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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西 李恒老 선생 詩碑 次龍門 시 紹介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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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西 李恒老 선생 시비 次龍門 시를 소개합니다. 1부

 

2025418일 길일을 택해 한국1800축복가정회 天苑宮天勝支會 회원들 46명이 春期 野遊會로 경기도 용문산 용문사를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특별한 것은 어느 사찰과 달리 용문사에 관하여 詩句를 남긴 선현들의 시비가 다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龍門山寺의 풍경을 感興 하기 위하여 조선조 오백년 역사에 수많은 名賢 名士가 이곳을 찾아 자연의 風致讚美하는 시문(詩文)을 남겼습니다. 옛 한시를 해역(解譯)하여 오늘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옛 정서(情緖)를 되새기게 하고 오늘의 풍경을 옛 시정(詩情)으로 감동케 하기 위하여 시문(詩文)을 돌에 새기어 세우며 새로운 名所로서 이곳을 찾는 분들의 쉼터가 되고 歷史性을 일깨우게 하였습니다.

 

詩選은 양평 인물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이에 우리들이 학문적 인식 속에서 기억되는 분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 시비 몇 수를 소개하며 세 번째로 華西 선생의 次龍門 詩碑 소개합니다. 회원님들의 보다 깊은 이해로 도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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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龍門(차용문) 華西 李恒老(화서 이 항로, 華西 李恒老, 1792~1868)

 

蓬蓽春消息 봄소식 사립문에서 맞았는데

旋旋到不齊 돌아오느라 바쁘게 못 왔네

盤肥香蔌葉 소반 위에 향기로운 나물 가득하고

園遍乳禽棲 동산에 어린 새 둥지에 깃들어 있네

酒在壺忘酌 병에 남은 술 따르는 것 잊고

壁懸琴不携 벽에 걸린 거문고 타는 것도 몰랐네

林花看默默 숲속의 꽃 묵묵히 바라보며

山日在窓西 서산에 걸친 햇빛 창문을 비추네

 

: 푸성귀 속, 채소의 총칭, 속엽蔌葉 : 푸성귀, 온갖 나물

 

앞에서 약간 언급한 대로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선생 또한 양평 출신이었습니다. 용문산 용문사 문화탐방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 양평농업박물관을 지나 다음과 같은 비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에 몇 차례 보고도 일별하고 지나쳤으나 본 고를 정리하면서 화서 선생을 보다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양평 서종면 출신(楊根縣砥平縣을 통합 오늘의 楊平郡이 됨)인 것을 알게 되어 이 같은 비의 위용과 가치와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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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正斥邪(위정척사)' 네 글자는 "正學을 수호하고 邪學을 배척한다"는 뜻과 "正道를 지키고 邪道를 척결한다"는 도학적 의리 사상이다. 이는 조선 말기 내부적 모순과 외세 침입의 위기의식 속에서 현실극복의 대응논리로 유림사회가 공유했던 민족주체의식이다.

그 대표적 선비는 文敬公 華西 李恒老선생이다.

愛君憂國[愛君如父 憂國如家(애군여부 우국여가)] -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이며 나라는 백성의 가정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라, 임금은 나라의 구심점이요 나라 없는 국민은 매우 불행하다.

 

華西 李恒老(화서 이항로, 1792-1868)선생은 불유사승(不由師承 - 스승이 없이 공부를 하였으며)하고 공자 주자 송자의 도통을 계승한 儒林宗師요 선각자이시다. 서종면 노문리 벽계마을 靑華精舍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도학과 의리를 강론하며 衛正斥邪를 주창하고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근간을 이루었다.

 

내가 2000년대 초반에 장성 老沙 奇正鎭 묘소에 衛正斥邪碑 제막식에 참여한 바 있는데 바로 華西 선생과 崔勉唵 선생과 함께 하는 사상인 것도 개인적으로 실재로 확인된 것은 내게 큰 수확이었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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