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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대 여류시인 이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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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대 여류시인 이매창



이매창(李梅窓; 본명 이향금, 1573-1610)은 조선조 선조(1552-1608) 때의 부안 기생이었다.

그녀는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계유년에 태어났다고 계생(桂生) 또는 계화(桂花)라고도 불리었으며, 그녀가 기생이 된 뒤로는 그녀에 대한 애칭이 천향, 계랑(桂娘), 매창(梅窓)으로 바뀌게 된다.

그녀는 시와 문장에 능했고, 노래와 거문고 연주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 조선조 명기 중의 명기였다고 한다. 그녀는 주옥같은 시문들을 많이 남겼으며, 타고난 시재와 고결한 성품으로 당대 이름 높은 시인묵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류 시인이었다.

그녀는 한때 남도 여행 중이던 진사 서우관을 만나게 되고, 오랫동안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그를 그리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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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동해에 시선이 내렸다기에

지금 보니 구슬 같은 말이나 그 뜻 슬프다.

후령 선인 노닐던 곳 그 어디메뇨.

삼청 심정을 시편으로 엮노라.

 

옥단지 속 세월 감이 빈 틈이 없고

속세의 청춘은 소년 때일 뿐

후일에 선계의 자부에 돌아가거든

옥황 앞에 맹세하고 임과 살리라.

 

그녀의 두 번째 연인으로는 부안현에 새로 부임해 온 윤현감이었다. 윤현감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열적이고 호탕했으며 기품이 무사 같은 남자였다.

그러한 강인한 성격과 외모를 지닌 윤현감의 줄기찬 구애에 그녀는 마침내 정념의 강을 건너고 만다. 그 후 그녀는 한양으로 올라가 서우관이 마련해 준 집에서 기거하며 서우관과 그의 동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런데, 서우관과 그의 동료들이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자취를 감춰 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다시 외기러기 신세가 되고 만다.

 

이 병은 봄 탓으로 난 것이 아니요 오로지 임 그리워 생긴 병일세

황진만장 이 세상에 괴로움 많으니 차라리 임 가신 곳 저승에 돌아가리.

잘못은 없다 해도 헛소문 도니 이러쿵저러쿵 여러 입이 무서워

시름과 원한은 그지없는데 차라리 병났다고 시비를 닫자.

 

세 번째 그녀의 연인은 선비 유도였다. 유도는 풍자시를 잘 지었고, 구수한 말솜씨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 다음의 연인은 유희경(자는 應吉, 호는 村隱)이었는데, 그는 천민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이름난 사대부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지냈고 있었다.

그는 장안 북촌의 땅에서 손수 밭을 일구고 침류대(沈流臺)라는 작은 집을 지어 놓고,

날마다 차천로, 임숙영, 이수광, 박순, 유몽인 등을 비롯한 당대 이름난 시인 재상들과 함께 어울리며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이매창은 유희경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선물 받고 그에게 그만 온전히 매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남국의 계랑 이름 일찍이 알려져서

글재주,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어라

오늘에사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

 

그녀도 유희경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바칩니다.

 

안갯빛 자욱하여 새벽달이 희미하고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 가득 서리었네.

속세를 등진 청년

적송자를 찾을 만하여라.

 

술잔을 서로 권해 정담이 무르익고

동풍이 건듯 부니 물색이 환하구나.

실버들 하느적거리며 못가에 드리웠고

집 앞에서 꽃들은 붉게 터져 피누나.

 

다섯 번째 그녀의 연인으로는 이귀(자는 玉汝, 호는 ?)였다.

이귀는 이이와 성혼의 문하생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소모관, 선유관으로서 군인과 군량을 모집하였고, 도체찰사 유성룡의 종사관이 되어 소와 말과 양곡을 모집하는 등 군세를

만회케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그 뒤 장성 현감이 됩니다.

그가 김제 군수로 있을 때 부안 군수가 베푸는 잔치에 초대받아 그 연회석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이매창을 만나게 된다.

그 무렵, 이매창이 유희경과의 멀고 먼 기다림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롭고 두려운 심경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귀를 만나게 되자 그의

독특한 개성과 강한 자존심에 호감이 갔고 무엇보다도시를 무척 사랑하는 그의 낭만적인 심성이 그녀를 사로잡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연인은 허균(許均, 자는 端甫, 호는 惺所)이었다.

허균은 159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를 지낸 바 있으며,1598년 황해도

도사가 되었으나 기생을 끌어들여 별실에 숨겨놓고 즐겼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당한 사람이다.

 

 

그는 기생과 하루 밤을 함께 하고 나면 반드시 그 기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자기와 잠자리를 한 기생이 몇명이라고 선뜻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하루는 이매창을 마주한 허균이 걸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이귀 선배님께로부터 그대에 대한 자랑을 귀가 아프게 들었소이다.

거문고 연주 실력이며 시 문장 솜씨가 수순급이라고 하더군요."

 

당대 대문장가가 그녀를 이렇게 칭찬해 주니 그녀는 몸둘 바를 몰라 했고 이후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허균은 그녀를 선배(이귀)의 옛 연인으로서 끝까지 존중하며 인연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녀의 손목 한 번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와 헤어져 상경한 허균은 그 후로 춘추관기주관, 형조정랑을 거쳐, 1606년 원접사의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게 되었고, 넉 달 동안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임무가 무사히 끝나자 중국 사신인 유용이 그의 공로를 특별히 칭찬하면서 임금에게 벼슬을 청하여 첨지중추부사가 된다.

16099월에 허균은 이매창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봉래산 가을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10여 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젠 진회해(秦淮海)를 아시는지, 선관(禪觀)을 지니는 것 몸과 맘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그녀는 이러한 여러 연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정을 가슴에 안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다가

16104월에 38세의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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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정해관님의 댓글

이미 예고한 바와 같이, '春來不似春'으로부터 끝말이어가기 식의 話頭에 따라 중국의 4대 미녀, 중국의 3대 시인과 관련, 서양의 클레오파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한국의 황진이와 연결된 조선의 4대 여류시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회가 되면 신-구 세계7대 불가사의. 통일왕국 시대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하여도 상식의 지반을 넚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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