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격황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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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과 <격황소서>
1. 최치원 [崔致遠] 857(문성왕 19)~?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아버지는 견일(肩逸)로 숭복사(崇福寺)를 창건할 때 그 일에 관계한 바 있다.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본피부(本彼部) 출신으로 고려 중기까지 황룡사(皇龍寺)와 매탄사(昧呑寺) 남쪽에 그의 집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최치원 자신이 6두품을 '득난'(得難)이라 하고, 5두품이나 4두품은 "족히 말할 바가 못 된다"라고 하여 경시한 점과, 진성왕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阿飡)을 받은 점 등으로 미루어 6두품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경(西京:長安)에 체류한 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시(主試)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뒤 동도(東都:洛陽)에서 시작(詩作)에 몰두했는데, 이때 〈금체시 今體詩〉 5수 1권, 〈오언칠언금체시 五言七言今體詩〉 100수 1권, 〈잡시부 雜詩賦〉 30수 1권 등을 지었다. 876년(헌강왕 2) 강남도(江南道) 선주(宣州)의 표수현위(漂水縣尉)로 임명되었다. 당시 공사간(公私間)에 지은 글들이 후에 〈중산복궤집 中山覆簣集〉 5권으로 엮어졌다. 877년 현위를 사직하고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응시할 준비를 하기 위해 입산했으나 서량(書糧)이 떨어져 양양(襄陽) 이위(李蔚)의 도움을 받았고, 이어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에게 도움을 청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했다. 879년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이 되어 황소(黃巢) 토벌에 나설 때 그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서기의 책임을 맡아 표장(表狀)·서계(書啓) 등을 작성했다. 880년 고변의 천거로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都統巡官承務郞殿中侍御史內供奉)에 임명되고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았다. 이때 군무(軍務)에 종사하면서 지은 글들이 뒤에 〈계원필경 桂苑筆耕〉 20권으로 엮어졌다. 특히 881년에 지은 〈격황소서 檄黃巢書〉는 명문으로 손꼽힌다.
2.〈격황소서〉(檄黃巢書)는 신라의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지은 편지 형식의 격문이다. 당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킨 황소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내용의 글로 논리정연하며, 세련된 표현으로 중국에서 최치원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최치원의 문집 《계원필경》에 수록되어 있다.
황소가 모반하여 복주를 점령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고변을 제도행영도통을 삼아 적을 치게 하였다. 이 때 최치원은 그의 막하에서 고변을 대신하여 7월 8일에 '격황소서'를 지었다. 이 격문은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명문으로서 문필의 대공을 세웠다. 격문의 뜻이 장엄하고 포악한 반란군 앞에서도 조금의 굽힘도 없는 위엄의 힘이 있었고, 전쟁에서 적장의 머리를 베는 것 같은 위엄이 있었다. 격문에서 적장의 죄를 꾸짖고 힐책하는 가운데, '다만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또한 땅속의 귀신까지도 이미 남몰래 너를 베려고 의결하였다'라고 한 구절에서는 아무리 완강무지한 도둑일지언정 한 번 읽고는 모골이 쭈뼛하고 혼비백산하여 저도 모르게 상(床)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이로써 최치원의 문명(文名)이 천하에 떨쳐져 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그 이름이 높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종(祖宗)이라는 의의를 제쳐놓고라도 갖가지 설화와 일화, 기담으로 말미암아 초인적 존재로서 추앙을 받는 소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최치원의 당당함에 매번 놀란다. 무엇이던지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이 정점에 도달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최치원은 큰 나라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황소에게 조금의 굽힘도 없이 일개 관리가 배짱두둑하게도 충고 뿐 아니라 칼을 들이 데는 것보다 더 날카롭고 마음 조이게 하는 협박과 회유로서 황소의 투항을 종려하고 있다.
그리고 황소의 난으로 인한 국가의 피해나 국민의 고생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황소 자신에게 닥칠 일과 황소의 잘못된 생각이 황소 뿐 아니라 그 자식에게까지 화가 미친다고 하여 부모로서 더욱 더 마음 조이게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국가의 힘을 '곰을 치고 표범을 잡는 우리 군사가..'로 표현해서 황소같은 졸개는 단 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위엄으로서 황소의 가슴을 한 번 더 서늘하게 했을 것이다.
3.<격황소서 본문 내용>
무릇 바른 법을 지키고 떳떳한 일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 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알맞은 때를 따름으로써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실패하게 된다. 비록 백 년의 수명에 죽고 사는 것을 기약하기 어렵지만, 모든 일은 마음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므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느니라.
나는 임금의 군대를 이끌어 못된 자를 정벌하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요, 임금의 정치는 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로 한다. 큰 신의를 펴려고 함에 공경스런 마음으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간사한 꾀를 쳐부수는 것이니라.
너는 본래 외진 시골 백성으로 우연히 시세를 타고 감히 인륜을 어지럽히고, 마침내 불측(不測 생각이나 행동이 꽤씸하고 엉큼함)한 마음을 품고 황제의 자리를 엿보며 황성을 침범하고 궁궐을 더럽혔다. 그러나 예로부터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천둥 번개가 치닫듯 요란하게 떠들면서 안개와 연기가 온 세상을 뒤덮듯 하였지만, 잠시 돗된 짓을 하다가 마침내 하나같이 멸망하고 말았다. 햇볕이 활짝 펼쳐지는 날이 되면 어찌 그 요망한 기운이 그대로 머물 수 있겠느냐.
----중 략---
그러므로 내가 한 장 글을 날려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듯 한 너의 다급한 사정을 풀어 주려는 것이니 미련한 고집 부리지 말고 기회를 잘 살펴서 스스로 계책( 計策,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생각해 낸 꾀나 방법)을 세우고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라. 만일 네가 항복하기를 원한다면, 몸과 머리가 두 동강 나는 화를 면하고 공명을 얻어 후손에게 길이 영화로움을 불려줄 것이다. 이는 참으로 대장부의 일이니 서둘러 응할지 말지를 회답할 것이요, 의심을 두지 마라.
나의 명령은 황제의 뜻을 받든 것이며 믿음은 맑은 강물에 의지한 것이다. 그 뜻에 메아리치듯 응한다면 은혜가 많을 것이요, 원망을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미쳐 날뛰는 무리에 이끌려 취한 잠을 깨지 못하고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서듯 어리석은 고집만 피운다면 우리 군사가 한번 휘둘러 반드시 쳐부술 것이다. 그때는 까마귀 때 같은 무리도 흩어지고 말 것이니, 몸은 날카로운 도끼에 베일 것이요, 뼈는 수레 밑에 깔려 가루가 될 것이다.
최후의 때가 되어서는 후회하여도 이미 늦을 것이다. 너는 모름지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잘 헤아리며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라. 배반하다가 멸망하기보다 차라리 귀순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러면 너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대장부가 길을 택하여 표범과 같이 되기를 기약할 것이요, 좁은 소견을 고집하여 여우처럼 의심을 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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