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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 <중앙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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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   [중앙일보]
그 단호함이 놀랍다. 느닷없고 황당하다. 개성공단 근로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린 박근혜 대통령의 서릿발 같은 결단 말이다. 지난 주말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 회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마이크 앞에 섰을 때만 해도 나는 그의 입에서 철수 ‘권고’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웬걸, 철수 ‘결정’이었다. 선택의 여지를 배제한 사실상의 귀환 ‘명령’이었다. 우리 측 잔류 인원이 모두 빠져나오고, 전기와 수도 공급마저 끊기면 개성공단은 불 꺼진 유령도시가 된다. 전면 폐쇄를 각오했을 때나 둘 수 있는 ‘초강수’다.article.asp?total_id=11377103&ctg=200

 정부는 하루 말미를 주고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를 북한에 제의했다. 시한 내 응해오지 않으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배수진도 쳤다. 꼬리를 내리는 인상을 주며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부할 수밖에 없는 궁지로 북한을 내몰았다. 예상대로 북한이 단호하고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히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류 인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렸다. 남이나 북이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고민은 보이지 않고, 기싸움에서 밀릴 수 없다는 오기만 넘쳐난다.

 개성공단 전면폐쇄 가능성에 대비해 남북은 서로 책임 전가에 급급한 모습이다. 북측은 근로자 5만3000명 전원을 철수시켜 공단 가동을 중단시켰다. 통행을 먼저 막은 것도 북측이었다. 북한은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도발적 언사로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어렵게 한 책임을 남측 정부와 언론에 묻고 있지만 전시상태 선포 등 일련의 도발적 조치로 남북관계에 극도의 긴장을 조성한 것은 북한이다. 잔류 근로자에 대한 식자재와 의약품 공급마저 막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박 대통령은 대화를 제의했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거부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에 밀릴 수 없다는 결심을 굳히고, 한 번 더 대화를 제안하되 또다시 거부하면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북한이 거부할 줄 뻔히 알면서 북한에 본때를 보여줄 요량으로 최후통첩성 대화를 제의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심으로 대화할 생각이 있었다면 한·미 합동 독수리연습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대화를 제안하거나 적어도 그때까지 말미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늦춘다고 잔류 근로자들의 신변이나 건강이 당장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정부가 안 나서도 근로자들 스스로 알아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속내를 잘 모르겠다. 이 기회에 북한의 기를 꺾어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일단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몰아붙여서 북한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말을 들을 북한이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 정부 안에서조차 제대로 조율이 안 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남북한 당국의 치졸한 기싸움으로 개성공단에 투자한 남한 기업들과 그곳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런 것인가.

 바리바리 짐을 실은 차량들이 피란민 행렬처럼 개성공단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싶다. 박 대통령은 “TV로 그걸 보면서 세계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려 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볼까 싶기도 하다. 애써 장만한 값진 가재도구를 부부싸움 하면서 마구 내던지는 꼴 아닌가.

 끝까지 남아 있던 50명의 지원인력이 어제 모두 철수함에 따라 이제 개성공단은 물론이고 북한 땅 전체에 우리 국민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가 됐다. 남북 간 대화 채널도 모두 단절됐다. 소통을 하고 싶어도 이젠 채널이 없다. 미국이나 중국에 중재를 부탁한다면 이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 정전 60년이 되도록 남북이 제 살 깎아먹는 소모적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변 강대국 탓만 할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의 옹졸함과 어리석음부터 탓해야 한다. 한쪽만의 책임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지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개성공단은 포기할 수 없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속에서도 개성공단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공사를 중단하진 않는다.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 것은 사고 좀 났다고 고속도로 공사를 중단하는 꼴이다. 우리가 먼저 기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손은 강자가 먼저 내미는 법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도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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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유노숙님의 댓글

처음부터 개성공단엔 희망을 걸면 안되는거였나바요. 공산당 하고는 대화를 하는 자체가 안되는일이라네요. 아무튼 거기다 투자해서 손해 본 사장님들 국가에서 보상을 바라야지요.. 정부를 믿고 투자 한거니까 보호해줘야 합니다......기 싸움이 언제 까지 갈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지쳐야 무언가 이루어질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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