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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갑자 동방서기(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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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 그러니가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동방서기 삼천갑자가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삼천갑자란 60년에 갑자가 한번 돌아 오는데 3,000년의 갑자니 나이가

180,000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을 일러 삼천갑자 동방서기라고 불려는데 ,

하루는 옥황상제(하나님)가 저승사자를 불러놓고, 삼천갑자 동방서기를 찾아야 하는데

하늘에있는 호적에는 동방서기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다가 생각 되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호적에 기록이 없으니 저승사자로 하여금 동방서기를 잡아 올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동방서기는 삼천갑자(180,000년)를 살게 하고도

잡아 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승사자가 좋은 생각을 내어 "그럼 제가 지상에 가서 삼천갑자를 잡아오겠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온 저승사자는 지구촌을 돌며 삼천갑자를 찾았습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삼천갑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천갑자가 살고 있을것 같은

한 시냇가에서 저승사자는 까만 숯을 빨고 있었는데, 삼천갑자가 그 옆을 지나갔습니다.

하도 신기하여, 삼천갑자가 저승사자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거기서 아저씨는 무엇을 하시는 거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숯을 빨고 있는 저승사자가 하는 말이 "이 숯이 하얗게 될때까지 빨고 있다네!" 라고 말했

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삼천갑자가 껄껄껄 웃으면서

"여보게, 내가 나이 삼천갑자(180,000년)를 살았는데, 자네같이 이렇게 숯을 하얗게 될때까지

빨고 있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저 사람이 삼천갑자라는 것을 알고 덥석 삼천갑자를 잡아서

저승으로 잡아가 버렸다는 재미있는 민담설화 입니다.

윗내용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아마 구전을 통하여 내려오는 옛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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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푸른빛님의 댓글

중국과 한국은 지리, 역사, 문화, 감정의 네가지 방면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산동성은 우리가 어렷을 때 배웠던 인물들과 지명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공자, 맹자, 순자, 강태공의 고향이 오늘날 산동성에 있고, '태산이 높다하되........'로 시작되는 시에 등장하는 태산도 역시 산동성에 있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의 고향도 지금의 산동성 양신현이어서 그곳에 가면 그의 사당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나무꾼과 선녀' '견우와 직녀' '삼천갑자 동방삭' 등 전설이 있습니다.
모두 그 시작이 중국인지, 한반도에서 생겨 그곳에 전래 되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으나 똑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본에도 똑 같이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의 이야기는 과장법이 심한 중국에서 발원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탄천의 발원지인 경기도 용인에 있는 수지구 죽전동에서는 동방삭과 연계하여 탄천제를 지내려 한다니 잘못하면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 됩니다. 좀더 심사숙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문헌에 나타난 자료를 소개 합니다.
..........................................
동방삭(東方朔 기원전 154년 - 기원전 93년)은 한나라 때 사람이다. 한 무제때에 벼슬을 했다.
속설(俗說)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먹어 죽지 아니하고 장수(長壽)하였으므로 '삼천 갑자(甲子) 동박삭'이라고 일컬음.
자는 만청(曼倩)이고 평원(平原) 염차(厭次, 지금 산동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동남쪽에 해당되는 지역) 사람이다. 서한(西漢) 무제(武帝) 시기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과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동방삭은 생존할 당시부터 이미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특히 동방삭의 해학과 말재주를 좋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동방삭에 관련된 설화는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하였다. 《한서(漢書)》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에는 그의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非有先生)〉,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禖)〉, 〈병풍(屛風)〉, 〈전상백주(殿上柏柱)〉,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외 《신이경》과 《십주기(十洲記)》 등 지괴(志怪)소설의 저자가 동방삭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가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규님의 댓글


동방삭이가 3000갑자를 산이유
동방삭이는 남을 속이기를 잘하고 자기이익만 챙기는
욕심장이 였다.
극심한 가뭄이든 어느 해 남에 논에 물을 몰래 자기 논에
물고를 터놓다 주인부부 에게 들키게 되었다.
할수 없이 잘못했다고 무릅 꿇고 빌어 겨우 사건은 무마가
되었으나. 두부부의 대화를 였듣고 걱정이 생긴다.
내용인즉. 부인이 남편에게 여보 저 욕심만 부리는 동방삭이
야단 치세요. 한. 두번도 아니고 라고 말하니.
남편 대답이 걱정 할것 없네. 내 동방삭이 사주를 보니 얼마안가
죽을 사주라네. 동방삭이 걱정 끝에 두 부부 찾아가 무릅 꿇고
애걸하기를 어떻하면 더 살수 있느냐고 사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여 처방을 일러 주기를 3일후 저녁 밥세그릇. 짚신 세 켤레.
망발 세 켤레를 정성껏 준비하여 마을 앞 다리에서 기다리면
검은옷 입은 세사람이 지나갈 테이니 그 손님을 잘 대접하면
아마 더 살길이 있을줄 모르겠다고 일러준다.
정말 일러 준대로 밥 세그릇. 짚신 세 켤레.망발 세 켤레를 준비
하여 기다리니 말대로 검은 옷입은 세사람이 나타나 접대를 잘했단다.
하지만 이는 다름아닌 동박삭이를 잡으러온 저승사자 였지요.
동방삭이 저승사자 안내로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게 되어 판결순서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동방삭이 순서가 왔는데 염라대왕 피곤하여 잠간 쉬고
한다고 자리를 비운사이 동방삭이 안내해온 세 저승사자가 의논하기를
우리가 이승에가서 밥얻어먹고 짚신 망발 얻어신었는데 보답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동방삭이 조서에 이승에 도로 내려가 3갑자 더살고
오라 되어 있는 곳에 저승사자 세 명이 동그라미 하나씩를 그려 넣으니
3000갑자가 된 것을 염라대왕 쉬고 들어와 조서가 고처 진것을 모르고
그대로 판결을 내리게 되어 동방삭이가 이승에 돌아와 3000갑자를
살게 되었다는군요. 3000갑자를 다 살아아 저승사자가 저승으로 데려갈려고
찾아 헤멨으나 너무오래살아 얼굴 모습이 변하여 찾을수 없어 숯을 빠는
이상한 짖을 하여 동방삭이를 찾게 되었답니다.
참고 : 1갑자는 60년. 3000갑자 X 60년 180.000년 終.

효담(김형근)님의 댓글

아무튼 천일국 이루어지고 세계만민들이 덩실덩실 춤추는 그날까지 삼천갑자 아니 삼만갑자라도 살으시게요. 선배님~~~~~~~~~~~~~~~~~~~~☆☆☆

이판기님의 댓글

우공이 궁민핵교 시절(학년은 모름) 교과서에 삼년고개라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어느마을에 고개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삼년고개렸다. 이유인즉슨 누구던지 이 고개를 넘다 넘어지면 삼년밖에 못 산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마을에 사는 이첨지가 그 고개를 넘다 앗차! 실수로 그만 넘어졌겄다. 아, 이첨지 ‘난 이제 삼년밖에 못 살겠구나...’하고 생 병이 나서 자리에 누었겄다. 이 소문을 들은 우공(가칭)이 이첨지를 찾아가 왈"이보시오 이첨지, 뭘 그리 근심하시오? 그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삼년을 산다지요?" "그렇다는구료, 난 이제 뒈진 목숨이오..""맞습니다. 맞고요. 그럼 두번 넘어지면 육년살고, 세번이면 9년, 네번..열번...아, 삼천갑자 동방삭(동방은 성이고 이름이 삭)이도 그 곳에서 실컷 구르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던데요. 이첨지도 가서 한 삼백번 구르고오시지요." 이첨지 띌듯이 기뻐하며 그 길로 고개에가서 해가 넘어갈 때 까지 구르고는 매우 길~게 장수하였다지요? 아마...

효담(김형근)님의 댓글

대선배님~~이렇게 뜨겁게 관심가져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처럼 우리 선배님들께서도 삼천갑자하시옵길바랍니다.
댓글주신님께 만수무강은 물론이면 삼천갑자를 넘는 건강이 함께하리라 믿습니다. 아~~주

이존형님의 댓글

후후후 ^^^^^^이 사람은 이제 겨우 동방삭이의 삼천분의 일을 살았는데
내 한 이갑이라도 살고푼데^^^^^^^
그 저승사자를 어떻게 어디로 따돌리면 될까요?
누구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정해관 사무총장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재미난 우화의 정보하나 잘 얻어갑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정해관 사무총장님의 해박한 지식에 감사드립니다.
민담 설화는 현대인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하고 있군요.

재미있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

이옥용님의 댓글

아는 것 만큼 모르는 것이 많다는 말이 있지만 아는 것이 어느만큼인지 훌륭하십니다.
김동운 형님을 홈에 뵈니 반갑습니다. 본체론 교육때 심정어린 보고 기도에 음성이 들립니다.
홈에 자주 오셔서 뵙기를 바랍니다. 바쁜 연말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정해관님의 댓글

좋은 상식 하나 얻어 갑니다. (이름이 낮설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동방삭이'로 표현되더군요. 이 기회에 두루 익힙시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18만년이나 장수를 누려온 동방삭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으려고 용인 땅에 왔으나 그의 형체를 알지 못해 잡을 도리가 없자 한 가지 꾀를 냅니다.

동방삭이 호기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저승사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제 발로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날부터 저승사자는 숯내에서 검은 숯을 빨래를 하듯 빨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숯을 열심히 빨고 있는 저승사자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왜 숯을 물에 빨고 있느냐"고 묻자 "숯을 희게 하기 위해서 빨고 있다"라고 하자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물에다 숯을 빠는 사람은 처음 보았소"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순간 저승사자는 "이 자가 동방삭이가 틀림없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동방삭을 사로잡아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저승사자가 숯을 빨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탄천'이라 했다는 전설입니다.

'탄천 안내문'은 하천의 유래와 관련해 전해져오는 설화를 이렇게 설명한다.탄천(炭川)은 길이 약 35㎞의 하천으로,용인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성남을 거쳐 한강으로 유입되는 지류이다.전체의 절반이 넘는 약 25㎞ 구간이 성남시의 중심부를 지난다.그래서 성남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지역설화인 '삼천갑자 동방삭과 탄천 이야기'란 동화책을 제작 배포해 지역 문화교육에 활용하는 외에도 매년 '탄천페스티벌'을 개최해 왔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 때면 탄천을 주 무대로 종합문화예술축제가 열렸다.그런데 지금은 탄천이란 한자말에 밀려 거의 잊혀가고 있지만 탄천 이전에 우리에겐 숯내 또는 검내라고 불리던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 있었다.탄천은 서울로 들어와선 강남구 대치동 부근에서 양재천과 어울려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 청담동과 신천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그 건너편이 뚝섬이며 뚝섬 옆으로는 강북 쪽에서 흘러드는 중랑천이 있다.이곳 물길을 예로부터 숯내 또는 검내라 부른 데는 이런 지리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조선시대에 강원도 등지에서 목재와 땔감을 한강 상류를 통해 싣고 와 뚝섬에 부렸는데,이걸 갖고 숯을 만든 곳이 바로 맞은편 탄천 부근이었다.그러다 보니 개천 물도 수시로 검게 변했는데 이로 부터 숯내 또는 검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이 숯내(탄천)의 유래에 등장하는 '동방삭'은 본래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으로,해학ㆍ변설 등에 능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속설에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장수했다고 해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불렸다.서왕모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녀(神女)로 신령스러운 복숭아나무를 기르고 있었는데,동방삭이 그 열매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것이다.그런 동방삭이 이 땅 탄천까지 와 객사한 셈이다.그것도 순간적 방심에서 나온 말 한마디로 인해 생을 마감했으니 비록 전설이나마 조상들의 삶에 깃든 해학과 재치가 놀랍다.실제로 '동방삭'은 우리말 안에서 여러 속담과 관용구를 이뤄 우리말 표현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관용구 '삼천갑자 동방삭'은 장수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그는 또 평소에 행동거지가 매우 조심스러워 속담 '동방삭이는 백지장도 높다고 하였다'란 말이 생겼다.이는 '동방삭이 불로장생한 것은 백지장도 높다고 할 만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니 모든 일에 조심해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란 속담은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닥쳐올 운명에 대해 잘 알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때 '동방삭'과 '동방삭이'를 헷갈려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동방삭이'의 '-이'는 받침 있는 사람의 이름 뒤에 붙어 어조를 고르는 역할을 하는 접미사다.따라서 '동방삭/동방삭이'는 같은 말이다.이는 '영철'이나 '갑돌'을 '영철이' '갑돌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우리말에서 흔한 어법이다.동방삭이가 산 삼천갑자는 18만 년에 해당한다.삼천갑자의 '갑자(甲子)'는 육십갑자의 첫 번째로 1갑자라 하면 60세를 가리킨다.환갑 또는 회갑 역시 육십갑자의 첫 머리인 '갑'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우리 나이로는 61세,만으로 60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지금은 수명이 많이 늘었지만 예전엔 1갑자라 하면 대개 사람의 한 평생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그러니 삼천갑자라 하면 무려 18만년이 되는 것이다.

이존형님의 댓글

그 삼천갑자 동방서기는 치매도 안 걸리나 봅니다.
세상에서 일갑을 살기도 힘겨운데 삼천갑이라니....
예전에 할머니에게서 들어본 이야기이군요.
그 저성사자 같은 지혜를 우리도 가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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