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수님의 새 아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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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지금 그자리에 있는것은 그들이 해왔던 선택의 총합입니다.
지구는 이우주의 어느곳 보다도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찬곳 입니다. 바로 생명의 출현인것
입니다. 무엇이 지구의 생명을 잉태하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의문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지극히 曖昧模糊(애매모호)한 답변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들어진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은 우리들이 아무리 그렇듯한 설명을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들에겐 또 하나
의 思索(사색)에 잠기게 할테니까요? 우리들이 말하는 事實(사실)이란 단어로써 얼룽뚱딴 넘어가
려고 하지만 創世記(창세기)에서는 創造(창조)라는 단어로써 具體的(구체적)으로 이 宇宙의 誕生 (탄생) 과정을 그려서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있는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100% 맞는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퍼즐가운데 상당 부분들은 우리들이 “믿음”이란? 내용들로서 맞추어가는 그런부분이 남아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說得力(설득력)을 가지고 接近
(접근)한다는것 입니다. 우리들이 人生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원하든지 혹은 拒否(거부)
하든지를 막론하고 宿命的(숙명젹)이고도 運命的(운명적)문제들이 父子(부자)관계를 중심삼고 生成(생성) 되어지고 있다는것이 문제라는것입니다.
父子關係가 있기전에는 夫婦關係 현재와 과거 그리고 先代(선대)와 後代(후대)를 잇는 할아버지,
할머니,손자,손녀…이런 일가친지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唯一(유일)하게 聖經(성경)응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처음으로 登場(등장)하게되고 특히 천사장 누시엘과 해와의 不倫(불륜)한 墮落(타
락) 인하여 우리들이 原하지 않았던 神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로인하여 오늘날 인류의 운명이 罪惡가운데 놓이게 되었다는 다소 荒唐(황당)하지만 사실적인 내용들로서 나타나게됩니다.
위와같은 내용들이 종교가 인류발전사에 있어서 가장 原初的(원초적)이며 實體的(실체적) 내용들
로서 오늘날 人類(인류)가 있는데 있어서는 “반드시”라는 用語(용어)로 원시공동사회에 샤머니즘 혹은 現代라는 文明과 더불어 人類文明의 한복판을 貫通(관통)하는 基督敎文化도 결국에는 孕胎
(잉태) 되었다는 事實(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그와같이 運命的이고도 宿命的인 우리들 삶의 대부분의 관계가 縱(종)과 橫(횡) 혹은 상하,전후,좌
우를 통하여 連結(연결)되어 있는것이 오늘날 韓國이라고 하는 사회도 그뿌리를 파헤쳐보며는 民草(민초)들의 땀방울들이 함께 뭉쳐서 이루어낸 內容들이 아닐까생각되어 지는것입니다.
예를들어서 新羅時代에 “이차돈”의 순교로 인하여 오늘날 佛敎의 바탕이 形成되었고 그밖에도 우
리들이 아지못하는 수많은 先志先烈(선지선열)들이 그들의 삶을 불태워 가면서 살았왔었으며 그옛날에 “왕오천축국전” 통하여 아시아의 끄뜨머리에서부터 걸어서 여행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
는 民草들을 佛經을 중심삼고서 人生을 살아가는 後學들을 위하여 얘쓰셨던 “혜초 스님”기상들
을 불러서 세워봄으로서 아! 나라고 하는것이 그러한 수많았던 因緣들의 結果物이란것입니다.
내가 아지못했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 바로 그자리에 있는것은 그들이 해왔었던 選擇(선택)의 總合(총합)입니다.”라는 말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現實(현실)되어 마주하게 되는것같습니다.
우리들이 現實을 중심삼고 맞이하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나도 아지못하는 많은 事緣
(사연)들이 숨어 있는것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부딪치는 夫婦關係,親舊關係,親戚關係,父子關係,손자,사위,며느리,사둔… 우리들의 수많
은 관계가 그 地坪을 넓혀가면서 因緣을 만들어 가는것은 아닐런지요. 그새로운 因緣들이 形成
되어 지면서 비로서 “나”라고 하는것이 “너”로 발전하고 더나아가서 “우리”로 발전하게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그우리속에는 우리들만의 獨特(독특)한 관계가 있기 마련이라는것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관계가 되어지기도하고 때로는 모두가 싫어하는 관계가 되어지기도 한다는게 문제가 되어지는
것만같습니다. 좋다 혹은 싫다 하는 그속에 담겨있는 意味(의미)라는것은 이렇듯이 한사람이 살
아가는데 있어서 絶對的인 影響을 미치는것같습니다.
언젠가 TV를 보게되는데 나도 모르게 나태주 선배님의 인생에 대한 여러 哀歡(애환)
들을 글로서 表現(표현)해 놓은것이 있어서 이것이 바로 꼭 맞는다고 할수는없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마음가운데 울컥하는 共感(공감)이 있어 적어버려합니다.
서툴지 않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언제나 사랑은 서툴다. 중에서…. 꽃을보듯 너를 본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오늘일은 오늘일로 충분했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을 만났고 견딜수 없는 일까지 견뎼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셈이다. 그렇다면 내 自身을 칭찬해주고 보듬고 껴안아 줄일이다. 오늘만 믿고 기다린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다려라 오늘일은 오늘일로 충분하다. 너무 잘할려고
얘쓰지 말아라 너무 빠르다는 것예요 이속도감에 빠져서 조금 늦으면 패배감이 들고 속상하고
그러지 않을까?
하는 내용인데 물론 이내용들이 앞뒤가 맞지않을수도 또 잘못된 내용 일수도 있지마는 이글에 흐
르는 내용들은 대충 나태주 선생님의 느낌이 그대로 傳達(전달)되어 지는것같아 아! 한사람이 平生(평생)을 살아오는것 처럼 우리삶을 살아오는 귀한것같아 적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한사람이 살아온길을 통하여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길들을 조용히 吟味(음미)해
보면서 아!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悔恨(회한)들이 나를 움켜잡고 꼽씹어 보는게 人生이
겠지만 충청도의 부여인지 공주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서울을 오가면서 우리들에게 까지도 담담히 풀어가는 노시인의 인생에 대한 獨白(독백)들이 비단 자신만의 감정은 아닐것입니다.
제 자신의 삶을 되돌이켜 보더라도 어떤 부분은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외치고 싶었던 순간들 이었
지만은 어떤부분들은 감추고 싶었던 나만이 숨겨놓고 싶었던 그런부분들인것도 事實인것 입니다.
그렇지만 그모든것들이 오늘의 나를 形成(형성)해 가는데 決定的인 역활을 했었다는것은 否認(부
인)할수없는 事實이라는것입니다.
모든것을 담담히 받아들여 지는게 아닐런지요. 우리들이 길을 걸을때 부딪치는 모든것들이 때로
는 걸림돌이 되어지기도 하지마는 꼭 나에게 필요한 주추돌로서 디딤돌 역활을 하지 않았나하는 그런 생각마져 들어지는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내가 넘어지고 엎어질때도 있지마는 엎치락 덮치락 넘어졌을때는 걸림돌이지마는 개
울물이 나타났을때는 멈춤거리는 내 자신이 누군가 똑같은 나와같은 狀況에서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디딤돌을 보았을때 나도 모르게 감사함을 느꼈었던 기억이있을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이 각자의 인생길을 가는데 있어서 때로는 걸림돌 때로는 디딤돌로서 되기도 하는게 우리의 인생길이 아닌지 모르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 그자리에 있는것은 그들이 해왔던 選擇(선택)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강하게 들어지지만 이아침에 나는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아침인것같습니다.
뉴욕에서 한 연 수올림 2022년 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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