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잊혀지시겠지만...[또 한명의 ‘바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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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바보’를 보내며
정치인 바보와 종교인 바보
그들이 남긴 건 화해와 포용
그들이 남긴 건 화해와 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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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사회부 차장
똑같이 ‘바보’로 불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두 삶의 궤적은 언뜻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하다. 돈 잘 버는 세무소송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 민주화의 정신적 어른에서 종교계 보수인사로 평가절하. 두 바보는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우리 사회 큰 화두를 공유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진보와 보수의 대척점에 섰다. 노 전 대통령 당선에도 김 추기경은 “축하는 당선자에게 할 것이 아니라 5년 후 퇴임자에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보다 퇴임 때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뜻이긴 하지만, 매몰차게 들린다. 김 추기경은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고해성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 논란에선 정당 간판만 내걸지 않았을 뿐 ‘정적’과 다름없었다.
사실 두 사람의 바보 의미는 사뭇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의 바보 별명은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92년 총선, 95년 시장선거, 96년 총선 때 야당 깃발을 들고 부산에 출마한 그를 지지자들은 그렇게 불렀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고. 2002년 지지자 모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진 힘이다. 그러나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상대방과 논쟁하면서 굴복시키려는 달변가였다.
김 추기경은 스스로 바보라 불렀다. 2007년 10월 모교인 동성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 내려고 그린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적었다. 똑같은 인간이면서 잘난 척했던 부끄러움에서다. 그래서인지 자화상 속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 입술을 오므렸지만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라고 말하고 있다. 말 많고 고집 세다는 바보와는 달라 보인다.
쉽게 얻을 수 있는데도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바보. 가진 것을 쉬이 놓지 못했다고 자성하는 바보. ‘바보 노무현’과 ‘바보 김수환’의 차이는 그렇다. 정치인과 종교인의 차이일까.
그러나 ‘정치인 바보’와 ‘종교인 바보’가 엇갈리고 있는 건만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추기경 선종 이후 그의 게시판에서 제기된 김 추기경 행적 평가에 “그분 발언 내용에 대한 비판과 그분 발언에 대한 인격적 비난은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화해 시도로 보였다.
사실 끝없는 자기 반성과 남을 속이지 못하는 성품은 두 바보를 하나로 엮고 있다. 두 사람은 다 치열한 고민과 솔직한 자세로 우리 시대를 살다 갔다.
마지막에는 환한 웃음의 밀짚모자 아저씨로, 넉넉하게 미소짓는 안경쟁이 할아버지로 그렇게 말한다. ‘누가 잘났네. 누가 못났네’ 하며 삿대질하려는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노 전 대통령 유서)라는 진지함과 ‘삶은 뭔가…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2003년 11월 김 추기경의 서울대 초청강연)라는 풍자도 결국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네편, 우리편’ 재단하면서 아등바등하는 우리는 얼마나 부박한가.
2002년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스테파노’ 김 추기경을 만나 ‘유토스’라는 세례명이 있다고 소개했다.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써야겠다고 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이 하늘나라에 가면 더 이상 방황할 것 같지는 않다. 두 바보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 거라 믿는다.
두 바보가 우리를 떠나면서 남긴 말은 자명하다. 화해하라 그리고 포용하라.
‘바보 노무현’의 영면을 기원한다.
박희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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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개
정해관님의 댓글
어제 저녁 우연히 KBS-2에서 노 전대통령이 귀향하여 봉하마을에서 서민적으로 보내시는 장면을 보고서 다시한번 그 분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 분을 추모하는 현상은 역시 우리들과 별로 다르지 아니한 그 분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면에 좋은 점수를 받은것 같기도 합니다. 아주 미묘하고 걱정까지 드는 이 때, 제발 보통 사람들과는 남다른 의지로 남북을 사랑했던 그 분이 저곳에서도 통크게 민족과 국가를 위한 일에 공헌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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