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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처녀를 업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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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처녀를 업고 계십니까?


어느 산중에 기거하는 두 스님이
길을 가다가 다리가 없는 개울을 만났다.
그런데 개울가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처녀가 있었다.
그중 한 스님이 그 처녀를 업어 건너편에 내려주었다.
개울을 건넌 두 스님이 다시 갈 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한 스님이 힐난을 했다. "그대는 수행자가 돼서
어찌하여 처녀를 업어줄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다른 선사가 답했다.
"스님, 저는 이미 그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스님께서는 아직도 업고 계십니까!"


- 김의정의《마음에서 부는 바람》중에서 -


*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봅니다.
그런데 그 '자기 관점'이 진실을 놓치면
시선이 왜곡돼 '헛것'을 보고 헛것을 말하게 됩니다.
진실을 진실로, 선의를 선의로 보지 못하고
도리어 흠잡고 흉보고 욕까지 합니다.
'진실을 보는 눈'을 기르십시오.
그것도 엄청난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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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박인수님의 댓글

그렇게 간단하게 쉽게 답을 내린다고 정답 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빵점짜리 인생도 90도 머리만 숙이면 110점 짜리가 되는데^^^

조항삼님의 댓글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보여지게 되겠지요.
우종대 회장님의 예리한 통찰력에 공감합니다.

아직도 주위에는 처녀를 업고 다니는 군상들이
꽤 많이 보이는군요.

우종대님의 댓글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 처녀를 보는 스님은
수행자이기전의 안타깝게 여긴 인간의 본심이 동기가 되어
그 처녀를 업고 물을 건너준 스님의 수고에
저는 고마움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갑자기 힐난을 하는 스님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여지는
불순한 면이 엿보이니
아직 수행이 안된 스님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하는 우리들이나 스님도 도의 수행 정도에 따라
보여지는 현실 세상도,
생각되어지는 세계도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순희님의 댓글

박회장님 말씀대로 굳이 내려놓을려고 몸부림 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이름높은 대사가 고기국 한그릇 먹었다고 해서 누가 땡땡이 중이라 할것이며
공주와 일시 사랑을 나눈 대사를 누가 감히 땡땡이 중이라 할수 있겠는가.?

박순철님의 댓글

쉽게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나서 보시지요.
장담하건데 이야기 속에 있는 이야기이지
절대로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내려 놓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애쓸수록 마음 속에 갈등만 더 생깁니다.

차라리 산에 가셔서 땀 한번 흠뻑 흘리고 나면
왼 세상 내 것 되리라. 큰 소리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사물을 대하고, 판단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헛것이 안 보인다는 말씀에 동의 합니다만,
'훈련'을 통해서 그 눈을 갖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차라리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다른 관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선의와 진실이 나에게만 있다는 독단과 아집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처녀를 업어준 수행자나 그것을 수행의 태도가 아니라는 수행자나 다 수행자이며,
어느 수행자가 더 큰 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우리들이 판단해야할 필요도 의미도 별로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런지요?

정작 우리들이 조심해야할 것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나의 생각은 항상 옳다'라는 신념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류의 '개성'을 무시하고 '다른 견해'를 '틀린 견해'로 치부하기 쉽다는 점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진혜숙님의 댓글

스님께서는 아직도 업고 계십니까/

우리네 부족한 심성 중에는 부질없이 업고 있는 게 많습니다.
오늘 이시간주어진 책임다하기를 하며 지내노라면 세월만큼에 작은동산이든지 큰
태산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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