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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꿈과 이상, 좌절-7. 한양도성의 기본설계와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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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봉의 꿈과 이상, 좌절-7. 한양도성의 기본설계와 삼봉

수도가 된 한양

새 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정도전 등 신하들에게 새 도읍지를 알아보라고 명령합니다. 원래 태조가 처음 천도를 결심한 곳은 계룡산 지역이었는데요. 그러나 1393년 초부터 10개월 간 도성 공사를 진행하다가 그 해 말 하륜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었어요. 하륜은 계룡산의 위치가 국토의 남쪽에 치우쳐 수도로 적절치 않다며 반대했어요. 그 다음 신촌을 중심으로 한 무악이 논의되다가 정도전이 북악산을 중심으로 한 남경지역을 적극적으로 추천해 도읍을 결정하게 됩니다.

    

도성설계, 성곽을 쌓다.

지금부터 605년 전 1129. 태조 이성계 일행은 천도를 위해 개경을 떠난 지 사흘 후에 한양에 도착했어요. 그 당시 한양은 수도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므로 태조 이성계는 한양부 청사의 부속건물에 임시로 살면서, 수도건설 공사를 시작했는데요. 123일부터 궁궐과 종묘, 사직을 짓기 시작하여 12개월만에 공사가 완공되었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나?

45리의 성곽공사는 12만 명이 동원되어 49일만에 완성되었는데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고, 부상자와 동상자가 속출하는 등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1차로 쌓은 도성은 3분의 2이상이 토성이고 성문도 만들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그 해 여름 장마에 도성 이곳저곳이 무너져 버렸어요. 성곽건설은 세종 때 32만명이 동원되어 다시 건설되었구요. 이때에도 공사를 마칠 때까지 872명이 죽었다고 하니 부상자는 얼마나 발생되었는지 알 수 없답니다. 한양 도성은 실제로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건축물이며 문화유적입니다.

사대문 :"도성사람들은 유교의 기본이념으로 살아가라"

한양성곽을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가는 정도전의 큰 고민거리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많은 눈이 내렸는데, 다른 곳은 눈이 다 녹았는데 특별히 눈이 녹지 않는 곳이 있어서 유심히 바라보니 바로 그것이 북악산, 인왕산을 이은 능선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을 따라 성곽을 쌓고,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만들었답니다.

 

4대문에 유교의 기본이념을

() : 어질고 착함. 흥인지문

() : 의로움. 돈의문

() : 공손하고 예의바름. 숭례문

() : 지혜로움. 숙정문

() : 믿을 수 있는 신의. 보신각

숭례문 (국보 1)

도성의 문의 현판은 모두 가로로 쓰여져 있으나, 숭례문은 세로로 쓰여져 있어요. 이것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보이는 관악산이 불꽃모양을 한 화산(火山)의 형태이므로 경복궁에 화재가 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추사 김정희도 이 현판글씨를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흥인지문 (보물 1)

원래 이름은 흥인문입니다. 그런데 문의 이름에 갈지()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이 위치한 낙산의 지형이 낮아 갈지()자를 넣어 약한 기운을 보완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흥인지문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다고 하구요. 지금도 볼 수 있는 이 옹성은 적들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기 위한 기능 이외에, 건축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돈의문 - 현재는 없는 문

돈의문은 시대에 따라 서전문, 신문, 새문으로 불리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대문으로 불러왔어요. 조선시대 5백년 간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었죠. 조선말에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친일정권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킬 때, 바로 이 돈의문 앞에서 흥선대원군과 불량배들을 끌고 들어왔어요. 일제 침략기 때 시구역 개수계획이라는 명분으로 헐리고 말았죠. 일제는 돈의문의 목재와 기와를 경매하였는데 그 속에 불상과 보물이 많이 나와서 이 문을 샀던 사람은 큰 횡재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죠.

 

숙정문 - 평상시에는 닫혀있던 문

원래 이 북쪽문은 지자를 빼고 청()자를 넣어서 숙청문이라고 하였어요.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북쪽문은 지형이 험난하여 사실상 사람이 왕래할 수 없었으며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항상 닫혀 있어 굳이 지()자를 쓸 필요가 없었답니다.

 

 

  [숭례문 현판]                                                                                          [숙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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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이창배님의 댓글

정도전의 꿈과 이상이 우연하다고 보지않습니다

보이지않는 힘이있어 마음을 움직이고 조정하지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태조 이성계를 의 눈물이라는 사극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었지요

역대의 왕을 용으로 열굴은 용안 옷은 용포 자리는 용상~~~600년의 역사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전주이씨며 그의 본명이 李承으로 용을 숨겼습니다

 

하늘의 큰 천사장이 만군의 여호와가 6000년간 하나님노릇해왔지요

6000년 600년 60년의 압축된 통일의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고봅니다

2012년까지 용의시대를 마감짓고 13년 13일 생명의 시대를 개막하는 기원절!!!

 

이인규님의 댓글

나무는 나이태로 그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은 업적으로 기록으로 그 흔적을 남깁니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삼봉 덕택에 여기 흔적을 남기게 된 것도 아득한 옛날 사람이지만 그 생각이 시공을 뛰어넘어 후세에까지

그의 흔적을 놓고 많을 것을 생각케 한 점일 것입니다.

정해관 님의 남다른 역사의식이 여기 잠간 머물게하고 또 몇자라도 남기게 한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지금까지 <삼봉 정도전의 꿈과 이상, 그리고 좌절>에 대하여 관심과 눈길을 주신 형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서울 도성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경복궁을 비롯한 유서깊은 왕궁을관람하면서 삼봉이 설계한 한양도성과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의 이 시기는 내외적으로 삼봉과 같은 탁월한 설계가가 요구된다고 여겨 집니다.

그러한 점에서도 역사인물에 대한 관심은 시의적절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축복 39주년이 되는 오늘 여러자매형제님들 가정에 평안하심과 하시는 사업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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