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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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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멘 식사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 일본항공을 이용한 이유가 순전히 대한항공 보다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나리타공항에서 여덟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는 불편을 사전에 통보받고도 감수한 것은 순전히 여행경비를 절약하려는 궁여지책이였다.

아마 교통수단 중에 항공요금처럼 들쭉날쭉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항공사에 따라, 계절 따라, 여행사 따라 천차만별이다. 공통점은 국내항공기보다 외국항공 요금이,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에, 많은 직원을 거느린 이름난 여행사보다 직원이 고작 한두 명인 여행사의 항공요금이 보다 저렴한 것 같다. 내 경험이다.

나리타공항 제2터미널 별관에 도착하여 미래형 전차 같은 셔틀로 본관 대합실로 이동하였다. 샤워 룸이나 수면실 앞을 서성대다 만만치 않은 요금표지판을 보고 마음을 접고 명품 면세점들을 산책하며 기웃거리다가 야후에서 서비스하는 비즈니스센타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를 검색하며 시간을 메워 나갔다.

공항 대합실에서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를 제외하고는 레스토랑은 두 곳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는 바를 겸한 식당이기에 식당전문점은 어설프게 뷔페를 겸한 지구촌 음식을 시중드는 한 곳 뿐이었다. 식당입구에서 샘플 메뉴판들을 살피며 망설이다가 카레라이스로 결정하였다.

면류가 발달된 나라이기에 밥이 따른 마땅한 메뉴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이십 여 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방문한 일본여행에서 골라 사먹은 음식이기도 하다. 태어나서부터 얼큰하고 건건한 맛에 길들어진 혀로서 싱거워 밍밍한 맛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던 나날의 관광일정에서 주워진 자유 시간으로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며 식당가를 누비다가 끝내 얼큰한 음식을 발견치 못해 택한 탈출구가 카레라이스였다.

주문한 카레라이스의 값을 선불하니 손바닥 크기의 두툼한 케이스형 전자번호표를 주고 기다리라 했다. 빈 식탁 앞에 앉아 항공기가 그려진 번호판의 짙노란색 전자번호표를 만지작거리며 살펴봐도 정확한 사용법을 터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눈치 빠른 한국인의 후예답게 옆 좌석에 앉은 손님들의 동태를 살펴 탁자 앞에 불빛으로 구분된 지점에 전자번호표를 놓았다. 각 좌석마다 탁자머리에 컴퓨터에 연결된 지점에 전자번호표를 놓으면 컴퓨터 화면과 연결되는 시스템이었다. 손님이 어느 좌석에 앉더라고 쉽게 시중을 들 수 있는 것이다.

까마득히 잊힌 이십여 년 전의 카레맛을 되살리려 끙끙되며 어떤 음식일런가? 기대감에 부풀었다. 얼마 후 주문한 음식이 와서 식탁에 놓이면서 전자번호표는 회수되었다. 그런데 수저를 들어 먹으려니 이상한 사실이 금방 눈에 띄었다. 아무 반찬도 없이 달랑 카레라이스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이기에 김치는 주지 못할망정 설마 ‘다꽝’이라는 단무지마저 주지는 않을 터라고 자위하면서 아마도 반찬은 셀프인 것 같아 일어나 식당 안을 한 바퀴 돌며 두리번거렸다.

허나 물 뿐이고 커피나 녹차를 주문하면 가져갈 수 있는 설탕과 푸림은 있되 단무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치는 종업원의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다꽝’은 안 주느냐? 종업원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뻣뻣이 세우며 등을 돌렸다.

황당해서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니 우동을 먹고 있는 일본 손님들도 단무지는 없었다. 그래도 아주 맛있게 후루룩 짭짭 먹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카레에 밥에 비벼 밍밍한 맛에다 국물 없는 마른입이 뻑뻑하여 삼키기가 쉽지 않아 한술씩 넣어 울겅불겅하며 우물거리며 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국제공항에서 식사하는데, 반찬도 없이 밥을 먹는단 말인가? 그것도 싸지 않는 제값을 치루면서 말이다.

갑자기 코허리가 시큰해지며 더 목이 멘다. 아내 생각이 나면서 눈시울에 안개가 끼려한다. 까다로운 민감한 성격 탓인지, 입맛 때문인지 숱하게 까탈을 부린 자신의 처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후회가 막심해진다. 반찬 하나도 없어도 불평 한마디 못한 채 꾸역꾸역 청승맞게 먹는 무기력한 사내가 무엇이 잘났다고 집안에서 밥상머리에 앉아 반찬투정을 해 댔단 말인가. 간땡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어 만성 중병에 걸린 모양이다. 이제 귀국하거든 다시는 반찬투정 같은 거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실 한국 음식문화야 말로 참으로 다양하고 배려가 깊으며 몸에 무척 좋은 것 같다. 발효식품인 김치를 위시하여 간장, 된장, 고추장이 그 뿌리가 된다. 된장, 간장은 일본과 중국에도 있지만 고추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통 양념이다. 이 양념을 이용한 여러 찌개나 조림, 국들이 끼니마다 입맛을 돋운다. 이 발효식품을 이용한 여러 장아찌들과 소금에 절인 젓갈들이 밑반찬이 되어 손쉽게 식탁의 빈자리를 메워 나간다.

이제 아내가 즐기는 양배추 삶은 것이나 삶은 다시마도 두말없이 주는 대로 먹은 것이요, 내 입맛에는 별로인 명란젓, 오징어젓갈, 청란젓도 군소리 없이 먹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 손길에 길들여진 멸치볶음, 콩장만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초식동물이냐고 푸념하며 나물 가짓수를 줄이라고 투덜대지 않을 것이다. 간을 맞추지 못해 입맛이 맛나지 않더라도 타박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맛깔스럽지 않고 먹음직스럽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먹을 것이다.

아무 찬도 없이 꾸억꾸억 먹던 나리타공항의 괴로움은 없을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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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문정현님의 댓글

경숙언니 !~ 낯익은 이름이네요. 찾아 볼께요. 지역이 틀려서 자주 만날 수
없지만 아마도 ........... ^^*

신주쿠선!~ 그랬군요. 전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아닌것 같다고 상대가 우기고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배웠냐고 이럽니다요 !!~~ ㅋㅋㅋ

대숲님의 댓글

오다하라에 사는 여동생 이름은 이경숙으로 자전거에 아들들을 앞뒤로 태우고 동네를 오가면 흥미진진한 구경꺼리가 된다네요. 딸은 히로시마가 아닌 동경 신주쿠선의 東大島(히가시오지마)역 근처에 삽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인으로 오해받고 있답니다. 일본디자인회사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근무하다 아기출산때문에 쉬고 있는데, 다시 근무해 주길 고대한다네요

문정현님의 댓글

6500가정 여동생이 누구실까요? 히로시마에 따님께서 일한가정으로
살고 계시다니... 국제가정의 모델이군요. 동생을 일본으로 시집 보내시고
따님까지 일본으로 보내셨다니... 가끔씩 에휴 싶은가요?
.
.
잔치 코스음식과 대중음식점의 차이는 비교할 바가 못 되구요.
대체로 일품요리에 붙어오는 그런 식문화가 아닌거 같아요.
일본문화는 그냥 주먹밥 문화 고거이 진짜랑께요... ㅋㅋㅋ
대숲님 댓글로 처음 뵙네요.
오늘 인심 쓰셨으니 좋은일 더 많이 담는 하루 되이소.

대숲님의 댓글

여동생이 6500가정으로 축복받고 네 아들을 낳아 小田原市에 살고 있고 큰딸이 축복받아 1남1녀를 낳아 東大島 맨숀에 살고 있기에 가끔 갑니다. 양가의 사둔들에게 외식대접을 받지만,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한정식으로 여러 음식이 중국식처럼 나오는 코스요리였습니다. 우선 그릇 모양새나 디자인에서 미소를 가고 색상도 예술적이더군요. 사위는 일본인이지만, 출생이 아프리카 선교지이고 미국에서 성장해서 외식하면 근무지 롯폰기 근처에서 맥시칸 음식을 사주기에 일본문화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대숲님도 '간 큰 남자'로서 깨달음이 다소 늦었지 않나 그런 생각 입니다.
하늘 같은 마나님 앞에서 감히! 반찬 투정을 최근 까지 하셨다니 놀랄 일이고요.
세계의 모든 이들이 한국의 식당문화를 벤치마킹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고,
특히 전라도인의 식당에 가서는 놀란 입을 다물수가 어렵겟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인심 최고!!!

문정현님의 댓글

대숲님~!

몇해를 살아도 강산이 몇번 바뀐데도 아쉬운 이곳의 식당문화입니다.
소문난 우동집이나 라면집 어디를 가도 찬으로 나오는 것은 없지요.
마음 같아서는 단무지를 싸 가지고 다니고 싶은때도 많은데 그것 자체도
금기사항의 손님으로서 매너라 방법이 없네요.
.
.
덕분에 사모님께 반찬투정 하지 않으시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여정인가요?
아들과 남편의 차이가 그렇더군요.
같이 산 세월인데..........
남편은 어무이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정성을 드려도
맵다는 말만 하고 !~~~ ㅋㅋ

제 손에서 어르고 자란 아들은 엄니손맛이 배여있어서 매워도 맛있다고
먹어주는 기특한 생각이!~
고거이 남편과 아들의 차이랍니다.
.
.
맛있는 젖갈류를 싫어하신데도 할 수 없고, 콩장과 멸치볶음도 사모님께서는
솜씨를 발휘하실거니 복이 넘치십니다.
식당 인심은 한국이 참으로 넉넉하구만요 !~~
나리타 공항에서 8시간을 기다리셨다면 에휴 !~ 수고 많았습니다.
건필 하이소 !~

제가 단 댓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삭제하지 마셔요.
며칠동안 고민한답니다. 어떤 대목이 걸렸을꼬 !~ 아!~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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