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카 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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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개
정해관님의 댓글
사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의 어머님들이 그러하셨지요. 해서 살아계실 때 불효했음을 면전(영정)에서 반성좀 하려고 했더니, 쓸만한 영정마저 준비하지 못해 고심 하던중, 김동현 형제(기획위원장)께서 초상화를 잘 그리신다고 최근에야 알게되어 부탁한 바 있답니다. 여기를 거쳐 가시는 분들이라도 이 광고성 언급을 눈여겨 보시고 (김동현 화백을) 활용하신다면 '누이좋고 매부도 좋고' '도랑치고 가재도 잡고' '꿩잡고 매도 잡고' '엎어진 김에 쉬어도 가는' 격이 될듯 싶습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오늘 아침 부인회장님께서 왜 저를 울리십니까. 감성이 유난히 예민한 제가 막내아들이랍니다.
28세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님께서는 저보다도 더 기뻐하셨습니다. 출가하는 수도승
처럼 삭발하고 만학하던 옛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당시만 해도 그 나이에 가방을 메고 등교한다는 배짱이 어떻게 나왔는 지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에피소드는 생략하렵니다. 절친한 중학교 동창녀석이 왜 하필이면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와 나는 학생으로 친구는 선생님으로 다음은 상상만 하세요. 노부모님께서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3년 수고하신 졸업식날 만학 뒷바라지 하신 어머니께서 다른 부모의 귀감이 된다고 하여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시던 날 모자가 상장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답니다.
28세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님께서는 저보다도 더 기뻐하셨습니다. 출가하는 수도승
처럼 삭발하고 만학하던 옛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당시만 해도 그 나이에 가방을 메고 등교한다는 배짱이 어떻게 나왔는 지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에피소드는 생략하렵니다. 절친한 중학교 동창녀석이 왜 하필이면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와 나는 학생으로 친구는 선생님으로 다음은 상상만 하세요. 노부모님께서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3년 수고하신 졸업식날 만학 뒷바라지 하신 어머니께서 다른 부모의 귀감이 된다고 하여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시던 날 모자가 상장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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