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예언/2부 요약정리

제목 : 천상의 예언 The Celestine Prophecy, 2006
원작 : 제임스 레드필드-소설 ‘천상의 예언 The Celestine Prophecy, 1993’
감독 : 아만드 마스트로이안니
출연 : 매튜 세틀, 토마스 크레취만 등
천상의 예언/4장.에너지 쟁탈전
인간이 서로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이유를 지금까지는 인간이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강박 관념 속에서 이 같은 폭력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와서 이 현상이 내부에서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의식의 차이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의 내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래 다른 사람을 억누르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는 지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상대편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이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주제를 토의하든 우리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성공하면 심리적으로 고양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인간이 상호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이유는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구체적인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고양되기 위해서이다. 바로 이것이 개인 차원과 국가 차원에서 이 세상에 비이상적인 갈등이 수없이 존재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체계적으로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 에너지가 운동하는 형태를 통해 인간이 논쟁하거나 싸우거나 서로에게 해를 끼칠 때 서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 상대편을 억누르는 사람은 그 대가로 억눌림을 당하는 사람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서로 다투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빼앗기 위한 것이며 그래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기분이 좋아진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상대편에게 건네 줄 때가 있다. 그러면 에너지를 건네받은 사람은 힘이 넘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관계는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너지를 계속 건네 줄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가 결국에는 힘겨루기로 전락한다. 한때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건네주던 관계가 나중에는 그것을 빼앗으려고 싸우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패배자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압도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강해지는 걸 느끼게 되지만 그 대신 압도당한 사람의 에너지가 그만큼 고갈된다. 어떤 형태로든 압도당한 사람은 상처를 입게 된다. 심리적으로 압도당하면 결국 마음까지 빼앗기게 된다. 지적인 논쟁에서 패한 게 아니라 상대를 할 만한 에너지 혹은 정신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심리적인 폭력은 시대를 막론하고 문명사회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일어났다.
우리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오랫동안 서로의 몸에서 흐르는 에너지를 빼앗기 위해 싸워왔다. 인간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는 그 근저에는 바로 그게 숨어 있다. 가정이나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부터 국가 사이의 전쟁에 이르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에너지가 적어질 때 일어나는 불안한 느낌을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훔치는 형태로 치유하려는 일종의 본능 때문이다.
네 번째 통찰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세계를 에너지를 빼앗기 위한 거대한 전쟁터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단 투쟁의 근저에 숨어있는 원인을 이해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 같은 투쟁을 지양하며 인간의 에너지를 빼앗기 위한 투쟁의 사슬을 끊기 시작하게 된다. 다른 통로를 통해 에너지를 보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상의 예언/5.신비의 메시지
20세기가 끝나는 마지막 십 년 동안, 이 체험이 여러 종교에 소속된 사람들에 의해 경험 및 증명되어 구체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대중화된다. 이 같은 경험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던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종식시키는 열쇠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음껏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음식에 담긴 에너지를 모두 흡수하려면 음식을 찬양해야 한다. 맛은 에너지를 흡입하는 통로다. 맛을 적절하게 느끼고 찬양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앞에 있는 사물과 연결하며 감사하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에너지 장을 볼 때와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가득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사물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독특한 멋에 심취할 때는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이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는 수준에 도달하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에너지를 다시 돌려보낼 수 있다.
사랑의 역할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잘못 이해되어 왔다. 사랑은 행복해지기 위해 추상적인 도덕적 책임감에 근거해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다.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으면 처음에는 막연하게 기분이 좋아지다가 환희를 느끼게 되고 이윽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며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이다.
통찰력이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원리를 생각해보세요.
첫 번째 통찰력은 우리가 우연한 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생겨납니다. 우연히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면에 어떤 특별한 것이 영적인 어떤 존재가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