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형장로님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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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에 내려와서 성묘를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선친의 산소 주변에 있었습니다. 동생이 벌써 벌초를 다한 후이기 때문에 크게 할 일은 없었고, 성묘를 한 후 가까이 있는 우리 밭에 가서 들깻잎도 따고 감도 따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존형장로님께서 자유게시판에 꼭 읽어보아야할 글을 올렸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습니다. 이제 돌아와 들어와 보니 삭제를 하셨네요. 뒷북을 치게 되었네요.
얼마전 6000가정홈에서 어떤 글을 홈지기가 일방적으로 삭제를 해서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시끄러웠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만 이존형장로께서는 스스로 내리셨으니, 모쪼록 필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무난하고 편안하게 정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관 뚜껑에 못질을 하고 난 뒤에 해야한다고 들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비평 등의 평가는 가급적 금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평전을 쓰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할 자료수집이 얼마나 공정한가 하는 문제는 절대로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정확하게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데, 가끔은 아전인수격이거나 편의주의로 흘러서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하기가 어려움을 알아야 합니다. 검사의 이야기,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엄정한 판단을 해야할 판사의 자세는 그래서 언제나 어려웁기 짝이 없습니다.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은 죄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검사의 일방적인 기소에 의거하여 판사가 검사의 진술을 믿고 선고를 내리는 것입니다. 가끔은 국선변호사도 직업의식에 흘러서 직업윤리를 망각하는 경우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가룟유다는 충신입니까, 배도자입니까?
예수께서 믿고 회계장부를 맡겼던 사람이지만 예수를 팔아버린 배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참회하고 스스로 자살한 사람을 끝까지 배도자라고 해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바라바"라는 제목의 영화를 오래 전에 보았습니다. 예수 대신 생명을 건진 바라바는 오랫동안 예수를 죽인 자라는 시달림에 고통하면서 자기가 살아난 것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습니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대사 한 마디 ~~~~~ "이제야 이 몸을 주님께 바치나이다." ~~~~~그리고 바라바는 죽습니다. 그러면 바라바는 천국행? 지옥행?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둘째, 이존형장로께서 의로운 마음으로 글을 올리시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여 글을 내리신 것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하여 혹 함부로 막말을 하는 것은 절대로 금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과거에 전혀 볼 수 없었던 내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성교단의 언론에서도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인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우리가 견해는 다를지언정 형제의 사랑은 철저히 지켜야겠다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이제 통일교회가 망할지도 모른다 하고 좋아라고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안에서 서로 갈등을 나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모든 문제점에 대하여 참부모님께서는 알고 계시지만 참자녀 모두가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전원이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치열한 정성을 들이시면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신다고 생각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습니다. 현진님도 국진님도 모든 참자녀분들이 다 하늘이 내리신 달란트에 따라 적절한 자리에서 성업에 종사하실 때가 반드시, 멀지 않는 시기에 꼭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존형장로께서 얼마나 자료수집에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정확하셨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참부모님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의도는 대단히 축복가정다웠다고 봅니다. 따라서 필자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믿으시고 모쪼록 참부모님께서 기다리시는 그날이 어서 오도록 우리는 그저 두 손 모아 기도할 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평가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참부모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그 날이 어서 오도록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렇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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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대충 짐작컨데 최근의 어떤 인물과 사건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하고 정성드리는 일이 중요하지 우리가 심판관이 되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고 돌을 던지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요지가 아닐까 생각 되는군요.
바라는 바는 어떤이가 오늘의 가롯유다가 절대로 되지 않기를 원하며, 특히 죽음에 임박해서 후회하고 회개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용서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고 우리를 고민하게 하지말고) 우리들이 절대 신앙하는 '그분의 뜻대로' 초지일관하는 신앙인이라고 증거되는 결과가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아마 내가 가룻유다입장으로 들어 가면 용서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고 지금 신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진짜로 내게 용서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제일 먼저 용서 할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일지도 모릅니다
내안에 두가지 법이 나를 괴롭히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호호호.....
용서안하면 어쩔것입니까? 그가 내형제이고 그가 내조상이고 그가 바로 내모습인것을
나도 수도 없이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니.....
박순철님의 댓글
가룟유다가 자살할 때의 정확한 심리상태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편하려고 했는지, 속죄하려고 했는지는
현대인의 일방적, 주관적 견해일 뿐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할 일이 있으면
용서해 주는 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믿는 일입니다.
또 주고 잊어버리고,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고 잊어버리는 참사랑의 정신이 있다면
가룟유다를 용서해야 한다고 이해합니다.
참부모님께서 당신을 배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 하셨고,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오로지 하늘이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을 판단할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누구의 생각이든 이 거대한 우주의 무브먼트에 어긋나지 않는 생각이 바른 생각입니다.
그러나 관뚜껑 덮을때 덮고나서 일주일후 그때엔 고인에 대해서 평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그러나 교장 선생님 저는 만일 내게 용서하라 하지마라 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지금도 가롯 유다를 용서할수 없습니다. 회개를 한것은 자기가 편하려고 한것이고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가 인류의 육적구원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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