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3대 시인 李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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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3대 시인 李白
이백(리바이, 李白, 중국어 병음: Lǐ Bái, 701년 ~ 762년)은 중국의 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촉나라 쓰촨 성 출생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시들이 남아 있다.
1. [생애]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東巖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江南)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24년 43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長安)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高力士)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낙양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永王 璘)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랑(夜郞, 지금의 구이저우 성)에 유배되었다.
※755년(天寶 14) 11월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고, 12월 뤄양이 함락되었다. 이듬해 6월에는 장안이 함락되고, 현종은 촉으로 피신했으며, 황태자[肅宗]가 영무(靈武)에서 즉위했다. 당시 이백은 양쯔 강을 따라 선성(宣城:지금의 안후이 성[安徽省]에 있음)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장안이 함락된 56세의 겨울, 루산 산[盧山]에 은거하고 있던 그는 현종의 아들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수군에 막료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이백은 안녹산을 토벌하기 위해 참가했다. 그러나 황실 내부의 분쟁으로 영왕의 군대는 적군(賊軍)으로 간주되었고 영왕은 살해되었으며, 이백도 체포되어 심양(潯陽:지금의 장시 성[江西省] 주장 시[九江市])의 감옥에 갇혔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단 석방되었으나, 대역죄가 추가되어 결국 멀리 야랑(夜郞:지금의 구이저우 성[貴州省] 서북부)으로 유배되었다. 759년(乾元 2년) 3월 이백은 야랑으로 가던 도중 양쯔 강 상류의 백제성(白帝城)을 지나면서 사면 통지를 받게 되었다. 다시 자유를 얻은 이백은 양쯔 강 중류의 둥팅 호[洞庭湖] 부근에서 시인 가지(賈至:718~772)를 만난 뒤 강남의 온화한 풍토에서 지냈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2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2.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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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백의 글씨>
현존 1,000여 수 작품은 제재나 시의 형태로 보아 중국 고전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여행·이별·음주·달빛·遊仙 등 소위 그의 세계관에서 유출되는 일련의 제재. 그것들은 소재나 주제로서 사용되는 경우, 혹은 어느 쪽이라고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 등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감각과 발상으로 그의 시의 특색을 더욱 증폭시킴. 이 때문에 이백의 작품에는 각 제재의 기본적인 성격이 집약적·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많다.
이백은 고시(古詩)와 절구(絶句)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神品)'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詩才)는 천래(天來)의 재, 즉 '천재(天才)'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杜甫)가 1자 1구의 조탁(彫琢)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 대표적인 詩 作品은 별도로 올린다.
3. [인물상]
그는 당시의 시인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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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5대양 6대주'가 반복되는 새 천일국가 가사가 생각 납니다. 이는 인간의 '5장 6부'와 흡사하여 창조주 하늘부모님을 증거하는 표현이기도 하지요.
동양에서의 '4서 3경'은 동양의 바이블일겁니다.
중국의 4대 미인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거기에 대응하는 '최고의 남성'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중국의 3대 시인이 되겠지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인 중 대표 셋을 정하는 일이 결코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편의상 詩仙 이백, 詩聖 두보 그리고 비슷한 시대의 백거이로 정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4대 미녀들과 직-간접의 관계가 있어 흥미롭습니다.
오늘도 군자 삼락 중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자매형제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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