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와 수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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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가 분파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선정 방식을 두고 충돌하면서다.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세상을 뜨자 추종자들은 메카에 모여 무함마드의 친구인 아부 바크르를 후계자(칼리프)로 선택했다. 메디나의 무슬림은 이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자손만이 이슬람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유일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메디나에서 알리를 추종하는 당파라는 뜻의 ‘시아 알리’를 조직했다.
이때부터 아부 바크르를 정통으로 여기는 수니파와 알리를 따르는 시아파의 오랜 적대관계가 시작됐다.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661년 암살되고 680년 알리의 차남 후세인마저 반란을 일으키다 살해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시아파는 전세계 16억 이슬람교도 중 10%가량인 소수파다. 이란과 이라크 등에서만 다수 종파다. 이란과는 달리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 종파임에도 수니파가 줄곧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는 박해를 받았다.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지면서 시아파가 집권했지만 기득권을 상실한 수니파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무슬림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 이집트, 예멘, 레바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 이슬람 국가에서 다수 종파다.
이라크가 또다시 포연에 휩싸였다. 이라크 정부에 맞선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가 수도 바그다드 턱밑까지 진격했다. 독립국가를 꿈꾸는 북부 쿠르드족까지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이라크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고 시리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라크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개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2003년 후세인 정권을 타도한 뒤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이후 8년 남짓 이라크 개혁을 위해 병력 17만명을 주둔시키고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수니파와 시아파 분쟁으로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라크 사태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제3차 이라크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세계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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