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詩 <女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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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女僧(여승)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났다
쓸쓸한낯이 넷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설어워젓다
平安道의 어늬 산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샀다
女人은 나어린딸아이를따리며 가을밤같이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지아비 기다려 十年이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않고
어린딸은 도라지꽃이좋아 돌무덤으로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슳븐 날이있었다
山절의마당귀에 女人의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같이 떨어진날이있었다
(시집 <사슴>, 1936)
*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 금덤판 : ① 금광. 금점판
② 조선 때, 호조나 공조에 딸려 금광(金鑛)의 세금을 거두던 관청
* 섭벌 : 재래종 일벌.
*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백석하면 떠오르는 여인이 있다. 나타샤가 그 주인공인데 여기서 그 나타샤의 장본인이 김자야(기명: 김진향)라는 것을 백석 시인에 대한 회고 기록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적이 있으며 그녀가 쓴 <내 사랑 백석>이라는 에세이집을 통해 백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고백한 적이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오늘 같이 눈이 푹푹 쌓이는 밤이면 나타샤와 백석이 흰 당나귀를 타고 올 것만 같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며 백석(白石)은 그의 필명이다. 그는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고보를 마친 이듬해인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母와 아들」이 당선한 뒤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지와 <조광>의 편집부 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36년 1월 20일 시집「사슴」을 출간하여 시단에 데뷔한 이래 번역 작업과 시작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아 북한의 <조선문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2년 10월 무렵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루되어 일체의 창작활동을 중단한 뒤 1963년 그의 나이 52세에 숙청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점령기에 있었던 30-40년대에 그는 여러 방향으로 시를 쓰려한 탐색 시기와 민족 허무주의적 태도를 취한 4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개성적인 시작업에 몰입했던 백석은 간고 (艱苦) 한 시대적 상황만큼이나 고되고 신산스런 삶을 살다간 시인이다. 백석은 1988년 재북, 납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에 의해 문학적 면모를 드러내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백석의 시들 중에서 유난히 내가 女僧(여승)을 좋아하는 것은 백석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이 女僧(여승)이어서만은 아니다. 물론 여승을 처음 읽었을 때 찌릿함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달리 여승을 소재로 서사적 전개 양식을 통해 식민지 현실의 참담함을 그리고 심난스런 한 여자의 일생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잘 그려낸 울림통이 큰 시였기 때문이다.
전체가 4연(13행)으로 비교적 짧은 이 시는 시간적 경과를 통해 가족사의 몰락과 그 몰락에서 파생되는 여인의 기구한 삶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시적 감동을 강하게 전달시켜 주고 있는 작품이다.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여승의 시에는 현실의 모순과 극복을 위한 주체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드러나 있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에 대해 철저히 관찰자로서의 자세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시를 <이야기 시>라 하는데 KAPF의 시인에게서 보이고 있는 민족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 정열과 고통 대신 서사적 전개 양식을 통해 담담하게 자기 인식적인 성찰로 현실을 묘파해 나가고 있는데 서사적 전개를 통해 식민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한 그들의(임화, 김기진 등) 시와 백석의 시는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어 같은 ‘이야기 시‘이면서도 비교된다 하겠다. 여승은 그런 ‘이야기 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시이다. 서정주 시 <신부>도 서사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서정시이지만 서술 방식은 3인칭 전지적 서술이므로 객관적 서술(소설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인 <여승>과는 구별된다고 하겠다.
온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사연을 통해 감정의 미묘한 떨림이 서로 파장을 이루며 확산과 응축을 계속하는 생생한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연민과 슬픔, 원망과 서러움, 쓸쓸함과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를 서로 오가며 파동과 떨림을 계속하여 서러운 정서를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백석은 거의 모든 시행을 하나의 문장으로 배치함으로써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짧은 작품 구조로 단편소설 분량은 될 법한 여인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오늘 같이 눈이 푹푹 쌓이는 밤이면 나타샤와 백석이 흰 당나귀를 타고 올 것만 같다. 놓쳐 버린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백석의 또 다른 시들을 읽으면서 백석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길 바란다.
*이 내용은 방명록의 김옥열님의 아름다운 사연, 2세 게시판의 백석의 詩 등과 연관으로, 함께 학실히 (이대한 YS식 표현) 섭렵하는 계기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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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여승(女僧)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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