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創宗者들 종교의 꽃 피우다
컨텐츠 정보
- 0댓글
-
본문
[뉴스메이커]의 오래된 글 올려 봅니다. "한국의 창종자들 '종교의 꽃' 피우다"란 기사를 읽다보니 우리나라 현대史는 우리교회를 태동하게 하는 종교의 바탕과 발전을 준비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
| ||
[조명]수운·증산·소태산 ‘종교의 꽃’ 피우다
한국의 창종자들 | 구한말~일제강점기가 민족종교 대부흥기

나라뿐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도 황폐하여 조선을 떠받쳐온 기둥인 유교가 무너졌다.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내렸던 불교는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으로 근근이 맥을 이어나가는 지경이었다. 그 틈 사이로 서양의 종교가 밀려들어왔다. 이들 종교 중 일부는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을 허물며 세력을 넓혀나갔으며, 다른 일부는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에 맞게 토착화하면서 교세를 확장했다.
썰물이 빠져나가고 밀물이 밀려오는 격변기에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가 명멸했다.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교와 불교만 존재했던 이 땅이 혼란기에 수많은 종교로 꽃을 피운 토양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황폐한 사막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움으로써 이땅은 ‘종교의 나라’가 됐다.
종교적 심성에 샤머니즘 깔려 있어
시대의 흐름을 깨달은 선각자가 나서서 민족종교를 내세웠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를 밑바탕으로 민족적 성향을 가미한 신종교도 생겼다. 서울대 종교학과 윤이흠 명예교수는 “한국 민중의 심리에는 한국의 고유 정서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점이 종교적 특성에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한양대 조흥윤 교수(문화인류학)는 “한국의 종교적 성향은 민족주의적이며, 종교적 심성에는 샤머니즘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샤머니즘이란 범신론적이며 모든 신을 받드는 특성을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종교와 신종교의 창시자들은 새로운 종교의 씨를 뿌렸다.
민족종교의 태동은 수운 최제우가 천도를 깨달은 1860년에 시작됐다. 최제우는 도(道)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지만 학(學)은 동학(東學)이라고 했다. 도에는 동서가 따로 없지만, 당시 가톨릭의 서학(西學)과는 다른 한국사상을 내세워 동학이라 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왕조는 거의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불교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함을 느꼈다. 임운길 천도교 연원회 의장은 “1860년 열강이 조선으로 몰려오는 상황에서 수운은 유교와 불교의 운이 다했으며, 과거의 종교를 갖고는 이 세상을 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임 의장은 “수운은 고향인 경주 용담에서 도를 깨닫지 않으면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라는 각오로 정진했다”고 말했다.
최제우가 내세운 민족정신은 ‘개벽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천개벽에 이어 역사가 순환하며, 비운의 조선 땅에 후천개벽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선포했다. 개벽사상은 이상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암울한 시대의 민중 사이에 횃불처럼 타올랐다.
동학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개벽사상은 증산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집행하면서 다시 펼쳐진다. 그는 제도화를 통한 개벽(동학)이 아니라 탈제도화를 통한 개벽을 주창했다. 을사늑약(1905년)이 체결된 지 4년 후인 1909년 강일순은 후천선경세계를 민중들에게 제시했다. 후천에는 천하가 한 집안이 되고 상생의 해원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말했다. 원(寃)이 가득 차 세계가 종말로 갈 때 그 원을 해소하여 개벽을 가져오자는 것이다.
1916년에는 소태산 박중빈이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개벽사상을 실천하는 것이 박중빈의 원불교다. 하지만 이 실천은 물질적인 문명의 개혁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명의 개혁을 뜻한다는 점에서 수운과 증산의 개벽사상과 다른 길로 나아갔다.
‘개벽사상으로 일본서 해방’ 의지

한양대 조흥윤 교수는 “전통사회의 붕괴와 일제 강점으로 민중들이 귀의할 수 있는 곳은 종교 쪽이었다”며 민족종교가 발생한 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1980년대에 ‘민족종교’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정립한 윤이흠 교수 역시 “민족종교는 외부에서 들어온 서학에 대한 반발로 발생했으며, 동시에 근대사상을 수용하면서 민족주체 의식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민족종교는 한국인의 심성에도 잘 맞아떨어졌지만, 한국 민족의 가슴속에 있는 한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민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울 즉 천주가 외부세계에 절대 타자로 있으므로 정성으로 모셔야 한다는 수운 최제우의 사상은 천주의 심성을 기른다는 해월 최시형의 사상으로 발전하고, 의암 손병희에 이르러 천주의 심성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진대 윤재근 교수는 “천도교의 한울사상을 이어 증산도는 자기가 곧 한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수련하면 한울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수운 최제우·증산 강일순·소태산 박중빈으로 대표되는 3대 창종자를 이어, 새로운 민족종교도 많이 생겼다. 증산 계열에서 조정산 도주가 1925년 무극도를 만들면서 훗날 대순진리회의 기초를 다졌다. 이밖에도 대종교의 나철, 보천교의 차경석 등이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
일제 강점기가 민족종교에게는 대부흥기였다. 임운길 천도교 연원회 의장은 “우리나라가 ‘2천만 동포’라고 할 때 동학교도는 300만 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3·1운동을 주도한 것도 사실상 천도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점이 지속되면서 민족종교는 탄압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신흥종교’라는 꼬리표를 붙인 후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죄명을 덧붙였다. 탄압을 받으면서 민족종교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최근 민족종교를 포함해 새로운 종교를 묶어 표현하는 데 ‘신흥종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가 의도했던 것처럼 ‘신흥종교’라는 표현에는 이단과 사이비라는 의미를 은연 중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흥종교’보다 ‘신종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일제로부터 벗어나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전쟁 후의 혼란기까지 한국에는 제2의 신종교 발생 시기가 도래했다. 민족종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크게 쇠락했고, 기존 종교로 만족할 수 없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교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이데올로기로 정신적 피폐함을 겪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기존의 종교에다 한국적 심성을 담아 새로운 신종교를 창시했다. 한양대 조흥윤 교수는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이 신종교가 많이 생긴 사회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2대·3대 지도자 시대로
회당 손규상 종사는 해방의 시기에 깨달음을 얻어, 불교의 밀교사상을 바탕으로 1947년 진각종을 창종했다. 회당 종사와 함께 진각종을 일구었던 손원정 성사는 1972년 또 다른 밀교종단인 총지종을 만들었다. 상월 원각 조사는 6·25전쟁 당시 피난민과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1962년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소백산 구인사에서 천태종을 만들었다.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이 땅에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다. 통일교가 1954년, 천부교가 1955년에 만들어졌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흔히 통일교로 불리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가정연합 문선명 총재는 광복과 6·25전쟁의 어려운 과정을 딛고 1954년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지금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다.
민족종교를 포함해 이 땅에서 발생한 신종교는 창종자가 한국인인 만큼 알게 모르게 한국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양대 조흥윤 교수는 “여러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라든지, 체험 위주의 신명에 의존해 종교적 감성에 기울어지고, 그 대신 이성이나 논리가 취약한 것이 한국적 종교의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윤이흠 교수는 “기성 종교를 바탕으로 창종하더라도 창종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들 종교가 한국 고유의 가치와 정서를 버리지 않고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족종교를 포함해 신종교는 21세기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천도교·증산도·원불교·대순진리회는 벌써 창종자가 창종을 선포한 지 100여 년의 세월을 겪으며 교세를 이어왔다. 해방 전후 발생한 신종교는 대부분 창종자에서 2대·3대 지도자의 시대로 넘어왔다.
한양대 조흥윤 교수는 “중앙집권적인 신종교가 21세기에는 개방적으로 열려야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서울대 윤이흠 명예교수는 “민족종교의 경우 교리가 대부분 보수적이어서 현대사회에 맞는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점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진대 윤재근 교수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종교가 어느 정도 가능성을 가졌으나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며 “창종 1세대가 사라지고 2세대로 제대로 승계되지 못한 점이 있기 때문에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신종교와 민족종교가 한국적 가치를 살려나가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외국으로 나간다면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2008.2.19, 뉴스메이커 762호] |
관련자료
댓글 3 개
-
이전
-
다음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