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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38.大帝國의 沒落 原因과 指鹿爲馬. 狐假虎威. 狗尾續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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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38.大帝國沒落 原因指鹿爲馬. 狐假虎威. 狗尾續貂

    대 제국의 몰락 원인과 지록위마. 호가호위. 구미속초

1.지록위마(指鹿爲馬)

진시황제의 수하에는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환관(宦官) 조고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고사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이다. 지록위마란,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로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여 보고자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부친이 죄를 범하는 바람에 조고의 어머니는 관노(官奴)가 되었다. 이일로 인해 그는 노예라는 미천한 신분으로 출생했다. 하는 수 없이 조고는 어려서 거세를 하고 궁으로 들어가 궁의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신분 낮은 환관이 되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덕분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궁중예법을 몸소 익혀 나라의 법률에 정통하였고, 그런 그의 영명함이 진시황제의 눈에 들어 제법 높은 관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에도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고 머리를 조아리는 등 온갖 수모와 치욕을 다 참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조고는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세상의 권력을 움켜쥐고 자신을 천대했던 귀족문벌 사람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고야말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의 복수심은 극에 달했다.

 

조고는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를 따라 여행하던 중 시황제가 병사하자, 당시의 승상 이사와 짜고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명장 몽염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또 시황제의 용렬(庸劣)한 막내아들 호해를 시황제를 이은 2세 황제 자리에 앉혀놓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다. 또한 평소 정사에는 별관심이 없었던 황제 호해에게 참소(讒訴)하여 승상 이사를 죽이고 스스로 그 자리에 앉아 횡포와 만행을 저질렀다. 이사가 죽은 후, 진나라의 권력은 이제 완전하게 조고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조고는 자신의 위세를 과시도 할 겸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도 할 겸 겸사겸사 황제 호해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폐하, 천하의 명마를 한 마리 바치오니 부디 거두어 주시오소서라고 하였다.

호해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조고에게 물었다.

승상, 저건 사슴이 분명한데 어찌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승상 조고는 매우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건 분명히 말입니다. 폐하께서만 어찌하여 사슴이라고 하십니까?”

호해는 그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좌우의 대신들에게 모두 물었다.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저것이 말로 보이오?”

 

대신들은 조고의 눈치를 보다가 대체로 그렇다고 대답하였으나, 더러는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했던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였다는 데서 비롯된 고사 지록위마의 유래이다.

 

진나라의 멸망은 진시황이 죽으면서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조고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황장자 1인과 황제 한 명을 죽였으며, 유능한 정치가이자 경세가인 승상 이사를 죽였으며, 진나라의 대들보인 장군 몽염과 몽의 형제를 죽였다. 아울러 진시황의 공자와 공주 30~40여명을 죽였으며 수 십 명에 달하는 대신과 수 백 명이 넘는 그들의 가족을 죽였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백성을 죽였다.

그는 정치권력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 한 일이라고는 사람을 죽인 일 뿐이었다. 오로지 비천한 신분의 굴욕과 열등감을 복수하기 위하여 그는 희대의 살인광으로 역사에 등재되는 인물이 되었다.

 

2. 호가호위(狐假虎威)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비유, 기원전 4세기 초엽, 초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사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모르오.”

하오면 들어 보시오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 즉 전하의 강병이옵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3. 구미속초(狗尾續貂)

개 꼬리로 담비 꼬리를 잇다. 불필요하게 관직을 함부로 주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출전>

()나라를 창업한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 재위 265290)은 진 왕조의 통치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한고조 유방이 사용했던 제도를 답습하여 일족의 자제들을 각지의 왕으로 봉했다. 사마염의 숙부인 사마륜(司馬倫)은 조왕(趙王)에 봉해졌다. 사마염이 죽자 아들 사마충(司馬衷)이 그 뒤를 이었으니 이이가 바로 혜제(惠帝, 재위 290306)이다.

 

사마염은 죽기 전에 황후 양씨의 아버지 양준(楊俊)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이 결과 황후 양씨는 황태후가 되었고, 정치적 실권은 양준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에 혜제의 황후인 가황후(賈皇后)가 왕족들을 끌어들여 쿠데타를 일으켜 양준을 죽인 후, 권력을 장악해 버렸다.

 

가황후의 가씨 천하는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가황후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친정 동생이 낳은 아들을 자기가 낳은 것처럼 위장해 아들로 들이고, 이 아이를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황태자 휼()을 폐한 후 살해해 버렸다.

 

그동안 가씨 정권을 무너뜨릴 기회만 노리고 있던 조왕 사마륜은 군사를 일으켜 가씨 정권의 중심인물들을 모두 체포, 살해해 버리고 대신 손수(孫秀)와 공모하여 가황후를 폐서인하고 유폐한 후 금설주(金屑酒, 금가루를 넣은 술, 고대의 제왕들이 죄를 지은 신하들에게 자살할 것을 명하며 함께 내리는 술)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그리고 사마륜이 스스로 황제의 위에 오르고 혜제를 태상황으로 받들었다.

 

그러자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은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과 연합하여 황제를 칭한 사마륜을 죽이고 다시 혜제를 황제로 세웠다. 제왕 사마경이 혜제를 보좌하고 나머지 왕들은 각자 군사를 돌려 자기 지역으로 돌아갔다. 이 내란은 무려 16년 동안 계속되다가 막을 내렸는데, 이를 팔왕(八王)의 난이라고 한다.

 

사마륜이 황제가 되자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도 덩달아 벼슬을 하게 되었으며, 함께 모사를 꾸몄던 자들은 모두 단계를 뛰어넘는 승진을 했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종들과 심부름꾼들까지도 작위를 주어, 조회를 할 때마다 초선관(貂蟬冠)이 자리에 가득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담비가 부족하니 개 꼬리로 잇는구나.”(其餘同謀者咸超階越次, 不可勝記, 至於奴卒斯役亦加以爵位. 每朝會, 貂蟬盈坐, 時人爲之諺曰, 貂不足, 狗尾續.)

 

이 이야기는 진서(晉書) 조왕륜전(趙王倫傳)〉》에 나오는데, 관작을 남발하다 보니 모자에 장식하는 담비가 부족하여 개 꼬리로 대신했다는 이야기에서 구미속초가 유래했다. 구미속초는 어떤 일이 앞부분은 잘되었으나 뒤가 잘못된 경우를 비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나라의 제도에 의하면 황제의 측근 신하들은 모자 측면에 담비() 꼬리를 꽂고 앞에는 매미() 장식을 달아 황제의 총애와 믿음을 받고 있다는 것을 표시했는데 이를 이르러 초선관, 혹은 초선이라 한다. 이런 장식은 황제의 허가가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오늘의 敎訓

중국 최초의 대 제국을 창건했던 진시황제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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