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컨텐츠 정보
- 0댓글
-
본문
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오신 것은 결혼초 한
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어머니는 아들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일을 해가며 악착같
이 돈을 버셨다 고 한다.평생 그렇게 일만하시던 시어머니
는 아들 둘 다 대학졸업 시키신 후에야 일을 줄이셨다고 한
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
셨었다.
고생도 안해본 서울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
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가진거 없는 우리 아이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아르바이트를 해가
며 등록금을 보태고 용돈을썼다고 했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연애
는 커녕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늘 좋다는 친구들 후배들이 줄줄 따른다.
둘 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건
강하게 그을린 얼굴이 좋았다 .
건강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내가 먼저 고백했
다.
그는 망설였다. 자기는 가진거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
이라고.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였고,
삼고초려 끝에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를 우리집에 데려갔
다.
그의 외모와 직업에 우리 부모님은 그를 반겨주었다.
집이 지방이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을 때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진거라고는 월세 원룸 보증금과 얼마간의 저축이
전부다 했을때 아빠가 담배를 피우셨다.
그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
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한번 못 펴시고 우리 형제 위
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가서도 영은이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
만, 그래도 영은이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는 제 결심 이것만 높이 사주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주신 돈과
회사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와
내가 모은 얼마간의 저축으로 혼수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버이날과 어머니 생신이 겹쳤다. 일부러 주말을 잡
아 내려갔다. 시동생도 오고 어머니와 마당평상에서 고기
도 구워먹고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먹는데 그 맛이 세상에
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이었다.
그날 밤 작은 방에 예단으로 보내드렸던 이불이 깔려있었
다.
>
어머니는 한번도 그이불을 쓰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싫다고 뿌리치는 어머니 손목을 끌어 작은방으로 모셨다 .
어머니하고 자고 싶어요. 신랑은 도련님하고 넓은 안방에
서 자라고 할거에요.
어머니랑 자고 싶어요.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
도 못갈아입었다고 이불 더럽혀 지고 니가 불편해서 안된
다.
냄새나 안된다고 자꾸 도망가려 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소주마시고 싶다고 함께 소주를 먹었다. 어
머니가 찢어 주시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소주를 홀랑 홀
랑 비우고 취해 잠들어버렸다.
자다 목이 말라 깨어보니 나는 이불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고 어머니는 겨우 머리만 요에 얹으신 채로 방바닥에 쪼
그리고 주무 시고계셨다.
슬쩍 팔을 잡아 요위에 끌어드렸다. 야야~ 고운 이불 더럽
혀 진다.
냄새밴대이............ 어머니에겐 냄새가 났다 정말. 울엄
마에게 나던 화장품 냄새를 닮은 엄마냄새가 아닌, 뭐라
말할수 없는 부뚜막 냄새 흙냄새 같은 그 냄새가 좋아서 나
는 내려 갈때마다
어머니와 잔다.
이제는 손주와 주무시고 싶다며 나를 밀쳐 내시지만 악착
같이 어머니 한쪽 옆자리는 나다. 어떤 밤이던가 어머니
옆에 누워 조잘거리던 내게 니는 꼭 딸 낳아라.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좋다 하는가보다. 니가 이래해주니 니
가 꼭 내 딸같다~ 뒷집이고 옆집이고 도시 며느리본 할망
구들 다 나 완전 부러워 한다.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
서 와도 눈치보기 바쁘다 하드라.
뭐 당연하다.
내도 니가 첨 인사왔을 때 어찌나 니가 불편 하진 않을까고
싫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지...
말도 못해. 근데 당연한거 아이가...
그러니 딸이 좋다 카는 거지...
나는 니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뭐 딸 없어도 되지만 니
는 꼭 딸 낳아라...
진즉부터 혼자계시던 어머니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단
이 났다.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시다 넘어지셔서 가뜩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 다리가 아예 부러지셨다 했다. 도련님이 있
는 대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노인이라 뼈도 잘 안붙는다고 철심도 박고 수술하고 3개
월을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퇴원을 하셨다.
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나는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우리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오신다고 신이나 있고, 표현 할 줄
모르는 남편은 슬쩍슬쩍 그방을 한번씩 들여다 보며 웃는
것을 나도 안다. 당연히 우리집에 곱게 오실리가 없다.
어머니! 저 둘째 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허
구헌날 노래교실에 뭐에 승민이도 잘 안 봐 주시고, 제가 회
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
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땡겨 죽겠단말이에
요!
어머니 김치 담가주세요~ 그 말에 못이기는 척 어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이 말했다. 니가 모시고 살아 봐야 힘든 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래 맞다. 내가
안해 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
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증인이니, 혹여나 어머니가 미워
지고 싫어져도 나는 이제 어쩔수 없다. 그냥 이게 내 팔자
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같이 사는 수밖에
<옮긴글>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