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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의 쾌거 ---황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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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오은선의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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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영역이라는 ‘히말라야’. 산스크리트어로 ‘눈(hima·雪) 덮인 곳(alayas)’이라는 뜻이다. 남극, 북극에 이어 제3의 극지로 불린다. 동서 2500㎞ 품안에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 14개를 거느리고 있다. 14좌다. 이 산맥에 줄지어선 고봉준령을 오르기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뼈를 깎는 듯한 영하 30∼40도의 추위와 인간의 몸을 먼지처럼 날려버리는 광풍, 그 속에서 희박한 산소를 겨우 들이쉬며 수직에 가까운 빙벽을 올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죽음을 무릅쓴 사투다.

    그뿐인가. 눈 덮인 산에는 길이 없다. 여기저기 입을 벌리고 있는 천 길 낭떠러지 크레바스는 인간이 한 발 내딛기를 바라는 것처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최고봉은 에베레스트. 해발 8848m. 처음 등정에 성공한 이는 1953년 5월29일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 그의 업적은 고산 등반보다 남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이타주의에서 더욱 빛난다. 산을 정복 대상이 아닌, 경외하는 히말라야 주민들을 도우며 살았다. 티베트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일러 ‘이 세상의 어머니’를 뜻하는 초모룽마라, 네팔인들은 ‘하늘의 여신’을 의미하는 사가르마타라고 부른다.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 산악인은 고상돈. 1977년 9월이다. 2000년 7월31일 엄홍길은 K2 정상을 밟음으로써 14좌 등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은선 대장이 어제 히말라야 10위 고봉 안나푸르나(8091m)에 오름으로써 여성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1993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첫 해외원정을 시작한 이래 아시아 여성산악인 최초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성공 등 그는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 왔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철녀의 쾌거다.

    마음도 곱다. 지난해 7월 14좌 등정에 나섰다가 낭가파르밧 산을 내려오는 도중 추락사한 고미영 대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 아름다운 우정이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산처럼 제자리를 지키며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면 한결 윤기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산의 가르침이다.

    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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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조항삼님의 댓글

정해관 사무총장님께서 오은선 여성 산악인의 쾌거의 이면을 소상히 파
헤치시는 부연설명에 감탄과 탄성이 혀를 내 둘르게 합니다.

참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신의 영역까지 도전한 승리의 순간이
대단하다는 말 뿐이 안 나오네요.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소식 고맙게 잘 보았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산이 좋아 안정된 직장도 버린 철녀 오은선20100428000814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어릴 적 아버지와 북한산에 오르며 산과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85년 수원대 산악회에 입회하면서였다.

키154㎝, 뭄무게 50㎏의 가냘픈 체격이지만 대학에 다닐 때 대학산악연맹이 1년에 한 번씩 여는 마라톤 대회에서 언제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체력을 타고났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고지대 적응 능력도 뛰어나 고산 등반에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8천m 이상 높이에서도 등정하고 내려올 때 힘이 달릴 것 같으면 단호하게 포기할 줄 아는 냉철한 판단력도 갖추고 있다.

고산 등반에 필수적인 육체와 정신적 조건을 갖춘 오 대장이지만 평소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산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할 뿐"이라며 산에 대한 애정을 14좌 완등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대학 산악부에서 산과 사랑에 빠진 오 대장은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낸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당시 다니던 서울시 교육청에 장기 휴가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이 원정대의 지현옥 대장과 김순주, 최오순은 그 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천848m)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오은선은 당시 함께 갔다가 등반대장이 곧바로 내려오라고 해서 하산했다.

오 대장은 그로부터 꼬박 11년 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단독 등정하면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첫 외국 원정의 아쉬움과 갈증으로 오 대장은 이후 더욱 고산 등반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원정에 드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던 오 대장은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거나 학습지 교사로 일해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오 대장은 "당시만 해도 히말라야는 꿈이었다. 외국 원정은 경비 마련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시에는 여자에게 돈을 대 주는 곳이 없어서 스파게티집을 운영했다"며 외국 원정 초기 어려움을 회상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한 오은선은 1997년 가셔브롬Ⅱ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14좌 완등에 앞서 7대륙 완등을 먼저 목표로 삼은 오 대장은 2002년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 등정을 시작으로 이듬해 북아메리카대륙 매킨리에 올랐다.

2004년 한 해 동안 에베레스트 등 5개 대륙 최고봉을 연거푸 오르며 여성 산악인으로는 12번째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오 대장은 14좌 중 두 번째로 오른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기로 고산 등반에 필요한 경험을 얻었을 뿐 아니라 14좌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서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동료 산악인 박무택을 보고도 정상에 올라간 것을 두고 매정하고 독하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오 대장은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며 "저렇게 죽지 않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다른 산악인 뒤를 따라 올라갔다"고 말했다.

2006년 시샤팡마, 2007년 초오유와 K2에 오른 오 대장은 2008년 5월 마칼루를 시작으로 2년 동안 매년 4개씩 8천m급 봉우리를 오르며 '철(鐵)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 수년 동안 1년의 절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보냈지만 국내에 있을 때는 수영과 마라톤, 가벼운 등산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면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 왔다.

산에 빠져 40살이 넘도록 아직 독신인 오 대장은 "아직 산만큼 나를 사로잡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14좌 완등 이후에는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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