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의사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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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를 잘랐습니다. 미나리는 잘 살고 잘 퍼집니다. 같은 도시에 사는 777가정 김성도 형네가 십여 뿌리 나누어 준 것을 처마 밑에 심은지 두어해가 되었는데 넓게 퍼져서 이제는 한 번 자르면 한 소쿠리가 나옵니다.
주먹을 불끈 쥐었던 그날이 누구에게는 반백년이 누구에게는 60년이 누구에게는 70년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미나리만 같았어도 지금쯤은, 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이루지 못한 수고는 태산도 허문다 한 성가의 구절이 아픕니다.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의사 혹은 병원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병든 세상을 고쳐서 죽을 사람을 살리는 병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세상의 병은 얼마나 고쳐졌는가? 몇이나 살려 냈는가?
아마도 오늘 이 글을 읽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되나 봅니다. 오늘 읽은 글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의사짓을 제대로 한다는 일
박경철
대학시절에 존경하던 은사님은 평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평생에 걸쳐 나 때문에 죽은 환자가 한 명이라면, 나 때문에 산 환자가 백 명쯤은 되어야 그래도 의사짓 제대로 했다고 할 만하다.”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모 지방병원의 응급실에 파견을 나간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교통사고 환자가 급히 실려 들어왔다. 환자는 호흡이 가팔랐고 얼굴과 입술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가슴 부위에는 심한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얼른 보기에도 당장 몇 분 안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담보할 수 없어 보였다.
신출내기 초급 의사였던 나는 손이 떨리고 삼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청진기를 대고 호흡을 측정해본 결과 ‘외상성 기흉’이 의심되었다. 이 경우라면 흉부외과 전문의가 가슴에 작은 호수 하나만 집어 넣으면 바로 화생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간호사에게 빨리 외과 담당 전문의를 호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환자를 보고 있자니 순간적인 갈등이 일어났다. 흉관 습관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도착하는데 빨라도 20분 정도는 걸린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로 봤을 때 만약 기흉이 맞다면 아무리 늦게 잡아도 10분 안에 사망하게 된다. 기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슴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과정만도 10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방사선 촬영을 포기하고 청진만으로 상태를 판단하고 일단 삽관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진단이 맞은지 틀리는지 확신조차 없었다. 진단을 제대로 했더라도 삽관 능력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초조하고 혼란스러웠다.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내 속에서는 ‘기흉이 맞든 틀리든 이 환자는 사망확률이 높다. 기흉이 아니더라도 의사로서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우선 바늘로 가슴을 찔러서 공기를 빼보자. 어차피 그냥 둬도 죽는다.‘라는 절박함과, ‘아니다. 그럴 경우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일단 정확한 판단이 필수다. 게다가 나는 인턴이 아닌가. 만약 바늘로 가슴을 찌른 후에 환자가 사망하면, 어차피 사망할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보호자들은 내가 가슴을 찔러서 환자가 사망했다고 내 멱살을 잡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는 평생 의료사고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신세를 망칠지도 모른다.’ 라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환자는 방사선 촬영을 위해 엑스선실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2-3분 후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엑스선 사진이 막 현상되어 나오는 순간에, 호출받은 외과의사가 응급실로 들어섰지만 환자는 불과 그 5분 정도의 시간 차이 때문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환자가 사망한 다음 현상된 엑스선 사진은 외상성 폐기흉이었다.
늦게 도착한 외과의사는 허탈해하는 내 등을 두드리며 “만약 그 순간에 청진만으로 가슴을 찔렀다면 설령 그 순간 운 좋게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을지 몰라도 앞으로 그런 객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 백 명은 죽이게 될 것”이라며 위로했다. 그러나 내가 좀더 적극적인 처치를 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환자에 대한 미안함은 아직도 가슴 속 앙금으로 남아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나로 인해 살아난 환자를 카운트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환자가 백 명은 고사하고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의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20년인데 그 사이에 내가 꼭 살릴 수 있는 환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어쨌거나 그 환자가 유명을 달리한 10월 2일은 내게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건만 그날의 아픈 기억은 해가 갈수록 더 또렸해진다.
만약 나를 의사에 비유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돌팔이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열과 성을 다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위 의사가 겪은 바와 같이 병을 고치는 일은 정성만으로 되지 않고 의술이 더해져야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나는 물러 났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전체적으로는 나 같은 돌팔이 보다는 정성과 의술을 겸비한 제대로 된 의사들이 훨씬 더 많아서 세상의 병을 고치는 훌륭한 병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식구 300여명이 모이는 대화방에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아베 선생을 살해한 사람의 모친이 0 0 였음이 확인되었다 했습니다. 살해자가 모친이 형편에 넘치는 헌금을 하고 파산을 한 것이 분해서 0000관계자를 해치려 했는데 확인하기가 쉽지 않던 중 아베 선생이 0000 행사에 영상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알게 되어서 표적이 그 쪽으로 옮겨 갔다고 진술을 하였다는데, 이 사람의 모친이 00 였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했는데 가슴이 쿵 무너졌습니다.
나도 뉴욕에서 공직을 하는 동안 뭉칫돈을 받아다 써 보았습니다. 꽃을 들고 나갔다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일본 00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형편에 넘치게 헌금을 하려하는 00가 있으면, 마음은 열 배로 받고 물질은 형편이 되는 만큼만 받는 교단으로 성숙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이대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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