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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時代의 最高權力 追求慾과 展開樣相-10. 중종반정 (中宗反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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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時代最高權力 追求慾展開樣相-10. 중종반정 (中宗反正)

1506(연산군 12) 박원종(朴元宗) 등이 조선왕조의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그의 아우인 중종을 즉위시킨 사건.

 

성종의 뒤를 이어 연산군 때는 그동안의 농업진흥책에 힘입어 산업구조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15세기 말엽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향시(鄕市), 즉 지방 장시(場市)가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연작상경(連作常耕)의 집약적 농업기술의 발달로 구매력이 증대되어 마침내 전국적인 유통 경제망이 건설되었다. 또한 그동안 소규모적·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공무역(公貿易) 중심의 대외무역이 점차 국내 수요의 증가와 해외시장의 확대로 인해 활발해지면서 사무역(私貿易)이 크게 늘어났고, 드디어 공무역을 압도하게 되었다. 국내의 전국적인 유통망 건설과 중국과의 사무역 증가는 국내 은광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중국과의 무역 결제수단은 금··철 등이었으나, 그중에서도 은은 당시 중국에서 지정은제(地丁銀制)가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사상(私商)들에 의해 은광 개발이 서둘러졌다. 이로 인해 농촌에서는 농민층이 해체되어 일부는 소상인으로 전환하여 농촌을 떠났고, 많은 수가 농토를 상실하고 유랑생활을 하다가 적란(賊亂)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층의 관료로서 특권적 성향이 강한 훈신·척신계(勳臣戚臣系)신진의 관료군인 사림계(士林系)로 나뉘어 대립했다. 양자 중 훈신·척신계는 왕권 또는 왕실과의 특별한 관계를 통하여 지위를 보장받은 집단이었다. 이들은 자신과 연관된 부류들에게 당시 유행하던 공납의 방납권(防納權)을 보장해주면서 일정한 대가를 관례적으로 상납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서남 연해지역에서 지방관에게 사주해서 다수의 지방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간석지를 개발해 얻은 수익을 가지고 무역이나 은광 개발에 투자했다. 이들은 곧 새로운 경제변화 속에서 관권을 매개로 부상(富商)들과 결탁해 부를 늘려갔다. 이에 대해 지방의 재지지주(在地地主) 출신으로 성리학의 이념을 정치계에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신진관료집단인 사림파들의 공격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들은 훈신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비호하는 국왕과 그의 측근인 궁금(宮禁) 세력들에게도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국왕인 연산군은 훈신·척신계와 궁금 세력의 강력한 후원 아래 1498(연산군 4)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들을 제거했다. 그 후 연산군의 비호를 받은 궁금 세력들은 훈신·척신계와 대결하여 정치 및 경제계에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기도했다. 그결과 연산군과 궁금 세력은 1504(연산군 10)갑자사화를 일으켜 훈신계열을 철저하게 숙청하고 잔존의 사림파마저 제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궁금 세력의 지나친 독주는 지배층 내부의 불만을 야기 시켰고, 특히 연산군 자신은 방종한 생활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훈신계열인 박원종·유순정(柳順汀성희안(成希顔) 등이 모의해 15069에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신윤무(辛允武),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박영문(朴永文) 등과 함께 무사들을 모아 궁금 세력의 대표자인 임사홍(任士洪신수근(愼守勤) 등을 제거한 다음 궁중에 들어가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의 허락을 받아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등극시켰다.

 

결과

중종반정은 신하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뜻대로 왕위를 교체한 사건으로,

조선왕조 개창 이래 장자(長子) 상속의 왕위세습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반정 자체가 철저하게 신하 주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중종이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웠다.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된 중종은 공신이 중심이 된 정치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고,

집권 초기 권력은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중종반정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연산군대에

공직에 있던 인물이 왕을 교체한 후 다시 기득권을 유지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나 군()으로 강등된 뒤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1506.11 31세로 죽었다.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 연산군12)

박원종, 성희안, 유순종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 배경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경연(經筵)폐지·신언패(愼言牌) 실시·성균관(成均館)의 연락(宴樂)장소화

·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각사(圓覺寺)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와 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였다.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 과정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과 중추부지사 박원종(월산대군의 처 박씨의 동생)

연산군 재위 12년간 화옥과 황욕 등 폭정으로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놓은 연산군을

폐하기로 밀약하고 당시에 인망이 높던 이조판서 유순정,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던 군자부정 신윤무 등의 호응을 얻어

왕이 장단 석벽에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계획을 꾸몄다.

150691, 박원종 · 성희안 · 신윤무를 비롯해서 전 수원부사 장정,

군기시첨정 박영문, 사복시첨정 홍경주 등이 무사를 규합하여 훈련원에 모았다.

 

그들은 먼저 권신 임사홍·신수근과

그 아우 신수영 및 임사영 등 연산군의 측근을 죽인 다음

궁궐을 에워싸고 옥에 갇혀 있던 자들을 풀어 종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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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정해관님의 댓글

자꾸 창배님께서는 기원절을 전후해서 선악樹와 생명樹의 하나님으로 구분하는 독특한 주장을 하시는데,

저에게는 매우 낯설은 논리입니다.

천지인참부모님으로부터의 언급된 논리가 아니면 이곳에서 함부로 주장하실 사안이 아닙니다.

가뜩이나 '알만한 사람들'이 명명백백하신 참부모님의 말씀과 뜻을 왜곡하여 혼란에 빠뜨리는 이 때에 검증되지 아니한 제3의 논리는 배교자. 반란자. 이단자. 파괴자로 낙인찍혀도 지나친 처분이 아닐 겁니다.

우리 가정 대부분은 말씀집과 이를 요약한 천성경. 평화경. 참부모경을 근거로한 논리가 아니면 모두 헛되고 삿된 것임을 다시한번 주지시킵니다.

 끝으로 댓글의 성의에는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蛇足이 붙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창배님의 댓글

중종반정 때 정국 2등공신 이계남 할아버지께서 저의 17대조 할아버지입니다

위하는 마음 사랑으로 정국을 풀어갈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때는 이세상을 지배하는 하늘이 선악을 알게하는 하나님이었어니

선과악 흑백논리로 이분법에의해 지배되는 시대라 이해합니다

2013년 처음으로 생명나무로 계시는 생명체하나님의 시대를 맞아 기반을 잡으시고

2014년 생명체님의 사랑을 실체 자녀들에게 상속시켜 이땅에서 이루는 시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사는 시대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하늘의 주권이 바꾸어 졌어니 옛모습을 새롭게 바꾸어야 하지않을까요...

천사장 여호와를 중심으로 돌던 시계바늘을 생명의 하나님중심으로 돌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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