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개 삼년에 풍월~~(忍)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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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래에 한 형제님께서 忍자에 대해서 잘 풀어 주셨는데
저의 다른 각도에서 풀어보는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좋은글에서 좋은 뜻으로 풀어놓았지만 그 忍자의 숨어있는 진정한 뜻은
이러하다고 생각하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니 누구를 비하하거나
글의 맛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참을 忍자는 누구나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간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많이 참으라는
뜻이겠지만 참을 忍자를 풀어 본다면 칼날 刃자 아래
마음 心자가 눌려있거나, 마음이 칼날을 들거나 이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마음과 칼날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꼴입니다.
내 마음이 칼날이 될 수도, 칼날이 내 마음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忍을 할 때는 칼날처럼 예리한 판단을 하여 분별력이
있는 마음으로 남에게 칼날 같은 마음으로 상처를 주려고 할 때
그 때 참으라는 것이지 바보처럼 마냥 참아서 좋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忍자에 있는 그 칼날과 마음이 어떤 형상일까요?
칼의 종류에도 허다한 칼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도 가지가지 다양한 색깔의 마음들이 있습니다.
먼저 忍자에 들어있는 칼날 刃자는 부엌칼이나 푸줏간에서 쓰고 있는
그런 칼이 아닐 것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匕首가 아닐까 합니다.
왜냐면 匕首란 옛날에 자객들이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상대방을 위해하든 날이 아주 날카롭고 길이가 짧은 단도입니다.
어떤 예로서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꼽다.” 라는 말처럼
항상 마음이나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匕首입니다.
그리고 忍자에 들어 있는 그 마음이란 어느 누구나 모든 가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는 그런 종류의 칼 같은 마음,
누구에게나 정을 주거나 받으면서 예리한 분별력과 판단으로서 모두에게 사랑과 정을 도려 줄 수 있는
마음속에 칼을 품고 살라는 것이 아닐까요.
칼이라면 실질적인 칼이 아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자존심과
남의 상처를 도려내어 치유케 하는 사랑의 칼이 아닐까요.
남에게 위해하는 나쁜 칼이나 그런 삿된 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忍자는 그 깊은 내면에는 잔인할 정도의 참을성, 그리고 너무
차가울 정도의 동정심이나 사랑이 결핍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 누구나가 자존심이라는 칼 한 자루 정도는 마음속에 품고
살아 왔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품고 살아 갈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자존심의 칼을 품고 살아왔으니까요.
저의 자존심의 칼은 누군가가 나 자신을 해하려할 때
칼날을 바짝 세우고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그런 자존심의 칼이 없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세상에 저 자신이
없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못난 사람인 제가 살아온 삶,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가슴을 펴고서 살아올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준 것이
바로 나의 가슴에 품고 살았든 그 자존심인 것입니다.
그 자존심이 바로 내 마음속에 칼, 匕首인 것입니다.
그 匕首가 내 자신의 목줄을 겨냥하기 했었고,
남의 자존심을 겨냥하기도 했었지만
아직껏 제 스스로 匕首를 날려본 적은 없었습니다.
匕首의 칼날이 그리 예리하지 못하면 나를 위협하는 적들에게
위협이 될 수가 없을 것이며,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匕首의 칼날이 예리하지 못하면
나 자신이 스스로 쉽게 나태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존심이란 匕首는 무딘 것 보다는 예리한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예리한 匕首라면 남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겨질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몸이나 마음을 베어,
나 자신에게 자연치유가 힘들만큼의 자상을 남기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나의 자존심의 匕首 때문에 오늘까지의 나를 감싸주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여러 이웃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하겠지요.
그리하여 오늘 過猶不及이란 뜻 깊은 사자성어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자존심만 가지고서
사랑의 匕首를 품고 살렵니다.
끝으로 참을 忍자는 그냥 막무가내 참으라는 것이 아니고
남의 마음에 匕首를 꼽고 싶을 때, 남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될 적에
참으라는 것이지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 아닐 테지요.
세 번을 참으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이상 열 번이고 백 번을
참으라는 말은 없는 것 같군요.
누구나가 쥐어박아서 찌그러지는 한이 있어도 깨어지지 않는
간담도 없는 그런 냄비가 아닌, 어느 누가 살짝 던지기만하면
깨어지는 뚝배기보다 못한 것이 저의 본질임을 알려드립니다.
뚝배기보다도 못난 사람이 서당 개 흉내를 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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