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사마노 하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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被神蹴出而活地人生
하나님 발길에 체어 사는 인생 - 함석헌(퀘이커:무 교회 주의)-
뜻 길에서 시련에 봉착할 때마다
가슴으로 되 뇌어 오는 故함석헌 선생의 자기 고백이다
금년 한 해도
오직 하나님 발길질에 걷어 체어
무엇을 하며 1년이 갔는지 정리가 안된다
섭리의 길은 럭비공 같아
어디로 튈 지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나니
아버지의 일은 아들의 일이고
아들의 일은 곧 아버지의 일이다
이런 고백이 합당한지 모르지만
암튼
그렇게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저물어 가는 세모에
허리띠 신발끈 졸라메고
오는 해에 다시
하나님께 걷어 체일 준비를 한다
어디를 어떻게 체여
어디로 날라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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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개
진혜숙님의 댓글
두분 목사님의 가식없는 논박으로 저에 속물근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맹세ㅡ 를 외우면서 절대신앙 절대사랑
까지는 잘되는 데 절대복종여기에서 정말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절대복종을 할수있나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
군대조직도 아닌 데하면서 많은 시간을 혼자 시험에 빠졌을 때가
있었는 데 지금생각하면 하나님 물건이 안되어서 私事로운 잡생각으로 곤란해 했었다고 깨닫고 있습니다.이판기 목사님의 私心없는
孝子 자식된 도리 모르거나 알거나 예!!하고 행하는 자세에 저도
수긍이 갑니다. 이인규목사님 우리에게는 비젼이 있습니다.저도 말씀에 의도에 공감합니다.
절대복종하는 삶의 자세로 섭리로정을 줄달음치는 고귀한 전 세계 축복가정들이 있습니다.겉사람은 음식으로 자라고 속사람은 원리 말씀으로 자라니 原理로 거듭나서 속사람이 가꿔진 사람이라면 어떤학문이나 기능을 연마하든지 부족함이 없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쁜 것을 같이 기뻐하고 아픈것을 같이 아파할 소중한 식구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돌보듯이 교회에 목사님과 사모님은 식구들을 돌보며 천지인 부모님 앞으로 가까이로 데리고 갑니다.
우리는 항상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당신의 멘토가 누구입니까? 하는 문구가 있드군요. 뜻을 중심하고 전후좌우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멘토가 있습니까. 세상적인 삿된 것 모두 털어 버리고 뜻을 위해 살아간다면 얼마나 보람된 여정입니까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맹세ㅡ 를 외우면서 절대신앙 절대사랑
까지는 잘되는 데 절대복종여기에서 정말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절대복종을 할수있나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
군대조직도 아닌 데하면서 많은 시간을 혼자 시험에 빠졌을 때가
있었는 데 지금생각하면 하나님 물건이 안되어서 私事로운 잡생각으로 곤란해 했었다고 깨닫고 있습니다.이판기 목사님의 私心없는
孝子 자식된 도리 모르거나 알거나 예!!하고 행하는 자세에 저도
수긍이 갑니다. 이인규목사님 우리에게는 비젼이 있습니다.저도 말씀에 의도에 공감합니다.
절대복종하는 삶의 자세로 섭리로정을 줄달음치는 고귀한 전 세계 축복가정들이 있습니다.겉사람은 음식으로 자라고 속사람은 원리 말씀으로 자라니 原理로 거듭나서 속사람이 가꿔진 사람이라면 어떤학문이나 기능을 연마하든지 부족함이 없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쁜 것을 같이 기뻐하고 아픈것을 같이 아파할 소중한 식구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돌보듯이 교회에 목사님과 사모님은 식구들을 돌보며 천지인 부모님 앞으로 가까이로 데리고 갑니다.
우리는 항상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당신의 멘토가 누구입니까? 하는 문구가 있드군요. 뜻을 중심하고 전후좌우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멘토가 있습니까. 세상적인 삿된 것 모두 털어 버리고 뜻을 위해 살아간다면 얼마나 보람된 여정입니까
이인규님의 댓글
무지에서는 완성이 없다 했습니다. 모르기때문에 설득이 필요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득도 안하고 무조건 따르라 이러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 따르지도 안습니다.
무지하기때문에 절대순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지한 사람이 어떻게 절대순종을 하겠습니까?
절대순종은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아는 것도 다 실천 못하는데 모르는 것을 어떻게 실천하겠습니까?
섭리의 미래는 가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섭리의 미래입니다.
망상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성을 가져야 하고
누구에게도 현실감있는 언어로 알려줄 수 있는 세계를 섭리의 미래로 이해해야 된다고 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득도 안하고 무조건 따르라 이러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 따르지도 안습니다.
무지하기때문에 절대순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지한 사람이 어떻게 절대순종을 하겠습니까?
절대순종은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아는 것도 다 실천 못하는데 모르는 것을 어떻게 실천하겠습니까?
섭리의 미래는 가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섭리의 미래입니다.
망상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성을 가져야 하고
누구에게도 현실감있는 언어로 알려줄 수 있는 세계를 섭리의 미래로 이해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인규님의 댓글
무교회주의자들의 인간비하에 뇌동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발길에 체이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정답인양 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고 봅니다.
섭리를 럭비공에 비유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고 봅니다. 럭비공처럼 보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결코 럭비공에 비유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봅니다.
모르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아는 것이 정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를 사는 것이 섭리의 길이되어서는 안됩니다.
내일을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는 것처럼 불안하고 미련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체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붙들려 가는 인생이 되도록 하는 데
사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순종의 자세를 체이는 것에 비유하신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가지만 체여서 이리저리 가고오는 것처럼 표현하다보면
우리 신세만 처량하고 비참해지기에 기왕이면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이리가고 저리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그런다고 하면 쪼깨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무엇인가 일을 금방 저지를 것 같이 허리띠 신발끈 졸라메는 분에게 좀 진정하라고 몇마디 전합니다.
섭리를 럭비공에 비유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고 봅니다. 럭비공처럼 보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결코 럭비공에 비유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봅니다.
모르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아는 것이 정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를 사는 것이 섭리의 길이되어서는 안됩니다.
내일을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는 것처럼 불안하고 미련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체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붙들려 가는 인생이 되도록 하는 데
사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순종의 자세를 체이는 것에 비유하신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가지만 체여서 이리저리 가고오는 것처럼 표현하다보면
우리 신세만 처량하고 비참해지기에 기왕이면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이리가고 저리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그런다고 하면 쪼깨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무엇인가 일을 금방 저지를 것 같이 허리띠 신발끈 졸라메는 분에게 좀 진정하라고 몇마디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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