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朝時代의 最高權力 追求慾과 展開樣相-2. 고려 14대 獻宗 때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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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時代의 最高權力 追求慾과 展開樣相-2. 고려 14대 獻宗 때의 정변
나이어린 헌종의 즉위와 왕위를 노리는 사람들
고려 13대 宣宗은 임종이 가까워지자 11세된 어린 아들 昱(선종의 장남, 제2비 사숙왕후 소생)에게 왕위를 넘긴다. 헌종은 유아시절부터 소갈증(당뇨병)에 시달려 매우 병약했다.
이에 앞서 고려 덕종(9대), 정종(10대),순종(12대) 등이 어린 아들 보다는 동생에게 선위한 사례가 있어, 대부분의 대신들은 왕권이 선종의 동생들 중의 한 명에게 넘어갈 것으로 생각 했다. 특히 선종의 바로 아래 동생인 계림공(왕희)이 차기 왕으로 유력시 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모후인 사숙태후가 섭정을 시작했다.
이 때 사숙태후는 사촌지간인 이자의(인주 이씨. 선종의 제3비 원신궁주의 오빠)는 원신궁주의 큰 아들 왕윤을 차기 왕으로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외척(이자의. 왕윤 옹립파)과 왕실(계림공 왕희) 간의 왕위쟁탈전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즉, 이자의와 왕희의 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된 가운데, 신하들도 두 편으로 갈라졌다. 평장사 소태보를 비롯한 상장군 왕국모 등 원로들은 왕실 편에 서 있었고, 인주 이씨 세력을 포함한 평장사 이지위. 합문지후 장중. 중랑장 곽희. 장군 택춘 등은 외척 편이었다.
두 세력 중 왕실 쪽에서 선수를 쳤다.
1095년 7월 경신일 밤, 왕희는 은밀히 평장사 소태보를 찾아가 군사를 동원하여 이자의 세력을 척결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자 소태보는 상장군 왕국모에게 이자의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으니 군사를 끌고가 왕을 호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이에 왕국모는 장사 고의화에게 약간의 군사로 이자의를 암살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고의화는 왕궁으로 진입하여 이자의를 선정문 근처에서 죽이고 그의 수하 합문지후 장중. 중추원 당후관 최충백등을 선정문 밖에서 살해한다. 아울러 이자의 편에 섰던 장군 택춘. 중랑장 곽희. 별장 성보. 성국. 교위 노점 등 17명이 체포되어 함께 죽음을 당했다.
또 이자의 편의 평장사 이자위를 비롯한 50여명의 대신들이 모두 유배되었고, 원신궁주와 한산후 왕윤. 그의 두 동생들도 모두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이자의 세력이 척결되자 계림공 왕희는 중서령에 임명되어 차기 왕으로 확실시 되고, 결국 1095년 10월 왕희의 거사 3개월 만에 헌종은 스스로 물러나야만 했다.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즉위한 왕희(거란의 9대 왕 천조제와 이름의 발음이 같다하여 천조제 즉위 원년(1101.3)에 顒;‘공경할 옹’으로 개명)가 고려 제15대 肅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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