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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 <세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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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

한국 현대사에 크고 깊은 족적 남기고 영면하다.

인동초다운 도전과 성취의 삶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어제 서거했다. 비록 천수(天壽)를 다한 부음이라고는 하나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애통하고 비감하다. 한 시대가 속절없이 저무는 감회도 가슴을 저민다. 삼가 명복을 빈다.

‘김대중’ 이름 석 자 없이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족적은 크고 깊다. 고인의 신념과 비전, 좌절과 성취의 드라마가 멀리 1960년대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의 톱니바퀴와 빈틈없이 맞물려 펼쳐졌다. 고인의 생애는 바로 한국 근·현대사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고인은 강인한 생명력을 토대로 민주화, 수평적 정권교체, 환란 극복, 남북 화해협력 시대 개막과 같은 굵직한 현대사의 획을 줄줄이 아로새겼다. 국내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약자 계층에 따뜻한 손길을 보내고 인권을 증진시켰다. ‘정의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사회’에 대한 꿈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이런 성취와 공로는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인은 햇볕정책을 비롯한 정책적 유산을 생산적으로 계승하는 문제를 숙제로 남겼다. 고인이 앞장서 물꼬를 튼 지방자치,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회복지와 같이 민생에 직결되는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세계 속의 한국을, 미래의 한국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개선방향 모색과 의견 수렴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인은 1970·80년대 ‘인동초’로 비유됐다. 군사독재의 풍상을 꿋꿋이 견뎌내 민주화의 꽃망울을 터뜨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리 표현된 것이다. 한국 유권자가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되찾은 것은 87년의 일이다. 고인이 영원한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박해와 탄압을 무릅쓰고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과연 민주화가 앞당겨졌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YS는 92년 대선에서, DJ는 97년 대선에서 각각 승리했다. 민주주의의 관건인 평화적 정권교체의 위업을 완성한 것이다.

고인은 “국민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다. 중우(衆愚)정치나 여론정치에 매몰되지 않도록 선견지명을 갖고 나아갈 길을 찾되 독선과 독주는 피해야 한다는 경구였다. 사회 지도층의 자기 과신에 대한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남은 이들이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한다.

고인은 살아생전 “메뚜기 콧등만 한 나라에서 무슨 지역감정이냐”고 토로하곤 했다. 사시사철 발호하고 선거철이면 기승을 부리는 지역주의에 정치인생 내내 시달렸기에 부정적 여운 없이 지역감정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탄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효험은 크지 않았지만 정책 대결, 영남 인사의 호남 공천, 지역색 타파 인사 등등 처방은 다양했다.

긍정적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인은 지역감정의 피해자이고 수혜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다. 97년 제15대 대선 때 ‘DJP(김대중·김종필) 대연합’으로 호남과 충청을 묶어 지역감정을 역이용했다. 2002년 대선 때는 지역균등론으로 포장하며 호남이 미는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고인조차 지역감정을 정치의 상수(常數)로 간주, 적극 이용한 것이다. 호남 맹주로 군림하며 호남중심의 지역패권 정치를 한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쟁취를 위해 혹은 정치적 입신 양명을 위해 호남정당을 만들고 부수는 것을 되풀이한 것은 한국 정치사의 그늘이다.

다른 허물도 적지 않다. 아들 둘과 많은 측근이 부패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고인이 국민에게 평생 갚지 못한 채무였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 정부에 독재 타도를 외치는 등 국가원로로서 품위에 어긋나는 언행을 서슴지 않은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고인은 재야 시절에도, 야당을 이끌 때도, 국가 수반의 자리에서도, 심지어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애증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지역·이념 등의 측면에서 소수를 대표하고 상징했기 때문이다. 적잖은 국민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추종했다. 정반대로 혐오와 지탄으로 일관한 국민도 많았다. 그런 만큼 고인이 떠난 자리에서 수십년 달궈진 애증의 편린이 정치공학적 타산과 맞물려 표출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경계할 일이다.

고인은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다짐이 뒤늦게나마 공정하게 실현되도록 사회 각계가 합심, 노력해야 한다. DJ의 유산을 가감없이 되짚어보며 이 땅에 남겨진 숙제를 풀어야 한다. 고인을 추모하는 길이 달리 있을 리 없다.

파란만장한 인동초의 대서사시가 종막을 고했다. 고인이 뿌린 역사 발전의 씨앗이 언젠가 큰 열매를 맺을 것으로 믿는다. 거듭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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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이존형님의 댓글

전직 대통령도 사람일뿐이고....
현 대통령도 사랄일뿐이고....
그밑에서 정권창출과 역사를 이어가는 정치인들 모두가 사사람들일뿐이고...
이 나라의 모든이들 또한 사람일뿐이고...,
사람이 사람의 맘을 백프세트 충족시키기란 참 어려울듯한 것이라서...
이시대에 어느누가 정권을 잡는다하여도 만 백성의 맘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운법....
그르려니하고서 그냥 편하게 살며는 바보가되남유?
비판도 말고서 또 비판을 받을일일랑 더더욱 말았으면하는거이
현 정권에 바램이로소이다.....
또한 우리네 뜻길에서는 더더욱*********

문정현님의 댓글

먼듯 가까운 정치지도자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육신의 고통없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민주주의 수호신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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