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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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 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 은 쇠 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 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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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개
진혜숙님의 댓글
존경하는 정해관님 자상하게 첨부해 주신 내용으로 공부 잘 했습니다.
늦깍이 나이에 이렇게 재미나게 집중하고 빠져들게 할 이토록 좋은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행운입니다. 많은 글동무 그리고 원로와 고문이 계시고
석학들이 계서서 빈틈을 채워 주시고 .. 감사합니다.
詩聖시성이라고 제가 그렇게 적고 싶어집니다. 윤동주님의 길에서는
방황하고 절망하면서 草芥초개와같은 내 모습에서 그나마라도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지탱하고 살면서 주변에 누를 작게 끼치면서 처한 곳에서 세상과 따뜻이
교류하겠나를 고민 할 때에 잃어버렸습니다로 시작되는 싯귀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 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양심하며 바르게 살것을 갈망하면서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는 지 구절구절이 사무치는 단락들에서 통곡할 것 같은
늦깍이 나이에 이렇게 재미나게 집중하고 빠져들게 할 이토록 좋은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행운입니다. 많은 글동무 그리고 원로와 고문이 계시고
석학들이 계서서 빈틈을 채워 주시고 .. 감사합니다.
詩聖시성이라고 제가 그렇게 적고 싶어집니다. 윤동주님의 길에서는
방황하고 절망하면서 草芥초개와같은 내 모습에서 그나마라도 이 땅에서 어떻게
잘 지탱하고 살면서 주변에 누를 작게 끼치면서 처한 곳에서 세상과 따뜻이
교류하겠나를 고민 할 때에 잃어버렸습니다로 시작되는 싯귀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 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양심하며 바르게 살것을 갈망하면서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는 지 구절구절이 사무치는 단락들에서 통곡할 것 같은
문정현님의 댓글
이존형 장로님!~
여행의 묘미가 철저하게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끝이 없어요. 우발적인 사고도 도사리고 있고
참가자가 많으니 별별 이야기도 많고....
연세가 많으신 참가자 한분이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으셔서 버스 2대가 2시간여 꼼짝마라!~
대책없이 기다렸고, 속이 탔지요.
그 님께서는 다른 루트로 내려오셔서 벌써 호텔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안도를 했습니다.
전체 일정이 좌악 !~ 하루 마감하는 일정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대면
더 난감했겠지요.
교장님 ~
윤동주님의 시 밭을 둘러보고
그쪽을 댕겨왔다는 의미로...
돌아서면 또 틀릴것 같아유.
감사합니다.
여행의 묘미가 철저하게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끝이 없어요. 우발적인 사고도 도사리고 있고
참가자가 많으니 별별 이야기도 많고....
연세가 많으신 참가자 한분이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으셔서 버스 2대가 2시간여 꼼짝마라!~
대책없이 기다렸고, 속이 탔지요.
그 님께서는 다른 루트로 내려오셔서 벌써 호텔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안도를 했습니다.
전체 일정이 좌악 !~ 하루 마감하는 일정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대면
더 난감했겠지요.
교장님 ~
윤동주님의 시 밭을 둘러보고
그쪽을 댕겨왔다는 의미로...
돌아서면 또 틀릴것 같아유.
감사합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마음씨 고우시고, 얼굴도 예쁘신 문정현 자매님!!!
백두산에는 잘 다녀 오셨는지요?
여러 가지 챙길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모두를 알려주면 여행의 묘미가 없어요.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으로
남는 것은 남는 것으로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그에 따라서 우리들도 그렇게 대처하면서 인생의 긴 여행길을 달려 왔고
나머지 인생길도 언제 어떤 폭풍우를 만날지 모르지만
미리서 준비를 해둔다면 힘든 일을 만나서 쉽게 풀어지겠지만
때에 따라서 부닥치는 상황에 따라서 대처하는 것도
긴 여행길에서, 삶에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백두산에는 잘 다녀 오셨는지요?
여러 가지 챙길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모두를 알려주면 여행의 묘미가 없어요.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으로
남는 것은 남는 것으로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그에 따라서 우리들도 그렇게 대처하면서 인생의 긴 여행길을 달려 왔고
나머지 인생길도 언제 어떤 폭풍우를 만날지 모르지만
미리서 준비를 해둔다면 힘든 일을 만나서 쉽게 풀어지겠지만
때에 따라서 부닥치는 상황에 따라서 대처하는 것도
긴 여행길에서, 삶에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윤동주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명은 해환(海煥).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명은 해환(海煥).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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