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3월 3일 눈 오는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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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왈츠>
영화줄거리
끝없는 눈밭이 펼쳐진 극동 쓰촨지방의 사춘기 소년 발레르카는 직업훈련원에 다닌다. 하지만 우연히 훈련원 규칙에 어긋나는 매춘현장에서 발각되면서 주모자의 이름을 대지 않은 죄로 쫓겨난다. 뿐만 아니라 훈련원장의 노여움을 사 도둑누명까지 뒤집어쓰고 경찰의 추궁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한편 발레르카의 어머니 니나는 불법 낙태수술을 받다가 중태에 빠지고, 발레르카는 자신의 존재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절망에 잠긴다. 울음을 터뜨리며 멀리 떠나려는 발레르카에게 어린 시절 친구였던 갈리아의 여동생 발카가 다가온다. 서로 사랑을 느낀 발레르카와 발카는 발레르카가 고향을 떠나기 전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아무르강 북쪽 항구로 떠난 발레르카. 조선소에서 일하며 기반을 잡아보려 하지만 폭력과 탐욕이 가득한 현실에 점점 물들어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르카의 소식을 기다리던 발카가 발레르카를 찾아온다.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는 발카. 하지만 발레르카는 각자 갈 길을 가자고 냉정히 말한다. 발카는 혼자 캄차카 반도로 떠나는 배에 오르고 발레르카는 뒤늦게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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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54살의 나이에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로 데뷔한 러시아 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는 다시는 영화를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90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얼지마...>가 비평적 찬사와 함께, 파리에서만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을 거두자 2년 뒤 <눈오는 날의 왈츠>를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 한 대와 약간의 재고필름으로 근근이 촬영하고 촬영분을 보여주면서 나머지 필름을 얻어야 했던, 그래서 리허설은커녕 재촬영도 불가능했던 <얼지마…>와 달리 <눈오는...>은 카날 플러스 등 외국 제작사들의 투자를 끌어들여 러시아 7개 도시를 돌며 촬영했다.
발레르카의 유년기를 다룬 <얼지마…>는 발레르카의 부상과 어린 시절 풋사랑을 느꼈던 친구 갈리아의 참혹한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별다른 설명없이 소년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 그 차가운 현실 풍경을 담아내는 카네프스키의 리얼리즘은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가 죽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유년기의 사형선고를 받은 발레르카.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눈오는…>은 발레르카의 사춘기를 쫓으며 다시 한 번 냉혹한 현실의 실체를 파고든다. <눈오는…>의 원제는 ‘독립된 삶’. 소년은 첫사랑과 성을 경험하고 집을 떠나 독립된 삶을 살아가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일본군 포로와 죄수, 빈민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매춘과 온갖 폭력, 기성세대의 부조리함이 만연한 현실은 변함없다. 그 속에 내던져진 발레르카는 점점 순수함을 잃어가고, 결국 구원 같던 첫사랑마저 잃고 만다. “내 영화 속에는 허구가 없다. 모든 사실들은 실제로 내가 경험했던 것, 그리고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카네프스키는 분신과도 같은 발레르카를 통해 자신의 삶을 투사하고 있다. 발레르카의 돼지가 도살당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충격적인 도입부부터 낙태와 강간, 진창에 빠진 술주정뱅이, 에탄올을 마시고 쓰러진 소년 등 감독 자신이 통과해왔을 음울한 성장기의 기억들을 헤집어 되살려냈다. 때로 구슬프게, 때로 힘차게 불리우는 구소련의 옛 민요와 일본의 엔카가 그 기억의 이미지를 뒷받침한다. 촬영감독 브릴야코프는 묘사대상과 냉정한 관조의 거리를 유지하는 <얼지마…>의 촬영에 어둡고 음울한 색채의 서정을 더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설원과 반짝이는 강의 수면, 훈련원의 어두운 복도와 선박의 지하객실까지 채도가 낮은 은은한 색조와 화이트 페이드 아웃이 감정의 호흡을 조절해준다. .
감독의 화술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들고찍기와 기록영화 같은 사실주의다. 그러나 카네프스키의 리얼리즘은 종래의 영화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희귀한 것이다. 카네프스키는 영화의 상황을 해석하고 관객의 심리를 안내하는 전지적인 화자가 아니라, 소년 발레르카가 보는 대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거칠게 던져놓는 이미지의 연출을 보여주며 때로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마저 아예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얼지마…>의 결말 부분에서 카메라가 갈리아의 어머니를 따라가도록 지시하는 목소리로 영화에 개입했던 카네프스키는 이번에는 아예 첫머리에 개입한다. 옛 소련의 민요를 부르며 말을 끌고가는 남자의 영상 위로 “컷! 그게 아냐! 다시!”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개입은 발레르카가 카메라를 향해 “이제 내가 필요없군”하며 배우 파벨 나자로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마지막 부분과 수미쌍괄을 이루며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성장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체험을 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눈오는...>의 발레르카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치러야 하는 댓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겪는다. <얼지마...>에서 발레르카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눈오는...>에서 발레르카는 현실을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다. 그것은 발레르카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불편함과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눈오는...>은 인생과 현실의 추악함과 기괴함을 관통하는 진정한 슬픔의 미학을 담았으며, 잔혹한 성장기의 편린들을 감내한다는 관객의 심리적 방어선을 뚫고 섬뜩한 리얼리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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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님의 댓글
기념을 하는 히나마즈리 였습니다.
여자애기가 태어난 기념으로
양가쪽 조부모님들이
인형세ㅡ트를 선물해 주시지요.
그 인형은 크기에 따라서는 대단한
작품부터 보통 가정용으로 분류가 되는데...
평소에 보관해 두었다가 년중 한번 집안에
장식을 하고 3/3 저녁에 철수 시키는 년례행사
랍니다.
여자애는 커 가면서 자기의 분신 처럼
히나마즈리의 인형제단을 보면서 나름의
추억을 키워갑니다.
이 인형을 제 때에 정돈하지 않으면 시집을 늦게
간다는 속설이 있어서....
부모들이 정성을 다해서 모셔 놓습니다.
테잎을 돌리면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작은 조명까지 들어 있어서 작은 기쁨이 된답니다.
저녁은 지라시 스시라 하여 새콤 달콤한 밥에
갖가지 회와 계란 지단등으로 모양을 내어서
성의를 표현하지요.
올 겨울 첫 눈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소담스런
눈송이가 내렸습니다.
심야에 내려서 교통에는 큰 지장이 없었던
기억할 만한 히나마즈리의 3월 3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눈 오는날의 아침을 상상하고
영화까지 한편 만나고 갑니다.
안상선 목사님!~
아침 이야기 올려주세요.
전 3월 3일 저녁 이야기를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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