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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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 말라위공화국(Republic of Malawi)/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의 내륙국
인구 : 13,014,000
면적 : 118,484㎢
수도 : 릴롱궤
정체·의회형태 : 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 치체와어·영어
독립년월일 : 1964. 7. 6
화폐단위 : 말라위크와차(Malawi kwacha/MK)
국가(國歌) : O God Bless our Land of Mala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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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수도는 릴롱궤이다. 국토의 모양은 길고 좁으며, 남북길이가 837km이고 동서 폭은 8∼160km에 이른다. 북쪽은 탄자니아, 동쪽과 남쪽은 모잠비크, 서쪽은 잠비아와 접해 있다. 면적 118,484㎢, 인구 13,014,000(2006 추계).
자연환경
말라위는 지형학상 4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동아프리카 지구대 : 가장 뚜렷한 자연적 특징을 이루면서 남북으로 국토 전반에 걸쳐 있으며, 니아사 호(말라위 호 : 2만 9,260㎢)와 동쪽의 시레 강 유역을 포함한다.
② 중부지방고원(Central Region Plateau)은 해발 760∼1, 370m이며 전국토의 약 3/4에 해당한다.
③ 고지대는 북쪽의 해발 2,440m가 넘는 니이카 고원과 비피아 고원, 남쪽의 집약 농업이 이루어지는 시레 산악지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④ 나머지 지역은 고립된 좀바 산괴(약 2,135m)와 물란제 산괴(최고봉은 약 3,000m의 사피트와 봉)로 되어 있다. 한편, 시레강은 말라위의 주요강이자 니아사 호의 유일한 배수구로 국내 전체 수력발전 용량의 약 2/5를 생산해낼 수 있다. 니아사 호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큰 호수로 세계에서도 가장 크고 깊은 호수 중의 하나로 꼽히며,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말라위는 열대계절풍 기후로 크게 건기(5∼10월)와 우기(11∼4월)로 나뉜다. 가장 따뜻한 달(11월)의 평균기온은 22℃(고지대)에서 27℃(저지대)이며, 가장 서늘한 달은 평균 15∼19℃이다.
연강우량은 다양해서 북부 산악지방은 2,300㎜, 고원지대는 1,270㎜, 저지대는 762㎜ 정도이다. 시레 산악지방에는 차[茶] 재배농장들이 있으며, 중부지방에서는 담배를 재배한다. 숲과 삼림지가 전 국토의 1/4가량을 차지하며, 메마른 고원지대는 주로 사바나 유형의 목초와 관목으로 되어 있고 산악지방은 대나무, 아카시아, 옐로우드 등이 대부분이다. 북부 산악지방에서는 목재 및 펄프로 쓰기 위해 침엽수(유카리나무, 소나무, 시더)를 심고 있다.
영양, 물소, 코끼리, 표범, 사자, 기린, 코뿔소, 얼룩말, 원숭이 등 많은 동물들을 몇몇 금렵구역이나 국립공원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카숭구 국립공원(2,046㎢)이 가장 크다. 광물자원은 매장량도 많지 않고 그 종류도 적다. 물란제 산괴에 보크사이트, 칠와 호 지역에 인회석, 북부 지방에 석탄이 매장되어 있지만, 석회암과 그밖에 몇 종의 건축용 석재만이 채석된다.
국민
말라위의 연간 인구증가율은 1970년대말에 2.6∼3.0%였는데, 이는 인구 1,000명당 출생 51∼54명, 사망 25∼26명으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인구의 규모는 적정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높은 사망률과 이환율(罹患率)을 문제시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보건관리, 특히 모자(母子)보건 개선에 힘쓰고 있다.
1970년대말 전체적인 인구밀도는 59명/㎢이었으며, 남부 지방이 88명/㎢으로 가장 조밀했다. 인구가 가장 희박한 곳은 북부지방으로 24/㎢명이었다. 인구의 1/10 이하가 도시에 살지만 농촌인구가 도시로 계속 이동하고 있으며, 수도 릴롱궤의 인구는 9만 8,718명(1977), 블랜타이어는 21만 9,011명, 옛 수도인 좀바는 2만 4,234명, 음주주는 1만 6,102명이었다.
주민의 대부분이 반투어를 쓰는 아프리카 흑인이며,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소수이다. 공용어는 치체와어와 영어이며, 칠롬웨어·치야오어·치툼부카어도 쓰인다. 종교는 전통적인 정령신앙,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대략 비슷한 수의 신자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경제는 공기업과 사기업이 동참하는 개발도상의 혼합경제체제이며 농업, 상업, 공공서비스업, 경공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80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GNP)은 13억 9,000만 달러였고, 1인당 GNP는 230달러였다. 농업은 GNP의 약 2/5를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4/5가 이에 종사한다. 소규모 자작농이 대부분이며, 토지 보유는 관례에 따른다.
1977년 '말라위 농촌개발사업'이 시작되어 국제개발협회(IDA), 아프리카 개발은행, 유럽 경제공동체(EEC) 회원국, 캐나다, 미국 등으로부터 자금 후원을 받고 있다. 옥수수가 주요작물이며, 담배, 땅콩, 동유(桐油), 해바라기씨, 면화 등을 수출한다.
정부는 통나무 생산이 국내 수요에 못 미쳐 임업 및 관련산업 확대를 장려하고 있다. 광업은 시멘트와 기타 비금속 건축재료 생산에 머무르며, 적은 양의 금을 손으로 캐낸다. 제조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도 못미치지만, 새로운 산업에 대한 '말라위 개발공사'의 투자에 힙입어, 제조업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주산품은 설탕, 맥주, 담배, 담요 등이다. 전력 생산은 '말라위 전력공급위원회'가 관리하며, 1980년에 3억 9,800만 kWh를 생산해냈다. 대부분 수력발전으로 생산되며, 연료 수입량은 비교적 적다.
대외무역은 담배, 차, 설탕 등의 수출과 연료, 자본재 및 소비재의 수입이 대부분이며, 로메 협정으로 EEC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유리해졌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1980년 말라위 수입의 37%를 차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영국, 독일 등이다.
정치·사회
1993년 11월 다당제가 채택되고, 종신대통령제가 폐지된 이후, 1994년 5월 다당제 선거실시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물루지(Muluzi)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프리카 내에서 백인정권에 대하여 가장 우호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사법부는 최고항소법원·고등법원·하급법원과 관습법원으로 되어 있다. 말라위는 소규모 군대를 갖추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없지만 아동·신체장애자·극빈자에게 도움을 주는 복지제도가 있으며, 국립병원에서 몇 가지 진료는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의료진이 매우 부족한데, 농촌지역이 특히 심하다. 공중보건시설이 대체로 미비하여 말라리아, 결핵, 주혈흡충병, 위장병, 나병 등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
평균 기대수명은 약 45세이며, 유아 사망률은 1970년대초 출생아 1,000명당 150명으로 매우 높았다.
학제(學制)는 8년제 초등학교(학령아동의 약 45%가 입학), 4년제 중등학교, 기술 및 교사양성학교, 말라위대학교 등으로 되어 있다. 정부가 통신매체를 엄격히 통제한다.
문화
말라위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북을 주 악기로 하는 전통 무용과 노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며, 여러 가지 전통예술 및 공예품, 특히 나무와 상아로 된 조각품이 독특하다.
구전(口傳) 민속문학이 라디오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는 반면 글로 남겨진 작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 현대문학도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역사
말라위의 초기 주민인 트와족과 풀라족은 BC 8000∼2000년의 선사시대부터 거주해왔다. 1∼4세기에 반투어족이 이 지역에 들어와 초기의 정치국가를 세웠으며, 1480년에 마라비 동맹이 생겨났다. 말라위 중부와 남부 대부분을 포함하는 이 동맹은 17세기에 인근지역의 여러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1600년경 응곤데족(族)이 말라위 북부에 왕국을 세웠으며 18세기에는 니아사호 동쪽 연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치쿨라마이엠베국(國)을 건설했다.
18∼19세기 말라위에서는 노예무역이 번성했다. 1830∼60년 스와힐리어계 종족이 이 지역에 들어와 야오족과 함께 세력권을 형성했으며, 이들 모두 노예무역에 관계했다. 1860년대에 노예무역과 더불어 이슬람교가 전개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같은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를 들여왔다. 1880∼90년대에 '남아프리카 네덜란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웠다.
영국은 1891년 '니아살란드 보호령'을 설정하여 이 지역의 식민통치권을 갖게 되었으며, 1893년에 '영국령 중앙 아프리카'가 되었다가 1907년에 니아살란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국 식민통치기에 유럽인들의 환금작물 경작법이 소개되었으며, 도로 및 철도가 건설되었다. 영국은 말라위 사람들의 복지 향상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아프리카 고유의 경작법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인근 국가로 일자리를 찾아 말라위를 떠났다.
1951∼53년에 남·북 로디지아와 니아살란드 식민지들이 연방을 이루었다가 1963년에 해체되었다. 이듬해 말라위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고, 1966년에 공화국이 되었다. 1970년대의 10년 동안 반다 대통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판하지 않고 주위의 아프리카 흑인국가들을 종종 비판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말라위 경제는 1970년대의 상당 기간 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그것은 주로 외국의 원조와 자본투자에 힘입어서였다. 1970년대초 말라위는 모잠비크에서 피신해온 반(反)정부 폭도들의 피신처가 되기도 했다.
1978년 6월 29일, 독립 후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1980년대초에도 반다는 대통령으로서 권좌를 유지했으며, 말라위의 노동자 약 2만 명이 고용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시켰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말라위는 1965년 3월에 외교관계수립에 합의하고 우간다 주재 한국대사가 말라위대사를 겸임해오다가 1984년 7월 상주공관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말라위는 종신대통령인 반다 대통령의 반공정책으로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줄곧 신뢰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은 말라위와 1977년 5월 의료협력협정을 맺은 바 있으며, 그밖에도 보건·의료 지원을 비롯해 청소년 영농교육을 위한 무상원조와 기술연수생 초청교육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무역통상부문에 있어서는 1991년 대한수입 9만 달러에 수출은 5,000달러로서 줄곧 대한수입액이 수출액을 앞지르고 있다.
1986년 말라위에 체류중인 한국인은 49명으로 집계되었다. 한편 말라위는 주변국가들과의 선린관계유지상 반공정책만을 고집할 수는 없어 1982년 6월 북한과도 수교했으나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할 뿐 실질적인 협력관계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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