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分知足’ 실천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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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分知足’ 실천의 어려움
1. 을지문덕(乙支文德)의 <遺宇仲文(유우중문)>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너의)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당신의)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마저 꿰 뚫었네
戰勝功旣高(선승공기고) 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상대를 치켜 세워두고)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원컨대 그만하기를 바란다
을지문덕(乙支文德, ?~?): 고구려 명장. '을지'가 고구려 관위명(官位名)의 하나인 우태(于台)와 같이 연장자·가부장(家父長)을 뜻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을'만 성이고 '지'는 존대의 접미사로 보기도 하며, 선비족 계통의 성씨로 보아 을지문덕을 귀화인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자치통감』에는 이 인물을 위지문덕(尉支文德)이라 표기하였으며 『해동명
장전(海東名將傳)』에는 "을지문덕은 평양 석다산(石多山)사람이다."라고 하였다.
589년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의 문제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아들 양제는 고구려를 칠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가 612년(영양왕 23) 수(隋)나라의 우중문(于仲文)· 우문술(宇文述)이 113만여 명의 수륙양군(水陸兩軍)으로 고구려를 침범하였다.
어렵게 요수를 건넌 수나라 양제는 요동성을 끈질기게 공격했으나, 을지문덕이 지키던 요동성은 결코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요동성이 철옹성처럼 버티자 작전을 바꾼 양제는 장수 우문술, 우중문으로 하여금 요동성을 돌아 압록강 서쪽 기슭으로 해서 바로 평양성을 공격하게 했다.
한편 수나라의 작전을 알아챈 요동성의 을지문덕 장군은 정면대항은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서 항복한다는 구실로 수나라 군대에 들어가 형세를 정탐하였으며 이때 계속된 공격의 실패로 인해서 적군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고, 식량이 부족해서 군사들은 비실비실 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중문과 우문술은 을지문덕이 돌아간 다음에야 속은 것을 깨닫고 총공격을 감행하자 을지문덕은 적의 군사력을 소모시키기 위해 하루에 7번 싸워 7번 거짓 패배를 가장하는 후퇴작전을 이용하여 평양성(平壤城) 30리 밖까지 유인하였다. 이때 장군은 적장 우중문에게
'神策究天文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귀신 같은 꾀는 천문을 구명하고 신묘한 셈은 지리에 통달했네. 전승의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았으면 그치기를 바라오)'라는 희롱의 시를 보내며 수군이 물러나면 영양왕이 수 양제를 알현하겠다고 하여 퇴각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미 싸움에 지쳐있던 우중문은 그 말을 믿고(혹은 구실삼아) 퇴각을 결심하였고,
우중문이 지친 군사를 이끌고 회군(回軍)을 시작, 그 해 7월 살수(薩水:淸川江)에 도착했다. 살수에는 배한 척도 없고, 여름인데도 물이 얕았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수나라 군사들은 서둘러 살수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 때 난데없이 상류에서 둑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산더미 같은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에 빠져 죽고, 고구려군의 창칼과 활에 맞아 죽어 거의 전멸했다. 살수를 벌겋게 물들이고 죽어간 수나라 군사가 어찌나 많았던지 30만 5천 명의 병력 가운데 살아난 자가 겨우 2천 7백여 명이었다.
이 싸움이 세계 전쟁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전승을 거둔 '살수대첩'이다.
을지문덕은 이처럼 침착 대담하고 지략과 무용에 뛰어났으며, 詩文에도 뛰어났다.
을지문덕 장군의 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五言古詩(한시)이다.
2. ‘安分知足’ 그 실천의 어려움
안분지족(安分知足) : ‘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安分) 만족할 줄 앎(知足)’ 비슷한 말로 ‘安貧樂道’가 있다. 이는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 중의 하나이다.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는 안빈낙도를 실천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7,8여년 전 유럽(이탈리아) 여행 때의 일화이다. 우리들을 안내하는 관광차의 운전기사가 30대 전후로 꼭 예수님 초상화와 같이 멋진 청년이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그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였다. 그가 대답한 말은 의외였다. “나는 아버지 소유인 이 차를 물려받아 내 책임하에 계속 이 일(관광객운송과 안내)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소박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된 유럽사회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꾸준히 하면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소위 신분상승을 위한 다른 욕망이나 노력이 필요없는 사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아닐까?
대개의 한국인들은 평소에 자녀들에게 ‘부지런 하라’ ‘공부 열심히 해라’고 닦달해 왔다.
이는 어떤 면에서 安分知足과는 배치된 생활태도일 수도 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현재의 신분을 뛰어 넘어 지도자가 되고 돈도 많이 벌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욕망’을 부여하신 하늘부모님의 창조기제 (機制 :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 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삶에 지치거든 인도나 방글라데시를 여행해 보라고 한다. 그곳이야말로 安分知足의 전형적인 삶이기 때문에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욕망의 성취노력과 安分知足的 삶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위에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께서 비록 적장에게 야유하는 표현이기는했지만, “전승의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았으면 그치기를 바라오”라는 경구를 깊이 새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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