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우리집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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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우리집 그녀,
나고 자란 본향의 대명절인 추석을 맞고 있다.
우리집 그녀는 그 명절 기분을 가져보자며 송편을 상에 올려놓았고, 나는 그 송편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추석이 왔음을 실질적으로 느끼면서 체감하게 되었다.
편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나는 어렸을 적 그 어머니의 손길이 있었던 탓으로 이같은 명절을 섪지 않게 보내곤 하였다. 어머니는 추석 이후, 쌀쌀해질 날씨에 대비하여 긴소매의 옷가지와 닳고 헤어진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도록 새 운동화 등을 사주곤 하셨고, 그때마다 훈시성 말씀(잔소리)을 하고 또 하곤 하셨다. 운동화가 다 낡아 버려질 때까지 신발 뒷면을 접어 신지 말라는 거라든가 새옷을 입고 담벼락에 비벼대지 말라는 것 등의 당부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세면벽엔 절대 비벼대지 말라 하셨던 것 같다. 그것은 또래 아이들과 내가 동네 골목길에서 너무도 난잡하게 공차기를 했고, 그때마다 그 골목 양쪽 담벼락을 비벼대면서 해야 했던 까닭일 것이다. 새 옷도 금방 찢어놓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새 양말을 꺼내 주셨고, 그 양말에 구멍이 날까 염려 하여 발톱을 깎아주곤 하셨다. 참으로 그 시절이 새롭다. 그리고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그 애틋한 그 마음을,
그녀가 내온 그 송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러셨던 어머니가 새삼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천상으로 가셨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아직 내 곁에 계신 듯하다 그런 느낌이 있을 때를 종종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일 등 집안의 대소사나 명절 같은 것으로 한국의 절기 등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면서 소상하게 상기시켜주려 하는 그녀를 대할 때 느끼곤 한 게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맞이한 추석에도 그랬다. 명절음식을 꼭 먹어야 한다는 것 등을 비롯, 이것은 어디에 좋고 저것은 어디에 좋다는 것 등의 잔소리로 밥상을 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그녀의 그같은 액션을 지켜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내 어머니를 어쩌면 저리 닮았을까" 라고 생각하면서였다.
나이 들면서 더욱 그래지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한다는 그같은 잔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는 뜻이다. 그 때마다 스스로를 대해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 그녀를 대해서는 고마움을 느끼게 될 때도 있곤 한다 때론 짜증을 내면서 소리를 내면서도 그런다.
그땐 비로소 생각해본다. 나는 정말 세월을 건성으로 보냈고, 또 보내고 있나보다 라고.말이다. 그러면서 더욱 생각하게 된다. 나는 부족한 게 점점 많아지고, 그녀의 기억력은 더욱 생생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숫제 이젠 매사를 자신이 주관하고 리드해가려는 걸 목도할 때를 종종 맞곤 하기 때문이다. 집 안 일로서 잔디 깎는 일이나 나무 자르는 일 등은 물론, 베큐움이나 마루바닥 걸레질(Mop)까지도 시키려 한다는 게 그것이다. 심지어 자동차 오일 체인지 날짜까지도 기억하여 일러주면서 잔소리 할 때가 있곤 한다. 운전할 때 조수석에 앉아 잔소리코칭을 할 때에는 더욱 그같이 느끼게 한다. 어느 칸에다 파킹을 하라고 꼭 찍어 지시해줄 때가 허다 하기도 하니까. 미처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할 땐 "당신 눈엔 안보여? 눈을 감고 운전하는 거야?" 라고 하면서다. 그녀와 나 사이엔 이같은 사건의 에페소드가 가끔씩 발생하곤 한다.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젊은 시절의 여성은 적은 양의 남성 호르몬을 지니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그 호르몬을 더 많이 지니게 된다고 말이다. 의사들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으로 그것을 근거로 들면서다. 물론 남성은 그와 반대일 터이다. 남성이 가진 소량의 여성 호르몬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더욱 확대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나이 들면서 더욱 강해지고 상대적으로 남성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강약의 뒤바뀜으로 서로 부딪침이 있을 수 있다면서다.
이같은 현상이 인위적 조정이 아닌, 존재 이전에 기획된 신의 설계에 의한 결과라 한다면 생각을 좀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있어왔던 과거의 관습을 놓지 못하고 그것 지키기 일환으로 도전을 꾀하는 것 보다는 순응으로 받아들임이 편하고 수월한 삶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까닭이다. 그 길이 어쩌면 공존과 상생의 길로써 만년의 삶이 걸어야 할 순리의 길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맹자의 이루상(離婁上) 편에 나오는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의 뜻을 따르는 것도 그것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호르몬 분비 구조 속에서 인간의 생체 흐름의 비밀을 부분적으로나마 읽어낼 수 있고, 읽어낸 그같은 논리가 삶에 적용되어 순응으로 적응되게 한다면, 그것을 삶의 이상이나 행복 등을 일정부분이나마 향유해가는 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양과 음, 나아가 남성(남편)과 여성(아내)의 우주적 생태 본연의 위치와 그 본연의 사명이 거의 흔들림 없이 유지 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요사이 그녀는 재미나는 일을 하나 만든 것 같다. 또래 여인들끼리 모일 수 있는 무슨 모임회에 가입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 그 모임회의 구성원이 된 것 같아서다. 그곳에 다녀온 날이면 극도로 말 수가 많아진곤 한다. 그 모임에서 보고 들은 새로운 사건-사실들을 낱낱이 나에게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그녀의 그 얘기를 무조건 듣는다. 아니, 들어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하니까. 공자의 육십 이이순(而耳順)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본다. 인간들 거의는 타인의 얘길 듣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말이 거의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이다. 거기서 담아온 그 모든 걸 쏟아낼 때의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돌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기가 도는 만큼 신나 하는 것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씩이지만 신나하면서 말하는 그녀가 싫지 않을 때도 있곤 한다. 아니, 거의가 그렇다. 물론 짜증 스러울 때도 종종 있지만, 어쨌거나 그렇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생각해본다. 인간관계는 서로의 대화로 이뤄지고, 대화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듣는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그것은 인격을 지닌 인간 관계성립의 기초이면서 최상의 가치라고 말이다. 그것은 친구와 동료, 그리고 선후배간은 물론, 가족관계에서 조차도 불변의 도그마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부부와 부자간에도.
그래도 그녀에게 한가지는 분명한 게 있는 것 같다. 어떠한 경우라도 내가 밥은 굶지 않게 챙겨주려 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밥상을 차릴 땐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지금에와선 설거지 만큼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시키려 들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그점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곤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 그러한다. 밥은 꼭 차려주려 하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부분은 어렸을 적 나를 그같이 대해주셨던 내 어머니를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혼자 살으셨던 어머니는 들일을 나가실 때나 마실을 나가실 때나, 그리고 5일장이 서는 날 그 장을 향에 떠나실 때도 반드시 그러하셨으니까.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다. 비대면 시절이라 많이는 모일 수 없어 서너명으로 제한돼 있지만 어쨌거나 모임이 있는 날이고, 그녀는 그 모임에 참석하러 가고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저녁이 아닌 점심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출발 전 그녀는 아래층 거실에 있었고, 나는 2층 서재에 있었다.
그녀는 차를 몰고 나가려 하면서 "나, 간다" 라고 짧게 내가 있는 2층 서재를 향해 소리를 내고 떠났다.
한참 후, 서재에서 이것저것 들춰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나는 배가 고파 왔다. 하여 식탁이 있는 부엌방으로 내려가 봤다.
그리고 그때, 나는 또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가면서 차려놓은 내 점심상을 볼 수 있었던 게 바로 그것이다. 송편을 비롯, 각종 명절 나물 등을 차려놓고, 언제나처럼 랩으로 그것들을 예쁘게 싸서 가지런히 차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밤 대추 등이 들어있는 오곡밥을 지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는 메모를 남겼다. "나 없어도 꼭 밥 먹어 ~ 꼭꼭 씹어 삼키구" 라고 써있는 메모였다.
그 명절음식과 메모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머니와 그녀의 얼굴이 겹치고 들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꼭 그러셨고,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랬던 까닭이다.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나는 얼른 그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밥상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해서 나는 눈을 지긋이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더욱 떠올려보았다. 어머니의 성화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죄의식이돼 가슴을 치고 드는 듯했다. 어머니를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도 떠올려 보려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다시 한번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부탁올렸다. 지상에서 얻지 못한 깨달음을 천상에서 얻어 하나님의 심정권과 찬일국의 주관권에 머무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해올린 것이다.
잠시 후,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밥상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함께 살아오면서 미움도 더러 있었지만 고마움도 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밥을 먹으면서는 더욱 그랬다. 어머니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아니 그 마음이 절로 일었다. 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국 땅에서 맞는 추석으로 기쁨을 준 식탁이었던 까닭이다.
의미를 담아.
2021년 9월 20일
시카고에서 전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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