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漢詩57. 絶命詩(절명시) -黃玹(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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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漢詩57. 絶命詩(절명시) -黃玹(황현)-
絶命詩(절명시) -黃玹(황현)-
(一)
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未然. (난리곤도백두년, 기합연생각미연)
머리가 다 세도록 난리를 겪었오,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네.
[절명시(絶命詩)]; 한일합방의 비보가 전해지자 황현은 ‘오백년 동안 선비를 길러온 나라가 망한 날에 죽는 선비 하나 없다면 그 꼴이 뭐가 되겠느냐?’고 하며 이 시를 남기로 음독자살 하였다.
[백두(白頭)]; 머리가 세다, 나이가 들다,
[기합(幾合)]; 얼마, 몇 번,
[연생(捐生)]; 목숨을 버림, 죽음,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 (금일진성무가내, 휘휘풍촉조창천)
오늘은 정말 어쩔 수 없이 죽으려 하네,
바람에 흔들리는 밝은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추네.
[무가내(無可奈)]; 어찌할 수 없음,
[휘휘(輝輝)]; 빛이 밝은 모양, 붉은 빛의 모양,
(二)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조수애명해악빈, 근화세계이침윤)
하찮은 짐승도 슬피 울고 산천도 찡그리니,
무궁화 삼천리 정녕 망했단 말인가.
[근화(槿花)]; 무궁화 꽃, 우리나라를 상징함,
[침윤(沈淪)]; 물속에 가라앉다, 영락하다,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추등엄권회천고, 난작인간식자인)
가을 밤 책 덮고 역사를 생각하니,
글 배운 사람의 처신이 진실로 어려운 줄 알았노라.
[엄권(掩卷)]; 책을 덮다, 독서를 그만두다,
[천고(千古)]; 역사, 옛일,
[난작(難作)]; 처신하기 어려움,
[식자인(識字人)]; 글을 배운 사람, 지식인,
1. 작자 소개
① 황현(黃玹)은 조선 말기 철종, 고종 연간의 문인으로 자(字)는 운경(雲卿)이고, 호(號)는 매천(梅泉)이다.
② 1885년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했으나 구한말의 시국이 어지러움을 한탄하면서 향리에 은거했다. 1910년 한일합방이 있게 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③ 영호남 선비들이 성금을 걷어서 1911년 「매천집(梅泉集)」을 발간했으며, 한말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근대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2. 작품해제(作品解題)
① 황현은 과거 시험에 합격했으나 시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은거하여 나라를 걱정한 애국지사였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나라를 걱정하고 충의와 절개를 중요시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② 첫째 시에는 나라가 망했어도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면서 지식인의 나약함을 스스로 책망하고 있다. 머리털이 다 세도록 난리를 많이도 겪었지만 이보다 더한 난리는 없었다. 그래서 그 동안 몇 번이나 죽으려다 죽지 못한 것을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목숨을 끊으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③ 다음 시에서는 지식인의 나약함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쓸쓸한 가을밤에 책을 덮어놓고 옛일을 생각하니 글 배운 사람의 처신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알겠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이제 목숨을 끊어서라도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 황현 [黃玹, 1855 ~ 1910] 조선 후기의 학자 ·우국지사.
본관 장수(長水). 자 운경(雲卿). 호 매천(梅泉). 전남 광양(光陽) 출생. 조선조 4대 명상의 한사람으로 꼽는 황희(1363∼1453)를 선조로 하는 매천은 동복 현감을 지내다가 임란때 김천일 장군과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황진(黃進)의 후손이기도 하다. 선대(先代)는 대대로 남원에서 살다가 아버지 황시묵이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로 옮겨 살면서 황현을 낳았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황현은 고종 20년(1883)에 왕의 특명에 의해 실시된 보거과 첫 시험에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을 얻었는데, 시골사람이라는 불합리한 이유로 자신이 2등으로 밀려난 사실을 알고서 잇달아 있는 시험을 모두 내쳐 버리고 귀향했다. 이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 고종 25년(1888)에 생원회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은 뒤 청나라와 일본의 경쟁, 고종의 어지러운 정치, 명성왕후의 독점적인 세도정치 등 부패가 극심한 세태를 보고는 구례로 내려와 역사와 경세학 등 독서와 시문 짓기에 열중하였다. 그 사이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청일전쟁을 비롯하여 이듬해 명성왕후 시해사건, 아관파천등이 잇달아 일어나자 그는 어지러운 세대를 후손에게 바로 알려주기 위해 경험하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매천야록(梅泉野錄)·오하기문(梧下記聞)」등의 책으로 남겼다. 1910년 8월 22일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었다는 소식을 한달 뒤 전해들은 그는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수와 유서를 남긴 채 많은 아편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영 ·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이 출간되고, 한말 풍운사(風雲史)를 담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史料叢書)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밖의 저서에 《동비기략(東匪紀略)》이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지금까지 古典漢詩를 애독해 주신 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연재하는 동안 제가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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