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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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등반
이 태 곤
예순의 세월속에 설악산을 향해 미시령이나 한계령 고개를 넘어본 횟수가 아령칙하지만 열손가락으로는 모자랄 것 같다. 그것이 대부분 외설악의 설악동 중심한 여정으로 기억된다. 흔들바위에서 잠간 힘자랑을 해보다 울산바위에 오르거나, 비선대에서 어기적어기적 금강굴에 올라 참선의 도에 입문하거나 편안히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거나 비룡폭포를 다녀오는 여유로운 관광코스가 다반사였다.
내설악의 십이선녀탕 계곡이나 백담계곡은 물론이고 남설악의 오색약수계곡도 수 차례 누벼본 것 같다. 그때마다 설악산의 정상이 대청봉이란 사실은 익히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당일 코스로는 불가능해 숙박할 산악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동굴의 우상에 빠져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산수원 산악회에서 시월 산행을 설악산 대청봉을 가기로 정했다기에 큰맘을 먹고 도전해 보기로 작정했다. 예순 나이가 부담이 되고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은근히 겁이 났지만, 스스로 체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 다른 일정을 접었다 .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준비를 서둘러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목장갑과 모자, 스카프, 발토시, 카메라, 우의를 챙겨 배낭에 넣었다. 등반 중에 추우면 모자를 쓸 것이고 더 추우면 목에 스카프를 두를 것이고 더 춥거나 비가 올 경우는 우의를 입을 요량이다. 버스는 6시경에 새벽공기를 가르며 출발하였다.
오색약수터 근처의 남설악탐방입구에 내려 등반을 시작한 시간을 9시30분경이었다. 의욕이 솟구쳐 일행들을 뒤로 한 채 혼자 부지런을 피웠다. 이미 산악인들이 한둘씩 어울려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소 무리가 될까 일순 조심하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하려니 금방 숨이 차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참으면서 될 수 있는 한 속도를 줄이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산드러진 산악대장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 붙었다. 내 풋솜씨를 확인한 듯 그는 말했다.
“몸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다리가 가벼워졌다고 느낀 순간부터 속도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속도를 내면 곧 지쳐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쉬엄쉬엄 주위의 경치를 즐기면서 산을 오르십시오.”
전국의 국립공원 산들은 다 정상에 올라 봤다는 말에 기가 꺾인 나는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급경사의 등반로에 돌이나 나무, 혹은 쇠로 된 계단으로만 끝없이 이어져 갈수록 힘이 들었다. 그래도 인내하며 오르려니 다리에 쥐가 나려 한다. 평소에도 오른쪽 다리의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증세가 가끔 보인 터였다. 계속 움직여줘야 회복될 것 같아서 오르고 오르다 잠시 쉬었다. 뒤따라오던 나볏한 등산객도 덩달아 옆에 휴식을 취하였다.
나는 그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목청을 높여 자꾸만 다리에 쥐가 나려 한다고 푸념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곧 응답이 왔다.
“한 30분간 쉬면서 다리를 계속 주무르세요. 쉬지 않고 계속 오른다면 등반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털썩 주저앉아 신발과 양발을 벗어제끼고 발토시를 발목에 씌운 뒤 장딴지와 발가락들을 주물러 댔다. 뭉친 근육들이 쉽사리 풀리지 않음을 비로소 직감할 수 있었다. 다소 회복된 듯싶어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수시로 물을 마셨던 터라 물이 동나려 한다. 이미 계곡을 한참 벗어 오른 터라 물을 얻을 곳은 전혀 없었다. 정상에 오른 후는 점심을 먹어야 할터인고로 남은 물은 아껴둬고 싶었다.
목마름을 참고 오르려니 더욱 힘에 부친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길섶 바위에 앉아 쉬려니, 지나치는 부부동반의 수련한 아주머니가 아낀 듯한 귤 두 쪽을 건네었다. 무심결에 받아든 나는 목을 축일 수 있어 고맙기 그지없었다.
간신히 오르고 올라 오후 1시경 정상에 올라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체감온도가 영하를 훨씬 밑돌았다. 오르는 도중에 기온이 내려갈 때마다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우비까지 겹쳐 입었기에 세찬 바람을 맞서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대청봉 기념석과 산 아래 멀찌감치 정상에 오른 산악인들을 우러러보며 정상정복 축하의 박수를 쳐대는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어렵사리 촬영하고 하산하다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찰밥이 굳어 다소 딱딱해서 물병에 남은 물을 쏟아 물을 말아먹었다.
가벼워진 배낭으로 홀가분하게 내려오는데, 오를 때보다 배가 힘들었다. 오른쪽 관절에 통증을 줄이려 난간을 붙잡고 왼쪽 발에만 힘을 쏠리게 하려니 하산속도는 거북이걸음이다. 더욱이 마실 물이 전혀 없으니 목이 탄다.
그 때, 어떤 등산객이 놓고 갔는지 반쯤 담겨진 물병이 내리받이 길체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부부 등반객은 아마도 하산할 때 마시려고 일부러 놓고 간 모양이라고 중얼거리며 지나쳐 올라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페트병의 뚜껑을 열고 입안에 가득히 부여 마셨다. 보리차 비슷한 맛의 건강음료였다. 갈증을 해소한 맛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그 물병을 진자리에 놓았다.
끝없이 계속되는 돌계단에 짜증이 나려는 것을 참고 절룩절룩 내려왔더니, 마침내 계곡 다릿목에 닿았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한포국해 시원한 계곡물을 물병에 채워 갈증을 풀고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나며 기운이 회복되는 것 같다.
출발했던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6시경이었다. 이로서 예순의 나이에 설악산 대청봉을 정복하고 하산에 성공한 것이다.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을 정복했으니, 앞으로 다른 산들은 주눅이 들지 않고 문제없이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첫 번째인 한라산은 삼십대 초반에 야영할 수 있는 장비까지 갖추고 등반하여 백록담 물로 밥까지 지어 먹어 봤기에 미련은 없다. 아직도 난 건재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 등반이었다.
산을 오르는 첫걸음 요령을 전수해 준 산드러진 산악대장, 쥐가 나지 않도록 예방해 준 나볏한 분, 귤을 건넨 수련한 아주머니, 페트병을 놓고 간 길벗들이 있었기에 추억에 길이 남을 등반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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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곤(대숲)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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