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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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평복을 하고 남대문 거리에 나왔다.
이곳 저곳 둘러보던 태조의 시선이 .
길 가에서 점을 치는 한 점쟁이 한테 머물렀다,
조금 있으려니 한사람이 점쟁이앞에 나타나
"점 좀봐주쇼"
하고 말했다.
원래 점쟁이 들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태조라
하는 양 을 지켜 보기로 했다.
그때 점쟁이는 그 사람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앞에놓인 신문지 만한 종이를 가리키며
"이중에 한자를 짚으시요" 했다.
그 종이 위에는 꽤알만한 글씨가 꽉차 있었다.
그러자 그사람은 問 자를 짚었다.
다시한번 손님얼굴을 쳐다본 점쟁이는
"당신 팔자는 평생 얻어먹을 팔자요.
남의집 문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字 를 짚었기 때문이요"
태조가 하도 기이 한지라
"나도 점 좀 봐주시요" 하고는 점쟁이 앞에가 앉았다
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앞에 종이를 가리키며
"이중에 한자를 짚으시요" 했다
태조는 앞서 점을 쳤던 사람이 짚었던 問 자를 짚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혼잣말 처럼 "요리보아도 임금君 이요
조리보아도 임금君 이니 임금님이 틀림없군"
하더니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절을 올렸다.
"전하께서 어찌 이곳까지 납시셨사옵니까?"
"이거 보시요 ! 하늘엔 해가 하나요 나라엔 임금이 한분이시요
그분은 대궐에 계시거늘 누굴 죽이려고 그런소릴 함부로 하시요."
"아니옵니다, 틀림없는 전하시옵니다,
지금까지 제 점은 한번도 틀린적이 없사옵니다."
"그건 그렇고, 앞 사람과 똑같은 問 자를 짚었는데
어찌그렇게 점괘가 틀린단 말이요."
"원래 점이란 글자로 푸는것이 아니옵고 두상을 보고 아는 것이옵니다,
글자를 푸는것은 그때 그때 제가 임기응변으로 푸는것이옵니다."
오래전 부터 태조는 점쟁이를 없애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점쟁이를
본후로 이렇게 뜨겁게 맞추는 점쟁이 도 있구나 하고는
그냥 놔 두어 오늘까지 점쟁이들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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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님의 댓글
손님 고승이 한발은 문안에 딛고 한발은 밖에딛고 주인을 불렀습니다.
"대사 ! 지금 내가 나가겠습니까 들어가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무리 고승인들 그걸 어떻게 맞추겠습니까?
들어올것 이라고 하면 나아가면 틀리는 것이고, 나아가겠다고 하면 들어오면 틀리는 것이니
그러자 주인 고승이
"대사 ! 지금 내손안에 오늘 낳은 쥐새끼 한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이 쥐새끼가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그걸 어떻게 맞추겠습니까?
살았다고하면 꼭 쥐어 버릴것이고 죽었다고 하면 그대로 손을 펴면 틀리는것이니,
그러자 손님고승이
"대사 ! 대사께서 살생이야 하시겠습니까. 그 쥐새끼는 살아있습니다."
그러자 주인 고승이
"대사 ! 대사께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이야 가시겠습니까,
대사께선 들어 오시겠습니다.
아무리 기가막히게 맞춘다해도 행하는 사람에의해 틀리는 것이므로
나는 그런건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태조는 이 사건에 몹시 상심하여 왕위를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정종마저 곧 물러나고 이방원(태종)이 왕이 되었다. 태종이 즉위하자 성석린(成石璘)을 보내 서울로 모셔 왔다. 그러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함경도로 들어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태종이 차사(差使)를 보내어 돌아오기를 권유하니, 차사마저 돌려보내지 않고 죽였다는 전설이 있어 함흥차사란 말이 생겨났다. 뒤에 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다.
만년에 불교에 전념 하다가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로 승하하였다. 그의 진영(眞影)이 영흥(永興)의 준원전(濬源殿) 및 전주(全州)의 경기전(慶基殿)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능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건원릉(建元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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