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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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향' 어두운 현실 넘어 이상세계 향한 의지’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9>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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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출처 : 홍장학 엮음,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약력
▦1917년 만주 북간도 출생 ▦15세 때부터 시작. 1936~37년 만주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지에 동시 발표 ▦1938년 연희전문학교 입학 후 시 ‘자화상’ ‘새로운 길’, 산문 ‘달을 쏘다’ 등 발표 ▦1942년 일본 유학.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43년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후쿠오카 형무소 복역 중 45년 2월 사망 ▦1948년 2월 유작 31편 묶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발간. 55년 62편 추가해 중판, 76년 23편 추가해 3판본 출간. 99년 육필 원고 영인본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출간.
◆해설
윤동주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남다른 개성과 시세계로 숨쉬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편들은 한 사람의 시와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유력하게 증언하면서, 우리에게 시가 가질 수 있는 정직한 자기 고백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그가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사상불온,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싸늘하게 옥사한 후 출간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애송된 시집일 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일제 말기의 어두움을 밝혀준 한 줄기 빛으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집이다.
당대 최고의 시인 정지용이 시집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기억했던 그 오롯한 고독이 윤동주를 불멸의 시인으로 남게 했던 것이다. 이 시집은 이러한 그의 극적 생애와 죽음을 결속하면서 항구적인 매혹의 텍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또 다른 고향’은 그가 연희전문 졸업 직전에 쓴 시편으로서, 현실적 어둠의 상황을 초극하면서 이상 세계를 추구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는 명편이다. 화자인 나가 백골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누워 있는 방은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채 우주로만 통하는 실존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혼을 통해 새로운 이상 세계를 갈망한다.
어두운 방안에서 서로 갈등하기도 하고 서로 결속하기도 하는 나와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각기 분리된 것 같지만, 시상의 흐름을 따라 하나의 자아로 지양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통합된 자아의 힘으로 시인은 우리에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서시) 괴로워한 순결하고도 아름다운 시혼을 보여주었다.
물론 ‘자화상’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시가 오랜 연륜을 축적한 원숙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시는 청년기의 아름다운 이상과 그것의 좌절 그리고 그에 대한 부끄럼의 정서를 진정성과 심미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부끄럼을 통한 자기 성찰의 태도는 우리에게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 차원의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윤동주를 통해 역사와 자신에 대한 부끄럼을 끊임없이 복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불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아름다운 시편들을 남기고 그는 세월을 가로질러 또 다른 고향에 서둘러 갔다. 그리고 그의 시편들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보편적 감동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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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교[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윤동주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처녀작은 <삶과 죽음> <초한대>이다. 발표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쓰여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그의 인간됨과 사상을 반영하는 해맑은 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특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시로서, 어두운 시대에 깊은 우수 속에서도 티없이 순수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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