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謙遜)의 향기(香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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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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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謙遜)의 향기(香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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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아산의 배방읍 중리에 가면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고택(古宅)이 있습니다. 그는 개성에서 출생하였지만 10세 때에 고려 말기의 충신 최영 장군이 살았던 집인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산시청 광장에 가면 고불을 기리는 석상이 있고, 그 분의 대표시인 <강호사시가>가 오가는 시민들에게 여운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로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관직을 두루 섭렵(涉獵)하셨던 유명한 재상이었고, 모범적인 청백리로서 한국 역사에서 공직자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 되어 왔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그가 19세 때 파주 군수로 부임하여 무명선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제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러자 무명선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倨慢)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녹차 한 잔을 마시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못 이기는 척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잔을 넘쳐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따랐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라고 그가 말했지만 스님은 계속 차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화가 잔뜩 난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찻물이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이 망가지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말 한 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세계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에 대하여서는 너그럽지만 타인의 잘못에 관하여서는 인색(吝嗇)하기 쉽습니다. 지식이 때로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도 하지만 더러는 그와 반대로 자신을 교만의 올가미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이 일화는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추는 법을 알아야 할 교훈으로 여겨집니다.
벼나 보리는 익을수록 농부의 정성과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지만 어찌하여 사람은 그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의 가치란 권력이나 지위 혹은 물질로 평가되기 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內面)의 인간미와 사랑의 실천여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만방자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남을 얕잡아 본다면 자기 얼굴에 오물을 던지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알면 알수록 도도해지고 교만할 경우에는 오만(傲慢)의 늪에 빠져서 독단(獨斷)과 독선(獨善)과 독주(獨走)라는 삼독(三毒)의 노예로 전락하기 쉬울 따름입니다. 이 삼독에 빠져서 오명을 남긴 이들이 많습니다. 풍부한 지식에 겸손이 더해질 때 이 둘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선량한 백성들은 정도(正道)의 길을 가고 있지만, 때로는 작은 이익을 쉽게 얻으려고 눈이 먼 사람들이 흙탕물에 합류하기도 한다는데 그 심각함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겸손(謙遜)이 꽃의 향기와 같다면 교만(驕慢)은 오물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와도 같습니다. 전자는 행복으로 가는 징검다리와도 같아서 그것은 감사와 감동 그리고 감격과 감탄이라는 사감(四感)을 제공하고, 후자는 불행으로 가는 디딤돌과 같아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의와 불신이라는 사불(四不)의 심사(心事)를 초래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에 있습니다. 행복은 자신의 욕망(慾望)이 충족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욕망은 무한대의 성질을 갖고 있어서 끝이 없습니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급급해 하는 그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욕망의 충족이라는 불가능을 행하느니 차라리 그 욕망의 보자기를 비우는 것이 바로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행복이란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 있고 불행이란 없는 것에 대한 불평에서 기인합니다. 행복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삶의 지혜이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족(自足)할 수 있는 의식의 절제이며, 인내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고불 맹사성 정승의 미숙한 자만과 교만이 무명선사 앞에서 무안(無顔)을 당하였듯이 오늘날 지식인이요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일부 엘리트 계층의 식자(識者)들이 지식과 기술과 노하우로 연유하여 겸손의 미덕을 잃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식자우환(識字憂患)으로 간주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겸손한 태도와 겸양의 미덕과 겸허한 자세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선량한 세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600년 전에 우리의 이웃 마을에서 사셨던 고불의 생애는 겸손의 향기로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문득 한 달 전에 무소유로 사시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고불과 오버랩됩니다. 겸손의 향기를 풍기는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들의 행복이 아닐까요?
선문대학교. 교목실 윤 덕 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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