와 같은 내용을 말하는 글에서 ‘선거(僊去)’를 ‘천거(遷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귀적(歸寂) 또는 입적(入寂)이라고 하고 천화(遷化)라고도 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옮겨감을 뜻하는 것이겠다. 그곳을 니르바나(涅槃)의 세계라 한다.

仙과 僊은 같은 말이라고 본다. 그러나 ‘山 사람’이라는 仙 보다는 ‘천거(遷去)된 사람’이라는 뜻에서 ‘仙’과 ‘僊’ 두 글자는 다른 뜻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천거(遷去)된 사람’이란 자리에서 옮기어진 사람이다. 죽은 다음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라 산 채로 자리를 옮겨 신선(神仙)된 사람을 선인(僊人, 또는 遷人)이라 한다는 말이다.

저승이 아닌 이승에서 또 다른 ‘새 이승’ 즉 3차원에서 4차원 세계에로(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자재) 자리를 옮긴 사람이 선인(僊人)이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천부경에 “三이 四로 옮겨지고 五와 七로 고리(環, 圓)를 이룬다”(運三四成環五七)는 내용과 같다. 0은 시작도 마침도 없는 영원한 모습이다.

2.선의 연원

 

⑴최초로 선을 창설

일반적으로 선교 내지 선도를 중국에서 유입된 종교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선도의 교조를 노자(老子)로 잘못 알고 있다. 다음에 다시 다루겠지만 선의 원적지는 우리의 청구(靑丘)였다. 김범부는 선의 연원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한국의 선도는 조선에서 발생하였다. 그것이 중국으로 옮겨간 것이고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국 상대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다. 十二經(時 書 易 禮 春秋 論語 孟子 周禮 孝經 中庸 大學)등과 老子에도 없다. 춘추시대까지도 없었고 장자(莊子)에 비로소 선인 신인설이 비치고 초사(楚辭)에 나왔다. 전국시대에 해당한다.”

 

서기 3세기경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지은『포박자(抱朴子)』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적에 황제가 있었다. 그가 동방 청구(靑丘)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이란 책을 받아 가지고 모든 신들을 능히 불러 모아 부렸다.”

 

풍산(風山)은 옛날엔 ‘風’을 ‘발함풍’(訓蒙字會)이라고 했으니 이두표기에 따라 첫 음을 따 ‘風山’은 곧 ‘발산’이고 다시 ‘밝산-박산=白山’으로서 ‘한밝산(태백산, 백두산)’이요, ‘삼황내문’을 혹 ‘삼신내문(三神內文)’이라고도 하는데 신선도서(神仙道書) 가운데 중요한 책이라 하겠다. ‘청구(靑丘)’에 대해 이능화(李能和)가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중국 진자앙(陳子昻)의 글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자앙이 공동산(崆峒山)이 계구(薊丘)에 있다 하였은즉, 계구가 역시 청구(靑丘)에 있고 요동(遼東)에서 가깝다. 요동엔 옛날부터 또한 신선의 자취가 많다.”

 

또 황제(黃帝)가 공동산에서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었다고 했다. 광성자는 상고시대의 선인이다. 계구는 청구에 있고 요동에 가깝다고 했으며, 요동은 예로부터 선적(仙跡)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요동이 청구요, 청구는 오늘날 만주 요령지방이며 우리민족의 고토(古土)다. 그렇다면 광성자는 동이족 곧 우리민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자부선생은 발귀리(發貴理. 백두산 神市 시대의 선인)의 후예다. 황제는 자부선생으로부터 신선도를 배웠다. 한편 황제를 중국 신선의 조종(祖宗)이라 하며, 황제가 화(化)해서 노자(老子)가 됐다는 뜻에서 ‘황노교(黃老敎)’ 또는 ‘황노의 학(黃老之學)라 한다.(司馬遷의『史記』, 宋 范曄 撰『後漢書』) 그렇다면 신선사상의 연원지는 우리나라가 된다.

또 황제의 신원이 중국 조상이 아니고 우리 동이인(東夷人)이었다는 사실이다. 즉『초사(楚辭)』에 “황제는 백민(白民<밝 겨레>)에서 났고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黃帝 生於白民…自屬東夷).”라고 했다. 이렇듯 황제가 동이족에 속하고, 황제의 학통(學統) 역시 동이족인 자부선생(선인)으로부터 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단군 3대의 일과 최근 도가의 삼청설은 다 우리 해동(海東)이 신선의 연원이라고 국내의 전적(典籍)들이 한 결 같이 말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나 공동(崆峒)에 있는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지은『포박자』에는 황제가 동쪽 청구에 와서 자부선생에게서 삼황내문을 받았다고 한다. 자부선생은 즉 동왕공(東王公)으로서 그가 동방에 있는 까닭에 그를 동군(東君)이라 이르는 것이다. 단군은 동방 최초의 임금으로서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하였으므로 단군(壇君)이라 하며 그 군자(君字)는 동군(東君) 제군(帝君) 및 진군(眞君)등 선가(仙家)를 이르는 말이며 이는 또한 운중군(雲中君) 상군(湘君) 신군(神君)의 이름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선(仙)이라 말할 수 있고 신(神)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신이나 선은 다 고대의 일이므로 깊이 연구하려해도 탐구할 수 없으니 다만 옛일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나라때 방사(方士) 한종(韓終)이 동국에 온 자취에 대해서는 그 증거가 확실하며, 노생(盧生)과 장량(張良)이 동국에 와서 녹도(籙圖)를 구해 가지고 혹 도우(道友)를 찾은 듯도 한데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면 칠팔분 방불(彷佛)함이 있다 하겠다.”

최인(崔仁)은『韓國學講義』에서 중국의 도교와 우리나라의 도교가 별개임을 말하고 있다.

 

“도교는 신선사상으로 창설한 종교이다. 중국의 노자가 신선사상으로 창설한 교를 도교라 칭한다. 노자는 중국의 신선사상으로 도교를 창설하고, 고구려의 동명왕은 한국의 신선사상으로 독특한 도교를 창설하였다. 단군은 죽지 않고(不死) 산에 든(入山) 신선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동명왕이 단군의 자(子)라 하였다. 즉 신선의 아들이라 하였다. 그리고 동문선(司馬遷의 史記 東文選)에 동명왕이 신선을 거느리고 하늘에 오르내리었다 하였다. 또 호태왕비문(好太王碑文) 첫 머리에 동명왕이 용을 타고 승천(昇天)하였다고 한다. 구삼국사기(舊三國史記)에 동명왕이 죽지 아니하고 승천하니 태자가 그 옥편(玉鞭)을 용산(龍山)에 장사하였다고 한다. 이상의 모든 기록을 고찰하면 동명왕이 고유한 신선사상을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 신선사상을 계승한 동명왕은 다시 신선사상을 발전시켜 고구려의 도교를 창설하였다.”

 

최인은 동명왕이 고유한 신선사상을 발전시켜 고구려의 도교(선교)를 창설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처럼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도교를 분리해 말하고 있다. 우리의 도교는 신선사상을 계승했으므로 선교 또는 선도라 하겠다.

이상으로 선의 연원이 우리나라이며,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가 도교의 옷을 입고 다시 우리나라에 역수입 됐다고 본다. 상고시대 황제에게 신선도를 전하고 가르쳐준 광성자나 자부선생은 모두 우리나라의 선조들이었다. 그 이후에도 한종 이나 장량 등이 청구(우리나라)에 와서 신선도를 배워갔음은 위의 글에서도 이미 확인한바다. 그러나 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신선도가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역수입 되었는지 관련 문헌 사료가 전무한 실정이어서 지금으로선 제대로 알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⑵선은 영생사상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에선 황제헌원(黃帝軒轅)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제가 동북에 있는 長白山(白頭山, 한밝산)에서 도를 닦아 성공하였다. 옛날 태호복희적에 이곳에서 자부선인을 비롯한 여러 이름난 큰 신선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글자 만드는 6가지 방법을 모아 적은 책인 6서(六書, 六籍)를 갖고 있었다.”

 

사마천의『사기(史記)』범엽(范曄)의『후한서(後漢書)』『진서(晋書: 唐, 太宗 文皇帝御撰)』등에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약이 있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는 배달나라인 발해에 있는 삼신산인데 다 같은 한 개의 산이라고 한다. 안호상은 북애의『규원사화』김교헌의『신단실기』이능화의『조선도교사』등을 인용, “한밝산이 곧 三神山”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밝산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바로 태백산(太白山)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제왕운기』에 삼위태백(三危太白)이라고 했다. 이는 곧 삼신산인 한밝산(太白山)이란 표현이다.

사마천의『사기』‘봉선서(封禪書)’ 등에선 중국 역대의 제왕들이 한밝산에서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을 구하고자 했다. 또 “진시황(秦始皇)이 서복(徐福, 徐市)으로 하여금 수많은 어린 아기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한밝산(태백산)에 가서 길이 살고 안 죽게 하는 신선들이 먹는 선약을 구해 오게 했다.”

또 한무제(漢武帝, BC2세기)는 이소군, 황추, 사관 등 방사들을 삼신산에 보내 신술(神術)을 배우고 불로불사약을 구해 오게 했다.

한 옛적부터 중국 사람들은 삼신산인 한밝산(太白山)을 높이고 동경 했다고 한다.『사기』의 ‘진시황 본기’ ‘한무제 본기’ 및 ‘봉선서’ 등이 하나같이 우리의 삼신산인 한밝산(밝산, 白山, 太白山)에 모든 신선들이 살고, 안 늙고 안 죽게 하는 불로초들이 모두 있다고 했다.

이 산은 단군한배검께서 맨 처음 내리고, 나라를 세우시고, 또 오르신 산이라고 했다. 여러 옛 책들은, “그분은 한얼님(하나님)이 낳으신 천제자(天帝子)요, 하나님과 같고, 또 한얼사람(神人, 天神人, 倧)인 까닭에 그분은 죽지 않는 신선이 되셨다” 한다. 즉, 일연의『삼국유사(三國遺事)』‘고기’에 “아사달(阿斯達, 아시땅)에 돌아와 산신이 되시다”했고,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는 ‘본기’의 글에 “한배검께서 아시땅에 돌아와 신이 되신 것은 안 죽는(不死) 까닭이다”했다. 어윤적의『동사연표(東史年表)』에선 “고기에 이르되, 임금 되신지 93년 만에 아시땅에 들어오셔서 신이 되시고 아들 부루가 임금이 되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김부식의『삼국사기』에는

 

“평양은 본시 신선사람(仙人) 왕검의 집이다”

 

했다. 또 김교헌의『신단실기』에

 

“단군께서 한울을 연지(開天) 217년 만에 신이 되셔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신(御天) 까닭에 세상사람들이 천선(天仙)이라 일컫는다”

 

고 했다.

여러 문헌들이 고조선 개국조 단군이 신인으로서 왕검자리에 오르시어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의 이념으로 93년동안 세상일을 마치시고(세상에 대한 기틀을 잡아 주시고) 아사달에서 신선이 되어 다시 ‘한얼(하늘)’의 본자리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를 반천(返天), 승천(昇天), 어천(御天)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동방의 우리나라를 “죽지 않는 군자의 나라(君子不死之國)”(산해경)라고 한 것은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유사상인 선(仙,僊)에는 죽음 자체가 없다. 죽지 않고 산 그대로 선화(仙‧僊化)되어 반천(返天)하는 것이다. 이는 죽은 다음 부활한다는 기독교의 부활사상과는 다른 점이다.

이 신선사상이야 말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신인일체‧천인합일 사상이요, 영생사상이다. 이것이 본래적 인간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다음 영혼이나 천당 극락 간다는 교리의 담벽을 넘어 자유자재하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대도(大道)의 경지에서 죽음이 없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3. 선의 원리

 

단학파의 외도

仙(僊)의 원리를 설명해 놓은 경전은 우리민족의 고유 뿌리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라 하겠다.

그런데 도교를 숭상하며 단학(丹學)에 몰두한 단학파들이 단학을 신선과 결부시키고 이른바 금단(金丹)이라는 제조된 약을 먹는 것은 선 본래의 의미에서 볼 때 변질된 외도이다. 단학은 신체를 단학제조의 틀로 보고 그 안에서 연단(鍊丹)하는 것이다. 금단은 외단학(外丹學)이고, 단학은 내단학(內丹學)이다. 이는 방술이라고 본다. 중국 도교의 영향이라 생각된다. 외단은 연단을 무쇠 솥이 달린 부엌에서 만들지만 내단은 배꼽아래 1분3촌의 단전(丹田)에서 기른다고 한다. 신체 내부에서 단을 찾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질로 조제된 약을 먹는 것이 외단이고, 정기신(精氣神)을 모으는 것이 내단 이다. 외단은 환약(丸藥)을 적용한다. 외단은 수은 같은 금석재료로 만든 연홍(鉛汞)을 불사약이라 하고, 운무(雲毋)를 물로 만들어 운무수를 먹으면 장생불사 한다고 믿었다. 그밖에 병의 근원인 바람기를 다스리는 약재로 구기자, 운무, 창출(蒼朮), 오가피, 감국(甘菊)등이 재료로 사용된다.

이러한 약의 힘을 빌려 불로장생, 영생불사의 신선이 되는 방법을 찾는 도교야 말로 외도에 치우친 종교가 아닐 수 없다. 외단 즉 약을 먹고 불로장생하여 신선이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권세를 가진 역대의 제왕이나 권문세가들, 재벌 부호들만이 고가의 약을 먹고 다 신선이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종교의 본질은 마음을 닦고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는데 있다. 대도가 폐한 이후에 나온 인의(仁義)의 종교도 본마음의 자리를 찾고, 무명을 걷어 내고 성품 닦기를 강조하고 있다.

『삼일신고』‘천궁훈(天宮訓)’에서

 

“오직 성에 통하고(性通) 공을 완성한(功完)자라야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 즉 천궁(天宮)에 오를 수 있다

 

고 했다. 오직 성품 닦기를 게을리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약 따위를 먹고 영생불사를 꿈꿀 수 있단 말인가. 약을 먹고 신선이 되겠다는 외단은 방술에 불과하며 선의 정도가 아니다.

 

⑵『天符經』『三一神誥』에 선의 원리가

이미 언급한바 있지만 선(仙‧:僊)의 본원은 단군에서 찾아진다. 여기서 전해지는 선의 소식은 장생불사의 대도이다. 이 대도가 현묘한 대도인 풍류도(風流道)이다. 지상에 있으면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개국 이념을 펼치시며 가르침을 주신 영생의 진리가 담긴 경전이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이다.

『천부경』은 한배 하나님이 이 세계를 이화(理化) 하시기 위해 화인강세(化人降世) 하시면서 교훈하신 경전이요,『삼일신고』는 교화를 끝내시고 어천(御天, 昇天, 返天) 하시면서 영궁(靈宮)에 오르시어 내리신 경전이다.『삼일신고 봉장기(奉藏記)』에 “육십갑자 두 번을 지난 무진년 상달 3일에 이르러서 영궁(靈宮)에 오르시어『삼일신고』를 탄훈(誕訓)하시니…(再週甲子之 戊辰 歲上月三日 御靈宮 誕訓 神誥)”했다. 이처럼 삼일신고는 어천 하시면서 탄훈하신 경전이다. 그래서 하강은 연역이요 승천은 귀납이라 할 수 있으니『천부경』은 연역적 경전이 되고『삼일신고』는 귀납적 경전이 되는 것이다. 또 경전의 내용상『천부경』은 우주의 근원 즉 하나님을 ‘一’로 표현 하였고,『삼일신고』는 ‘神’ 또는 ‘一神’으로 표현 하였다.

『천부경』은 ‘하나(一)에서 비롯하나 비롯이 없는 하나(一)이다. 하나에서 셋(三)으로 갈라져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로 시작한다. 이 ‘一’에서 천 지 인 ‘三’으로 나뉘어 나와 대 우주가 전개되는 원리를 숫자로써 설한 것으로, 때문에『천부경』은 ‘一’에서 ‘三’으로 연역되는 진리이다.『삼일신고』는 ‘一’에서 갈라져 나온 천 지 인 ‘三’이 다시 근원인 ‘一’로 되돌아가는 귀납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경전의 이름도『삼일신고』이다. 두 경전은 서로 연역적 진리와 귀납적 진리를 전하고 있어 상호 표리의 관계라 하겠다.

우주 만유가 오고(연역), 살고(존재), 가고(귀납) 하는 이 3대 난제를 『천부경』은 불과 81자로 해답했고,『삼일신고』는 360자로 해답해 주고 있다.

여기서 ‘一’은 산수의 숫자가 아니라 이치의 수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 이므로 영원 불변한 ‘一’이다. ‘一’은 순수한 우리말 ‘한’이다. 『천부경』은 ‘하나(一,한)에서 비롯하되 비롯이 없는 하나요, 하나에서 마치되 마침이 없는 하나(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라고 했다. 시작도 마침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한 ‘一(한)’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천 지 인이 하나가 되면 본래의 자리인 ‘一(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마침은 비롯이 되고, 비롯은 바로 마침이 되니 본아(本我)는 본시 生과 死가 없는 영원불변인 것이다.『천부경』은 이처럼 수로서 ‘一三三一’의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삼일신고』는 ‘一(한)’에서 나뉘어진 ‘三(천 지 인)’이 다시 그 근원인 ‘一(한)’로 복귀하는 귀납적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한’으로부터 나온 三(천 지 인)이 다시 한(하나님)의 자리로 ‘반진일신(返眞一神’)하는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삼일신고』‘진리훈’에는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3법을 수행하는 세 가지 수행법이 있어서 비록 상철(上哲) 중철(中哲) 하철(下哲)의 3철로 구분하지만 이 세 가지 중 어느 방법으로 통(通)하던지 지(知)를 하던지 보(保)를 하던지 이루게 되면 똑 같이 참성품(眞性) 참목숨(眞命) 참정기(眞精)의 삼진(三眞)을 회복하고 ‘한(一)’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고 했다.

또 ‘신훈(神訓)’편에서

 

“너희는 영성을 닦아 그 맑은 영혼에서 하나님 씨알을 찾으면 하나님은 이미 너희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어서(강재이뇌, 降在爾腦) 그가 참 내가 되었다”

 

고 한 것은 내가 곧 하나님이란 것을 말해 준다. 결국 ‘한’으로 귀결된다는 원리이다. ‘마음은 참성품을 돌이키고, 기운은 참목숨을 돌이키고, 몸은 참정기를 돌이키면 하나님이 된다’는 반진일신(返進一神)의 뜻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 몸에 강재이뇌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고, 그래서 다시 반진일신 하여 하나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성(性) 명(命) 정(精), 심(心) 기(氣) 신(身)은 신선사상의 원리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은 마음을 낳고, 명은 기를 낳고, 정은 육신을 낳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신선이 되어 감은 정에서 나온 육신이 다시 정으로 되돌아가는 원리인 것이다. 이 역시 一三三一의 원리라 할 것이다.

『삼일신고』의 ‘천궁훈(天宮訓)’에는

 

“하늘은 하나님나라다. 천궁(天宮)이 있으니 하늘에 오르는 계단은 만 번의 선을 행해야(階萬善) 오를 수 있고, 하늘의 문(天門)은 만 번의 덕을 쌓아야(門萬德) 열려진다.…오직 성통공완(性通功完)한 사람이라야 천궁에 들고 영원한 즐거움을 얻는다.”

 

고 했다. 그러니까 성통공완에 힘쓸 일이지 무슨 약으로 신선이 되려는 방술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자신이 지상에서부터 천궁에 살지 못하고, 내 나라가 천궁을 이루지 못했다면 죽은들 천궁에 갈 수 있을까.

우리말에 사람이 수(壽)를 다 하면 ‘죽었다’는 표현이 아닌 ‘돌아 가셨다’는 말로 추모한다. 이 말 뿌리 역시 선어(仙語)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우리의 고유한 신선관(神仙觀)은 육신 쓴 현실에서 이루어 가도록 되어 있다. 영육이 쌍수(雙修)하여 신선이 되어 노니다가 영육이 함께 천상천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삼일신고』끝 구절에

 

“밝은이는 느낌을 그치고(止感), 숨 쉼을 고루하며(調息), 부딪침을 금하여(禁觸) 한 곬으로 수행함으로써 가달을 돌이켜 참에로 나아가 큰 조화를 부리나니 참된 본성을 통달하고 모든 공적을 닦음이 곧 이것이니라.”

 

고 했다. 이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의 경지를 뜻한다 하겠다.

신선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이긴 하되 도를 완성하여 사람으로서의 본래의 자리를 찾은 사람을 일컫는다고 본다. 도(道) 자체엔 어떤 형체나 제약이나 대립조차 없다. 도를 이루면 바람처럼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 우리민족의 고유 신선사상이다.

 

4. 선맥과 풍류도

 

⑴ 仙人王儉과 풍류도

풍류도의 본원이요 창시자는 단군왕검이다. 그를 신인(神人) 또는 선인(仙人)이라고 한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을 개국하시고 세상일을 마친 다음 아사달에서 죽음을 보이지 않고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로 옮기어 가셨다고 한다. 이를 승천 또는 반천(返天이라고 한다. 이러한 단군이 창시한 도가 선도 또는 풍류도(단군도, 배달도, 선교, 풍교, 풍월도 등)라 이른다. 김부식이『삼국사기』에서 “평양은 본시 선인왕검의 집”이라고 한 그 선인왕검은 곧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선교의 창시자이며 고조선의 개국조로서 제정일치(祭政一致)를 구현 하셨던 분이라 본다.

단군이 창시한 선교 즉 풍류도는 세계 모든 종교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이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玄妙之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도(風流道)라 한다. 이는 종교를 창시한 근원이다(設敎之源). 이에 대한 내력이 선사(先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세 종교 즉 유교 도교 불교를 포함한 것으로 뭇 생명들을 사랑으로 접해 감화 시킨다.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 효도하고 나가선 나라에 충성하니 이것은 공자의 가르침이요, 하염없이(無爲) 일하며 말없이 행하니 이는 노자의 가르침이요, 모든 악함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함을 받들어 행하니 이는 석가의 가르침이다.”

 

유교 도교 불교가 있기 이전의 ‘현묘한 도’인 풍류도가 있었다고 했는데 곧 대도(大道)이다. 그러니까 유‧도‧불 그 밖의 고등종교들은 이미 노자가 도덕경 제18장(大道廢有仁義)에서 밝힌 것처럼 대도가 폐한 이후에 나온 인의(仁義)의 종교들인 것이다. ‘현묘한 도’는 곧 ‘선교(仙敎)이다. 또 갈홍(葛洪)의『포박자(抱朴子)』에 ‘선교(仙敎)’를 ‘현묘(玄妙)’라 칭했다(塞難, 卷七). 따라서 선교는 현묘한 도요, 현묘한 도는 곧 풍류도인 것이다.

그런데 단군왕검을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고 했다. 따라서 화랑(花郞)을 풍월주(風月主=배달님), 선랑(仙郞), 선인(仙人), 국선(國仙)이라 하는 것도 단군왕검(선인왕검)으로부터 유래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군왕검을 다른 선인들과 구별하여 하늘신선(天仙)이라고 했다(신단실기, 단군세기). 단군왕검의 세 신하인 토지관 팽우(彭虞), 사관 신지(神誌) 농관 고시(高矢)를 선관(仙官) 즉 선인관리라 했다. 단군왕검시대엔 뛰어나게 훌륭한 관리들이나 그런 사람에게는 특별히 선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옛날 선인들은 모두 선인왕검(仙人王儉, 天仙)으로부터 비롯됐다 할 것이다.

 

⑵ 고구려의 衣仙人

선인왕검으로부터 시작된 선풍(仙風)은 기자(奇子)를 거쳐 고구려시대에 그 사상과 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의 관공직은 12등급으로 나누는데 그 다섯째 급의 관직의 이름이 조의현대족(皂衣顯大足)이라 했다. 이 조의(皂衣)는 선인(仙人)인데 나라 정치를 맡아 보다가 3년 만에 한 번씩 바뀌나 정치를 잘하면 그렇지 아니하다.”

 

선인왕검께서 창설한 풍류도가 고구려에도 있었음을 신채호는『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통해 밝히고 있다.

 

“仙人王儉이라 함은, 삼국시대에 수두교도(蘇塗敎徒)의 一團을 ‘선배’라 칭하고 ‘선배’를 이두문으로 ‘仙人’ 혹은 ‘先人’이라 記한 것이며, 先史는 곧 王儉이 設敎以來 歷代 선배의 事蹟을 기록한 것이다. 後世에 佛‧儒敎가 서로 성하면서 ‘수두’의 敎가 쇠퇴하고 仙史도 없어져서 그 상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支那의 古書인 屈原의 楚辭, 司馬遷의 史記, 班固의 漢書에 散見한 것이 오히려 그 大槪를 알 수 있다.”

 

신채호는 이어

 

“대저 고구려가 망한 뒤에 선배의 遺黨들이 오히려 그 遺風을 保全하여 村落에 숨어 그 의무를 밟아 왔다. 선배의 명칭은 儒敎徒에게 빼앗기고 그 斷髮한 까닭으로 在家和尙이란 假名稱을 가지게 되었다. …松都의 手拍이 곧 선배 競技의 一部인데, 이 手拍이 支那에 들어가 拳法이 되고, 日本에 건너가 柔道가 되고, 朝鮮의 李朝에선 武風을 천시함으로 그 자취가 거의 없어졌다.”

 

신채호는 또 단군왕검이 풍류도, 국선의 시초이며 고구려 역사에서 조의선인을 통해 국선의 근원을 알 수 있다면서,

 

“고려사에서 李知白의 ‘仙郞을 中興시키자’던 爭論과 睿宗의 ‘四仙遺跡을 加榮하라’와 毅宗의 ‘國仙伏路를 重開하라’는 詔書로 보아 고려까지도 오히려 國仙의 道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조에서 선인왕검의 선맥인 풍류도 즉 국선도통(國仙道統)은 더욱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⑶ 신라의 國仙花郞

신라는 삼국 중 풍류도 즉 화랑(花郞)을 국가적 규모로 가장 크게 부흥시켰다. 화랑제도는 제23대 법흥왕 때부터이며, 제24대 진흥왕이 국가적 큰 규모로 일으켰다.

신라에선 ‘화랑’이란 이름을 한문을 빌어서 이두문(吏讀文)으로 다양하게 적었는데 안호상은『삼국사기』『여지승람』『삼국유사』등을 근거로 곧 風月, 風月主, 風月徒, 風流, 風流道, 風流徒, 花娘, 原花, 花主, 花郞, 花郞徒, 花徒, 郞徒, 香徒, 國仙花郞, 國仙, 國仙徒, 仙花, 仙郞, 仙徒, 仙人, 先人 등 22가지나 된다고 했다.(『단군과 화랑의 역사와 철학』118~119쪽.)

풍월(風月)이나 풍류(風流)는 다 같이 ‘배달’에 대한 이두표기로서 밝달-박달-배달인데 배달나라를 뜻하며 단군(檀君)이 배달임금이란 점에서 개국조 단군왕검에 그 근원을 둔다. 화랑(花郞)은 ‘꽃 사내’라는 뜻인데 국선화랑에 뽑히면 머리에 꽃을 꽂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따라서 화랑은 풍류도를 닦는 청소년들이다.

진흥왕은 천성이 고상하고, 크게 신선을 숭상(多尙神仙)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용모가 단정한 아가씨를 가려 원화(原花, 源花)로 받들게 했으나 준정랑이 남모랑을 시기 질투하여 몰래 죽인 사건으로 원화를 폐지 시켰다. 그러나 나라를 일으키자면 풍류도를 먼저 되살려야 한다는 뜻을 세우고 이번에는 ‘화랑(花娘, 꽃 아가씨)’을 고쳐 남자 아이들 만으로 ‘화랑(花郞, 꽃 사내)’이라 했다. 이 때 처음 설원랑(薛原郞)을 받들어 국선(國仙)으로 삼으니 이것이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시초라고 한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 보다 풍류도를 국가적 규모로 크게 부흥 발전시켰기에 김춘추, 김유신 등 걸출한 화랑들이 배출되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화랑들은 고유의 현묘한 대도인 풍류도를 닦기 위해 입산수도 했으며, 또 그 풍류도 속에는 유교, 불교, 선교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유교 속에 불교나 선교를 담을 수 없고, 불교 속에 유교를 담을 수 없으며, 선교 속에 불교나 유교를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풍류도 속에는 유‧불‧선 모두를 담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대도의 대기(大器)이자 신기(神器)요, 도해(道海)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귀산(貴山)과 추항(箒項) 두 화랑이 원광법사(圓光法師)를 찾아 평생의 계율로 삼을 좋은 말씀을 청했다. 원광은 불교에는 10가지 계율이 있으나 지금 세속에서 전래되어 쓰고 있는 5가지 계율을 쓰라고 가르쳐 주었다. 바로 세속오계(世俗五戒)이다. 첫째, 충성으로 임금을 섬김(事君以忠) 둘째, 효로서 어버이를 섬김(事親以孝) 셋째, 믿음으로써 벗을 사귐(交友以信) 넷째,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음(臨戰無退) 다섯째,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음(殺生有擇)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낭도들에게 충성, 효성, 신의, 용기, 정의를 가르친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을 보더라도 화랑도에는 유교와 불교, 선교의 가르침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울주 반구대 위에 전해지는 화랑 글씨, 가야산 옥류동 등에 선인 화랑들의 글씨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화랑들의 수련 장소였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수백 년 진행돼온 화랑역사에서 볼 때 그 흔적이 어찌 여기 뿐 이겠는가. 그러나 화랑도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어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달리 어떤 유습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아쉽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랑들이 수도하려 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수도 하였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대체로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유동식은『風流道와 한국의 종교사상』(49~51쪽. 연세대 출판부. 1997)에서 그 수련 과정은 첫째, 도의로서 서로 인격을 닦음(相磨以 道義), 둘째, 서로 가락을 즐김(相悅以 歌樂) 셋째,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 노님(遊娛山水)이라고 했다. 그는 화랑의 성격을 ①화랑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들의 국가, 사회적 교육기관 ②전통적 하나님신앙(천신신앙)을 기초로 한 종교적 청소년 집단 ③노래, 춤 등 놀이를 특징으로 한 풍류 집단 ④국가 유사시에는 호국을 위해 헌신하는 호국청년집단으로 보았다. 그러나 화랑도가 노래하고 춤추고 풍월이나 읊는 집단이 아니며, 풍류도 수련의 본의는 대도인 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 화랑도가 일본으로 건너가 수험도(修驗道)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근기(近畿) 지방의 대봉산(大峰山)이라는 곳에 수험도라 불려지는 근본도장(根本道場)이 있다. 또 큐슈(九州) 英彦山(히꼬야마)의 심산유곡에서도 산복(山伏, 야마부시)이라는 도사들이 닦았던 도를 수험도(修驗道)라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산악신앙 연구의 권위자며 수험도 연구가인 나가노 히타노(中野幡能)교수는

 

“이는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기 전의 원시적인 신앙이었고, 수험도는 신라의 화랑도에서 비롯됐다”

 

고 주장한다.

화랑도의 맥이 천년을 넘어 일본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4) 백제의 신선사상

백제에는 국선화랑이나 조의선인 못지않은 ‘무절(武節)’이란 청소년 무도(無道)가 있었다고 한다. 정명악(鄭命岳)이 ‘武節’(〖國史大全〗pp.59~60, p.102. 1978)이란 표현을 썼지만 어디에서 인용한 말인지 또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다루지 않았다.

부여 능산리 사지 내의 공방지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그 정교함과 조형미의 빼어남으로 인해 삼국시대 공예품의 백미로 손꼽히는 유물이다. 백제는 고구려의 조의선인이나 신라의 화랑도처럼 풍류도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백제인의 사상과 혼이 담긴 이러한 유물을 통해 백제인의 신선사상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금동향로 뚜껑 맨 꼭대기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서 있는 봉황(鳳凰)의 모습이 가장 크게 드러나고 있다. 삼산(三山. 三神山?) 형태의 중첩된 산이 위치하고 있고, 하나의 다리를 치켜 들고 있는 용이 머리를 들어 올려 연꽃으로 입을 받치고 있다. 선도와 불교가 습합된 모습을 보여 준다.

가운데 부분에 16인의 인물과 39마리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제일 윗 단에는 피리, 비파, 소, 현금, 북을 연주하는 5인의 주악선인(奏樂仙人)을 돌렸는데 주악선인은 머리 우측으로 머리카락을 묶어 늘어뜨리고 있는 특이한 형상으로 정좌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풍류도 선인들을 상징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주악상아래 산 각 부분에는 기러기 모양의 원앙을 비롯하여 나무와 바위, 산 길, 계곡, 폭포 등 자연세계와 신선, 동물 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는 신선세계(神仙世界)를 연출한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봉황(鳳凰)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봉황을 예로 백제의 풍류도를 생각해 보자. ‘鸞郞碑序’의 ‘난(鸞)’은 ‘난 새 난’字 이다. ‘난새’란 ‘신조봉황(神鳥鳳凰)’이라고 했다. 『산해경(山海經. 郭璞)』에

 

“난새인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하다(鸞見天下安寧)”

 

고 했다. ‘난랑(鸞郞)’은 신선의 이칭(異稱)이다. 신선의 다른 호칭인 난랑을 난새에 비유한 것으로 본다. 난새(鸞)는 봉황의 이름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봉황은 생충(生蟲)을 먹지 아니하고 생초(生草)를 뒤지지 않는다.”

 

고 했다. 이는 인조(仁鳥)를 가리킨다.『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봉황은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 아니면 먹지 아니 한다.”

 

고 했다. 이는 봉황이 성조(聖鳥)임을 말하는 것이다.

봉황은 실재하는 비조(飛鳥)가 아닌 영조(靈鳥 또는 神鳥)이다. 또 봉황은 성세(聖世)에 나타나는 서조(瑞鳥)를 가리킨다. 봉황은 인조, 성조, 신조(神鳥)로서 상상적 비조이다. 봉황은 인도성덕(仁道聖德)의 상징이다.

여러 중국 문헌에

 

“봉황은 인조 성조(仁鳥 聖鳥)이요 동방 한국에서 출생하여 전 세계에 날아다닌다.”

 

고 했다.(崔仁.『韓國學講義』1쪽, 119쪽. 昌震社, 1975)

 

이처럼 봉황의 출생지는 우리 한국이다. 이는 오색찬란한 색깔의 봉황새를 통해 선(仙: 僊)의 풍류도가 한국에 연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봉황새는 바람새로서 곧 풍조(風鳥)이다. 바람새 곧 난새는 풍류도의 상징이다. 왜 ‘현묘지도’ 곧 신선도를 풍류도라고 했을까. 인간이 장생불사(長生不死) 하다가 우화등선(羽化登仙) 할 때는 산에 들어가서 산바람(嵐. 山氣, 山風也) 속에서 시해선(尸解仙) 즉, 그 육신을 해체하고 신선으로 화(化)한다. 최치원도 우화등선 했다고 전한다. 한무외(韓無畏, 1517~1610)의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 ‘해동이적(海東異蹟)’, 조여적(趙汝籍, 조선조 명종·선조대)의 ‘청학집(靑鶴集)’ 그밖에 ‘선불가진수어록(仙佛家眞修語錄)’ 등에 육신을 지닌 채로 승천한 사람들, 갓과 신발을 두고 홀연히 승천한 사람 등 신선이 되어 승천한 사람들을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산에서 풍류체(風流體)가 되어 회오리바람을 타고 흔적 없이 승천하기 때문에 선(僊: 遷)을 풍류도라고 하는 것이다. 백제의 금동대향로에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飛上)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악기를 연주하는 다섯 명의 선인(仙人), 삼산(三山)에 신선을 표현한 모습들은 바로 백제의 신선사상이자 풍류도를 표현해 주고 있다고 본다.

 

(5) 기독교 성서속의 선맥

복음을 전하러 길을 떠나는 예수에게 제자 한 사람이 여쭈었다. 부친이 돌아가셨기에 장사를 치르게 해 달라고. 이에 예수가 답한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여기서 ‘죽은 자들로’는 타락으로 죄악의 굴레에 씌워져 있는 사탄 주관하의 인간들이고, ‘죽은 자를’이란 이미 육신이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겠다. 생명나무요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모습은 죽은 자들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왜 원치 않는 죽음이 있는가.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죽음이 있게 됐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따먹지 않았다면 죽음이 없는 영생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인간의 본래적 소망은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어느 누가 죽음을 원하겠는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죽은 자의 영혼들이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죽은 영혼들이나 껴안고 있는 죽은 자의 신이 아니다. 우리는 죽은 다음 천당이나 극락 간다는 교리의 담 벽을 뛰어 넘어 자유자재하고 장생불사하는 대도의 경지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풍류도인 선(仙:僊)은 죽음 자체가 없는 대도이다.

그런데 기독교 성서 속에 우리민족의 고유 풍류도의 선맥(仙<僊>脈)이 가지를 뻗고 있으니 놀랍다. 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에녹, 엘리야, 모세, 예수 등이다. 이들은 모두 선화 승천한 비의(秘義)를 지니고 있다. 성서에는 죽음 없이 살아서 승천한 사람들이 있다.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을 예로 보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이에 대해 히브리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에녹은 산 그대로 하늘나라로 옮기어진 사람이었다. ‘옮기어 졌다’함은 ‘천거(遷去)된 선인(僊人)’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에녹은 이 선의 비의를 터득한 선인이다. 에녹은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신선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隔)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야도 선의 비의를 터득한 선지자요 올리어진 신선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야 역시 우화등선한 신선임을 알 수 있다. 모두 천거(遷去)된 선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선의 개념 자체가 없는 서양 기독교에서는 이를 이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서에는 구약 최대의 선지자 모세의 시신을 묻은 묘가 없어졌다고 기록 되어 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레바논)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묘(墓)를 아는 자 없느니라.”

 

우리는 이 기록에서 모세의 묘가 없어진 신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약 유다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눈여겨 볼 일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 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이 성구 속에 감추어진 내용은 실로 크다고 본다. 한마디로 모세는 무덤이 없고 시해선(屍解仙) 되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 시해선이 성서의 개념으로 볼 때 부활(復活)인 것이다.

예수도 무덤 속에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 했는데 그도 시해선 됐음을 성서는 말해 주고 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香品)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 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 할 때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섣는 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이 성구에서처럼 예수도 시해선 되어 선화 승천했음을 알 수 있다. 천거(遷去)되어 선화(僊化)된 신선들은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옷을 입는다. 천의(天衣) 곧 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솔기나 바느질한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요한복음의 다음 성구를 보면 예수가 입은 옷은 호지 않은 옷이었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通)으로 짠 것이라.”

 

이 성구를 보면 예수는 호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다. 예수가 호지 않은 천의무봉한 속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대도인 풍류도의 선의 도비(道秘)를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수는 선의 관점에서 보면 선을 대각하고 천의무봉을 입음으로서 십자가에 죽어 돌무덤 속에 묻혔으나 시해선 되어 부활했던 것이다. 예수가 타고 승천한 구름은 단순히 허공에 떠있는 부운(浮雲)이 아니라 우화(羽化)를 비유한 말이겠다. 단군을 ‘운중군(雲中君)’이라 함도 그도 구름을 타고 우화등선한 선인인 까닭이다. 천의무봉이란 말은 선을 구도하는 동방에서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말이다.

예수는 영생의 도가 풍류도임을 성서 속에서 증언하고 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줄 아나 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 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肉)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예수와 니고데모가 나눈 이 도담(道談)에 숨겨진 비의(秘義)는 무엇일까. 이 말씀은 거듭난 사람은 풍류체(風流體)가 됨으로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바람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 중생하면 풍류체 곧 신선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영(靈)을 헬라어로 푸뮤마라 하는데 바람을 뜻하기도 한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란 말하자면 바람이 흐르듯 사는 풍류선인(風流仙人)이 아닐까. 이 바람은 자유자재하며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존재이다. 사람이 도(道)를 이루면 자유자재 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는 이 도(道)적인 자유를 말씀 하셨다. 예수가 말한 중생(重生)은 늙은 모태(母胎)가 아닌 도태(道胎) 속에서 변화 받아야 함을 말해 준다. 타락한 인간은 육태(肉胎)만 알았지 도태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도태 속에서 거듭나면 풍류체 곧 영생불사의 신선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의 기독교는 동양에서 탄생한 종교이다. 우리는 이제 동양적 사고에서 이 선(仙: 僊)의 풍류도를 통해 성서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三. 마치며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도라고 했다. 이는 유교 도교 불교 등 모든 종교가 나오기 전 근원된 도(設敎之源)라 할 것이다. 풍류도 속에는 모든 종교의 진리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이 풍류도의 그릇은 모든 종교를 담을 수 있는 신묘한 대기(大器)이며 도의 바다(道海)이다. 풍류도는 모든 종교의 원천적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유 불 선 내지 모든 고등종교 까지 통합한 진리가 바로 풍류도의 진리이다. 풍류도의 진리는 만법(萬法)이 연원한 진리인 동시에 만법이 귀일 할 수 있는 도해(道海)인 것이다. 이 땅 위에 썩어 악취에 추깃물 나는 추악한 시신을 남기지 않는 종교의 진리는 선(仙: 僊) 밖에 없다. 풍류도의 핵심은 선(仙: 僊)이다. 선에는 죽음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그 원리는『천부경』과『삼일신고』에 제시돼 있다. 영육쌍수, 성통공완, 반진일신하여 ‘한’의 본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영육이 쌍수(雙修)하여 함께 노니다가 영육이 함께 천상 천궁으로 돌아가는 신선관이다.

참된 종교가 전하는 복음과 가르침은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죽음이 있은 이후에 출현한 것들이다. 인간에게 있어 영생불사의 길은 본래의 대도이다. 그것을 선(仙)에서 찾고자 고찰해 봤다. 또 동방의 우리나라를 근원으로 하는 이 선 맥의 가지는 기독교 성서에서도 뻗고 있음을 살펴봤다. 선은 영생의 길로 안내하는 대도이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대도가 폐한 이후에 인의(仁義)의 종교들이 나왔다고 했다. 그 이전엔 본래의 대도가 있었을 뿐이다. 이 선의 대도인 풍류도는 단군왕검 시대로부터 전해져온 고유사상이다. 개국조 단군을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 했다. 그 자신이 아사달에서 천선(天仙)이 되어 어천(御天)했다. 천거(遷去)한 선인(僊人)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선과 중국의 도교를 혼동하고 있다. 중국의 도교는 황제로부터이다. 황제는 한밝산(태백산, 백두산)에서 우리 조상 자부선인으로부터 삼황내문을 받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선의 창시자는 우리 조상이다. 삼국시대에 노자의 도교가 유입 됐을 땐 이미 상당히 이질화된 양상을 띄고 들어왔다고 본다. 또 중국의 선은 현실에 소극적이고 치세에 초연해야 하고 현세와 멀어져야 함을 그 본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의 선은 그렇지 않다. 신라의 국선(國仙)화랑이나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은 적극적 보국충정에 나섰던 것이다. 현실 속에 뛰어들어 능동적인 구국, 구세를 주도해 나가는 사상이다. 현재의 삶에서 내 자신이 천궁(天宮)에 살자는 것이고 내 나라가 천궁을 이루자는 주의 이다. 대단히 현실적인 신선관이다.

오늘 우리는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요 풍류의 민족이면서 현실적으로 분단된 비극을 안고 있다. 신라가 화랑도를 적극 육성하여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이 대도인 풍류도와 그 정신과 사상을 되찾아 살려야 한다. 이러한 일이야 말로 온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통일의 대도를 열어 가는데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 세계를 향한 한류바람(韓風)이 한창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부턴 영생의 선바람(仙風)을 일으키자. 그러면 죽어도 죽지 않는 인간세상, 이 지구상에 영생의 대도가 개문될 것이다. 멋있는 신바람(神風) 놀이에 세상은 기쁨이 넘치고 성통공완(性通功完)한 선인들의 천궁엔 영득쾌락(永得快樂)이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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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렬님의 댓글





위 내용은 2014-11-16일 덕성여대에서 국제 신인류문화학회 학술대회에서  제4집에
실린내용이다. 이날 김주호박사는 토론자로 단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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