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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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가는 대쪽같은 절개로 역사를 철저히 객관적으로 기록했다. 어머님께서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당시 일년선배들의 졸업앨범에 어머님의 소중한 사진이 세 컷이 있었다. 이 졸업앨범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그냥 카비넷 속에 굴러 다녔는데 이상한 예감으로 가져가서 찬찬히 점검했다.
총학생회의 총무부차장으로, 미술부 부원으로, 전교학생회 회의장면 이렇게 세 컷이 있었는데 이 사진만이 아니라 어머님께서 재학하실 때의 학교 전경, 교실 수업 장면, 청소하는 모습, 유명한 음악가이신 이흥렬 선생님을 비롯한 당시 은사선생님들의 사진, 등등 대단히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의 "역사편찬위원회" 에 이 앨범을 빌려 주었다. 불같이 화를 내고 담당자의 정중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미 원본에는 가위질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앨범은 2006년 9월 천일국백성워크숖에 참석했을 때 문형진님께 드렸다. 앨범에서 어머님을 찾으시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리고 어머님께 보여드리겠다고 매우 기뻐하시면서 가져가셨다. 나는 복사본을 보관하고 있다.
선정학교에 와서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평한다. 그 앨범은 어머님의 귀중한 사진이 있으므로 해서 역사적 가치가 존재하는데 내가 식구가 아니었다면 그냥 옛날 앨범 정도로 적당히 정리되었을 생각할 때 다시금 소중한 생각이 든다.
이 사람 때문에 반환이 매우 늦어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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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님의 댓글
당시 위원장이었던 진성배교수가 정중히 사과했고, 직원들을 심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넉넉한 보수를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유능하고 사관이 뚜렷한 전문인을 구하기 어려운 우리의 심정입니다.
유급직원을 임용할 때, 신앙심에 기대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니지요.
수원교회 6층에 귀중한 사료들이 있다는 말은 우리끼리 하고 있을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역편, 선문대 박물관, 천정궁 등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이 빨리 모여야 하겠습니다.
대구교회에서도 자체의 역사를 정리하느라고 저에게 있는 각종 자료를
기증해 달라고 해서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에게 1960년대초의 구리시에서 조그마한 "예화공기총포사"시절의
공장의 여기저기를 찍은 흑백필름이 약 100컷트 정도 있는데
어디로 기증을 해야 할른지 몰라서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관방법도 엉성합니다.
역사를 가볍게 보는 사람은 역사에게 크게 혼이 난다고 합니다.
통일교 역사가 얼마입니까 ???
이제 우리는 역사를, 그리고 후손들을 두려워 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신동윤님의 댓글
역시를 다시 써야 할 자료들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하신 승화하신 유광열 회장님께서
특유의 킁킁거리는 소리로 통일교회는 증인들이 곳곳에
살아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다른 말을 하여
역사를 다시써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답니다. 이미 역사를 편찬했는데 그게아니라는 산 증인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예요.
보고들은 사람이 없으면 마음대로 멋지게 쓸수 있으련만
그렇게 쓸수는 없어서 어렵다는 것이 었습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현재 역사편찬위원회 자료실은 수원교회 빌딩 맨 윗층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답니다. 교회측은 대형교회로 도약하기 위한 공간이 절실히 필요해서 제발 하루속히 나갔으면 하더군요.
현재 참부모님에 관계된 자료나 통일교회 관련자료는 역사편찬위원회 자료실과 선문대학교 박물관(천안캠퍼스)과 천정궁 박물관에 분산되어 제각기 보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천정궁 박물관에서 통일교회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숱한 셋방살이 때문에 주요자료는 선문대학교 박물관에 오래전에 기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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