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내온 편지/ 또 한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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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긴 채 이 해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는 이 해를 바라보려니 "벌써" 라는 말과 함께 세월의 빠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60대에는 60마일, 70대엔 70마일로, 자신이 살아온 연령에따라 그것 흐름의 속도를 느끼게 된다는 세간의 말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같은 시간이고 같은 세월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 그리고 마음가짐에따라 흐르는 시간의 속도와 그 시간의 의미를 달리 느끼고 달리 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휴가 날짜를 기다리는 병사의 시간과 귀대 날짜를 하루 남기고, 그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 병사의 시간이 물리적 시간으로는 같으나 마음으로 느끼는 의미의 시간은 현격히 다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하던 일(가게) 정리하고 살아가고 있는 터라 시간 여유를 제법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여 아침 운동이나 브랙퍼스트, 그리고 산책이나 나들이 등의 여가시간을 좀 더 여유있고 풍요롭게 갖고 싶어 해왔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하고, 책을 읽을 때나, 글 쓰기 할 때나, 그리고 차 한잔을 마실 때에도 시간의 여유와 함께 편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넉넉히 마음을 쓰면서 살아보고 싶어한 것으로 말입니다.
얼마 전, 다정하게 마주앉아 빵을 굽고, 그것 한조각을 손에 든 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정담을 나누면서, 노년의 마음을 따뜻하게 키워가고 있는 어느 노부부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크지 않은 집을 짓고 76세와 74세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는 스티브와 로라 부부였습니다. 큰 집을 갖지 않고, 많이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작은 그 집 뒷 뜰에 앉아 정담을 나누면서 생각의 힘과 노년의 정을 키워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던 그 두분의 삶이 값이 있어 보였고, 넉넉함이 또한 있어 보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마음을 어떻게 다듬어왔고, 어떻게 그 삶의 집을 지어왔길래 노년의 삶을 저토록 여유롭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보면서, 그 마음과 삶을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흉내내기식 일지언정 그같은 삶으로 일상을 열어가고 싶은 욕심을 가져보았으니까요. 그래보고 싶다는 의욕 하나민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같은 생각을 하고 들었던 것입니다. 시간에 여유를 갖는 마음, 차 한잔으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마음,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 그같이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이 흉내내기로 가질 수 있을 성싶으냐 하면서도 그래보고 싶다는 의욕을 버리지 않은 채 그래보고 싶어한 것입니다. 많이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시간에 여유를 줄 수 있고, 자신의 시간에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조급함이 없고 넉넉함이 있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처음 가져본 탓인지 그래보고 싶었던 그런 시간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청소년 시절은 물론, 청장년이 되어서도, 아니 중년을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삶 속에는 언제나 쫓기듯 살아온 듯한 조급함과 긴장감이 있었고, 그것이 내 삶의 시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아니라 앞만보고 달려온 삶으로 채워고 들었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이오 공간에서 나고자란 한국인 거의가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 시대에 나고자란 탓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 시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서러움과 고난을 준 그 가난과 굶주림의 시간들이 나의 삶에 긴장과 조급함을 불러 일으켜온 것 같다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간섭하고 드는 나의 시간을 대해 여유를 주고 안주고는 나의 마음과 의지에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으면서 그 모델 부부의 싦의 환경을 닮아보고 싶은 생각을 가져보려 합니다. 도를 닦는 수도승처럼, 마음을 다듬었을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니다.
한국방문의 소회를 밝힌 어느 교포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질만큼 가졌고, 갖출 것 다 갖춰놓고 살아가고 있는 재미 동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그의 "호강에 초쳐 요강에 똥 싸는 국민들"이란 제하의 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한국 체류기간에 자신이 보고 느낀 점과 자신이 만나본 지인들, 그리고 한국사회의 곳곳을 살피면서 얻어낸 결론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들었습니다. 감정이 다소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는 없었으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는 생각으로 소개해봅니다.
한국에 가보니 웬만한 동네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 있었고, 각 가정집 뿐아니라 공중화장실까지도 비데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차 티켓을 뽑는 촌스런 행동을 하지 않고 우아하게 자동인식 장치로 주차장에 들어가고, 대중교통은 카드 하나로 해결하며, 어느 집을 가도 비밀 번호나 카드 하나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자동차마다 블랙박스가 설치돼있으며, 집안의 전등은 전등마다 LED이고, 심지어 콘센트까지도 이모컨으로 켜고 끄며, 수십개의 스포츠 채널은 물론, 그외 채널이 끝없이 나오고, 지하철, 고속철, 음식점 상점가, 심지어는 버스 정류장에서까지도 자동으로 초고속 와이파이가 잡히며, 죽니사니 하면서도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고급차 한대 안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으며, 의료보험은 미국보다 열배나 싸고, 치료비 또한 열배 정도나 싼 나라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며 아우성이더라는 것입니다. 하여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왜 그들은 갖출 것 다 갖추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삶과 생활을 아우성을 치며 지옥이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음을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냉장고를 두 세개 가지고 있고, 고기를 김치 먹듯하며, 사시미를 고기 먹듯 먹고, 고급차를 몰면서 편하고 호화스런 주택에 살면서도 만족과 흡족함을 모르고 불만족과 불평으로 가난과 위기를 노래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나라, 나의 조국,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라고 읊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으며, 남보다 더 앞서고 싶어하는 비극의 경쟁의식이 그들을 불만족의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미국생활이 20년 전, 한국생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고백하면서 였습니다.
이 글을 읽어가면서 다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할지라도 짚어볼 대목들은 군데군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면서 닮고 싶어했던 노스캐롤라이나의 그 노부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유소년 시절은 물론, 청장년 때부터 작은 행복만들기로 자신들의 생을 익혀온 듯한 그들의 삶과 그들의 마음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은 큰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세속의 언어를 생각해보면서 입니다. 불만족과 불평에 의해 떨어진 그 지옥인들의 모습은 마음 일부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삶의 군상들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시간에 여유를 주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지 못하는 불만족의 편린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체 어디를 향해, 왜들 이렇게 뛰어들 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이어령 선생의 저서 신한국인의 한 꼭지로서의 그 언어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자신의 삶의 시간에 여유와 한가함을 주지 못하는 마음을 생각해보면서 젊은 시절에 본 적이 있는 맹자의 구방심 편의 한 대목을 또한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이 길을 잃어버리고도 따라가지 않고, 마음을 잃어버리고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프고 슬프구나, 저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르는구나, 사람이 학문을 하는 까닭은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니라 라고 설파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기로이부유 방기심이구지구 애가 인유계견방 측지구지 유방심 이부지구 학문지도 구기방심 이지의, 舍其路而不由 放其心 而不知求 哀哉 人有鷄犬放 測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文知道 求其放心 而之矣)
고장난 마음을 치유하는 게 우선이고 사람살이의 가치와 행복은 그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하면서 자신들의 삶이 누리는 삶으로 들어섰는 데도 지옥으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그들을 생각해봅니다.
많이 지니지 않았으나 자신들의 삶의 시간에 여유를 주면서 더 깊은 정과 더 넓은 마음을 키우고 만들어가는 그 모델 부부를 한번 더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더하여 원리와 말씀, 그리고 뜻과 섭리사상을 기초하여 그 위에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사랑으로 집을 짓는 2022년도의 삶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부부간의 정(情)과 의(義),와 사랑의 심연에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2022년의 삶이 되기를 또한 희망해봅니다.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보다 여유있고 보다 느긋한, 그러면서도 편안한 마음이 있는 나의 시간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새해를 맞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입니다.
쫓김과 긴장이 없는 나의 시간과 세월을...
2021년 12월 30일
전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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