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쉼터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 나타난 신기한 영상

컨텐츠 정보

  • 0댓글

본문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 나타난 신기한 영상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 나타난

신기한 영상
강물에 비친 그림이 신기하게도 두 모자(母子)가 합장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림이 움직여서 잘 안 보이시지요?.

축소한 아래 그림을 보시지요.

gido.jpg

정지된 축소 그림이랍니다.
모자가 합장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gido-1.jpg

90도 회전시킨 사진입니다. 참 신기하지요?.
gido-2.jpg

관련자료

댓글 11

문정현님의 댓글

정해관 선배님 道통하셨나봐요~
이인규 목사님 댓글이 맴돌아서 다시
왔는데 제 감상과 똑 같은 댓글을 올리셨어요.
건배~ 쨍그렁 !~ 와장창 !!~~

그래요 ~ 강가에 물이 없으면 맑지 않으면
대칭형으로 어림반푼도 없는 비경이구요.
꼭 찝어서 소화시켜 주시니 이뻐다고 다시 왔답니다.
야호 !~ 흐미야 ~ 정현이 표현으로 감동 먹었습니다.
그래도 배 고파 ~ 점심 식사하러 갈래요.

판기 목사님!~
힛!~ 그래요. 타이밍이 잘 맞은듯 하고 !~ 그림 같이
그린것 같기도 하고 ...
그런게 중요하겠어요. 단종사 의미를 짚어 보기도 하고
댓글속에서 이런저런 배움이 많습니다.
아!~ 비빔밥 먹고 싶어요. 전주 비빔밥 !~ 반갑심더 !~

이판기님의 댓글

가물어 물이 빠지거나 비가와 물이 불면 그림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겠네요. 바위와 물의 높이와 그림자가 절묘하게 어울린 작품인줄 아뢰오~~~

정해관님의 댓글

인규 목사님!
이제 좀 시간이 나시겠지요?
이 사랑방 [우리광장]에서 '학수고대'하는 여러 형제들의 간절한 눈길을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그림 하나에서 '물'과 '변화'의 소재를 찾아 훈화로 엮으시는
목사님의 그 '직업적 안목'에, 정현씨 표현으로다가 '감동 먹습니다' 仰 健筆!!!

이인규님의 댓글

위치의 변화와 조화를 적절하게 활용한 작품으로 많은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맑은 물이 없었다면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치를 세워보는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감동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사 물이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천층만층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위치를 바꾸어보는 변화를 시도할 줄 아는 자가 어느 시대에서나 감동을 만들어 가는 입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숨진 단종이 왕위에 복위된 때는 승하 241년 후인 1698년(숙종 24년). 조선임금 중 유일하게
왕릉에서 제사를 모시는 단종제향도 그때 시작됐다.
생후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품에서 커
열한 살(1452년)에 왕위(조선 6대 왕)에 오른 단종. 그러나 재위 3년 1개월 23일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돼 끝내 사약을 받고 숨진다. 그리고 시신은 버려졌다가 한 의인에 의해 몰래 매장된다.

청령포로 향한 유배 길. 코스는 원주∼신림∼주천이다. 신림 황둔을 지나 오르던 한 고개에서
임금은 금부도사 왕방연에게 묻는다. 무슨 고개가 이리도 험한가 라고.

그러자 왕방연은 이렇게 답한다.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이제부터는 군등치(君登峙)라고 하옵지요. 군등치를 내려서면 신천리.
신천을 지나 남면 북쌍리로 가는 도중에 배일치(拜日峙)라는 고개가 있다. 단종이 땅에 엎드려
서산에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했다는 곳이다.
소나기재는 단종제향이 시작된 후 제물을 나르던 사람들이 단종의 원망처럼 퍼붓던 소나기를 오를 때마다 만났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 뒤로는 첩첩산중, 앞에는 강물 막혀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는 알려졌다시피 천혜의 감옥이다.
뒤로는 톱날 같은 뾰족 봉이 줄지은 육육산이 버티고 있고 그 앞과 좌우는 강물에 가로막힌
형국이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룻배 없이는 오갈 수 없는 섬 같은 땅이다.
강물에도 냉수대와 소용돌이가 있어 헤엄도 용이치 않다.

청령포 송림에 들어서니 담장 너머로 기와집이 보인다. 단종이 기거했다는 어가인데 최근에
지은 것이다.
이 안에서 있는 단묘재본부유지비는 이곳에 어가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석(1763년·영조 39년)이다.
오른쪽 숲으로 나가면 금표비가 있다. 동서로 삼백척, 남북으로 사백구십척 공간에는 어떤 이도 접근을 엄금하는 내용인데 1726년(영조 2년)에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해관님의 댓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안 같도다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이 기회에 '단종애사'와 관련이 된 글들을 찾아 보세요. 청령포, 영월, 장릉 등등...
노래가 슬픈 연유, 하필 모자상이 저렇게 또렸이 나타나는 연유가 풀릴 지도 모릅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위에 사진들은 잘안보이는데 아랫것 보니 정말 신기하네요.
어째서 저런 바위가 생겼을가요.노래가 너무 구슬픕니다..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