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사람들이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테두리에 의해 갇히기에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왜 한국인들이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면 획일화되어 있고 천편일률적일까요?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부분적으로나마 답하고 있어요. 최진석은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시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래에 인용구 내지는 그 메시지를 제가 담겠습니다.
그런데, 최진석이 완벽하냐면 그렇지는 않아요. 한계가 있어요. 특히 노자주의는 개인을 강조하기는 하는데 다시 시스템에 대한 고려는 약해요. 그래서 주류가 되기 어려운 것이죠. 최진석이 서양사람들의 개인주의를 잘 인용을 하는데, 최진석이 간과하는 서양의 주요한 덕목은 시스템이에요. 서양 친구들이 항상 템플렛을 만들죠. 이 템플렛이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것은 템플렛이 그에 몸담는 많은 개인들의 활동반경을 충분히 고려해주는 미덕을 갖기 때문이에요. 이게 사회를 끌고 가는 능력이죠. 반면에 동양사회는 이기주의이거나 권위주의이거나 이렇게 양 극단에서 헤매는 면이 있는 것이죠.
비록 최진석이 한계는 있지만 그럼에도 최진석이 강조하는 개인은 지금 한국에서 너무나도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래서 그의 책이 의미가 큽니다. 저는 요즘 본 책 중에서 최진석 처럼 신선한 충격을 준 저술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도발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 있다니!
원문 인용은 –뒤입니다. 제가 요약하는 것은 그냥 –없이 씁니다. 그리고 원서의 소제목들도 충분히 메시지가 됩니다. 그래서 교보에서 제공하는 목차들도 씁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1390849&orderClick=LEA&Kc=
-즉 한국에서는 산업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철학 연구에서조차 장르를 창출하지 모사고, 선진국에서 만든 장르를 대신 수행하는 ‘생산자’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를 통찰하는 인문의 더듬이, p. 33)
-망상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과 아무런 관계없이 멋대로 하는 생각입니다. 창의성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지 꿈꿔 보고, 또 꿈꿔 보다가 그 나아가는 방향 바로 앞에 점을 찍고 “우뚝!” 서 보는 일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 p. 62)
철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왜냐고 물으면 하버마스를 통해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유가철학을 해서 도덕질서를 세우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응답에 대해 최진석은 이렇게 답한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는 걱정하지 마세요. 오! 간곡히 말하건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해결하면 돼요….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왜 스스로를 사명의 완수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지요?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주었을까. P. 75)
철학훈련이 안되어 있는 공학도 출신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자신없는 말투로 ‘저는 도덕경을 읽을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최진석은 그 답을 가장 높게 칩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정말 ‘제 저렇게 공부하다 죽을 것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바람직한 것보다는 바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샘솟게 됩니다. 더욱 부드러운 사회가 됩니다(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p. 83, 84)
최진석이 인용한 시. “춤춰라 //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 사랑하라 //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노래하라 //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 일하라 //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 살아라 //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p. 86)
"요즘 애들에게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목적론적인 폭력일뿐입니다.('요즘 애들은 언제나 버릇없다', p. 98)
최진석 교수가 ‘인문학은 버릇 없어지는 것’ 장에서 ‘나뭇잎 배’ 동요를 인용합니다. 7살쯤 아이에게는 엄마품이 세상에 제일 좋을 텐데도, 그 엄마 품에 누어도 낮에 두고 온 나뭇잎배가 생각난다는 대목 있죠. 최진석 교수는 여기서 아이는 ‘자기만의 그리움, 자기만의 생각으로 점차 자기가 확대되가는 거지요’ 라고 해석합니다. 왜 엄마 말고 딴 생각을 하느냐 이렇게 따지면 안된다는 거에요. 비록 동요의 한 대목을 해석한 것이지만, 공감갑니다. 엄마의 생각이나 주장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게 일종의 버릇의 강요죠.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가 없기 때문이에요.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겁니까? ‘내’가 느끼는 겁니까?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나에요. 우리는 느낌을 함께하지는 못해요. 집단은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집단은 이성이 지배합니다. 비율과 계산이 지배하지요. 제가 앞에서 ‘버릇’이라고 이야기했듯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우리의 이념입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p. 108)
-우리나라가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주자학을 들여와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할 때, 중국은 이미 명나라라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토양 속에서 양명학으로 넘어갈 때였습니다. …. 중국은 토양이 달라지니까 이념도 거기에 맞추어 변화시켰지요? 조선은 어땠나요? 조선은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수입품으로서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겁니다.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다. p. 128)
-지식은 무엇을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지식은 사건이 남긴 똥이다 p. 147)
-“왜 그 주제를 연구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이나 동양의 학자들은 이유를 매우 거창하고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자기가 한 연구 주제를 한국의 상황이나 동아시아의 상황, 심지어는 인류 전체의 상황에까지 관련시켜서 의미화하고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에게 ….물으면 묻는 사람이 머쓱할 정도로 간단한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Because I like it.”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는 힘, p. 195)
학생들에게 문제를 스스로 내서 답을 내라고 하면, 학생들은 백지로 내는 경우가 많다 (멘토를 죽여라, p. 199)
-자기가 먼저 혁명되지 않고서는 어떤 혁명도 불가능합니다….한국의 젊은이들은 줄곧 혁명을 꿈꾸었지요….그렇다면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사회로 나왔을 때, 그만큼 이 사회의 정의와 도덕의 양이 증가했습니까? (내 털 한 올이 천하의 이익보다 소중하다, p. 250)
-천하를 위하는 사람이 윤리적인 행동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윤리적인 행동을 하겠습니까?...천하를 위하는 사람은 뇌물을 받아요. 당을 위하는 사람도, 자기 계파를 위하는 사람도 뇌물을 받아요….자기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착각을 만들어 내지요. (대답만 잘하는 인간은 바보다, p. 254)
2010년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에서 오바마가 특별히 한국의 기자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하고 그 틈을 비집고 중국기자가 질문을 했다는 대목이 있어요 (자기를 만나는 법, p. 258)
-그런데 현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문명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까지 이런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고 나서야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질문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수준의 나라였어요. (욕망, 장르를 만드는 힘, p. 272)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내오게 하고 리포트를 보지 않고 말로 하라고 하면 다 못하고 낑낑댄다는 대목 (장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