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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눈보라 고개 너머의 약속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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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눈보라 고개 너머의 약속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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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잔설이 녹지 않은 새벽 등산길

산허리에 덮인 눈벌에 누워 하늘을 본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약속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다.

약속에는 진한 눈물이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백제의 가장 아름다운 미녀인 도미의 아내

왕이 그녀를 원했지만 그녀는 왕을 속이고 눈이 먼 채 배에 의지해 서해를 떠도는 남편 도미를 찾아 나서고, 기어이 찾아내고 노를 젓고 저어 여러 날을 견디며 고구려에 망명을 한다.

너무나 눈물 나는 일이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도미의 전설에서 부부간의 눈물이 담긴 약속을 생각해 본다.

부부간의 약속!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니, 하늘이 헤어지게 하기 전에는 결코 누구도 이들 부부간의 혼약을 깨지 못하리라.

수 없이 아름다운 여인이나 남정네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가지만 그런 인간의 욕정을 이겨냄은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로 인함이다.

너는 나를 끝까지 따르겠는가?

예. 저는 죽음이 닥쳐와도 끝까지 당신을 따르겠나이다.

주여 제가 끝까지 당신 곁을 따르겠습니다.

이에 예수는 말씀 하신다.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이에 베드로는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기필코 당신을 좇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가 로마의 병정들에게 예수를 지목하고, 로마 병정은 예수와 함께 그의 제자를 잡을 때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처럼 세 번을 부인한다. 그리고 첫닭이 힘차게 새벽의 열림을 알린다.

약속의 반대는 기망이다.

남을 속이고 이용하며 희롱한다는 뜻이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그 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온갖 말과 행동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모두 다 구차하게 들릴 뿐 진실이 아니라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한다.

약속을 어김은 대개 이익 때문에 일어난다. 이익 중에서도 특히 권력욕이 가장 큰 이유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재중동포 위만이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을 배신함도 그래서 고열가 단군이 아들 세 명과 함께 강화도에 와 삼랑성을 쌓은 일도 위만의 권력욕 때문에 고조선의 명운이 마지막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 힘이 약하면 강한 쪽에 빌붙어 기회를 노리고, 기회로 인해 힘이 강해지면 자신을 도왔던 세력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인가?

모택동의 18자 전법의 구구절절이 새롭게 음미되는 한 새벽이다.

약속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병든 것처럼 걸어가는 호랑이의 기망이 필요하다, 호가호위하는 여우의 교활함이 필요하다. 곰처럼 그리고 황소처럼 묵묵히 나아가는 우직함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순진함을 넘어 아마존의 물처럼 무수한 생명을 길러내는 풍부한 영양이 많은 흐린 물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문경지우(刎頸之友)”

목이 달아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사형을 받을 위기에 있는 친구를 위해 목을 베이는 형을 받으러 약속을 지킨 의로운 친구가 떠오른다.

홍수로 인해 길이 망가지고, 길이 없어져 예정보다 늦을 수밖에 없었노라 는 땀으로 덮인 친구의 말에 왕은 진한 감동을 받고 마침내 두 친구를 사면해 주었지요.

목숨이 달아나는 위험은 모진 눈보라로 비유할 수 있다.

목숨이 달아나는 위험은 모진 비바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약속의 반대는 기만이다. 남을 농락하고 이용하며 의로움보다는 교활한 이익을 추구하는 부끄러운 것이다.

공자님은 주공을 늘 사모하셨다. 그 사모하는 주공이 늘 공자님의 꿈속에 있었다.

만년에 그가 늙었을 때, 아! 나도 이제 늙었는가 보다. 꿈에 주공을 뵙지 못하다니! 라고 한탄하셨다.

주공은 누구인가?

중국의 역사에서 주나라는 한족 최초의 통일국가이다. 성군을 욀 때 나오는 요순우탕문무주공에 나오는 주공이 바로 그 인물이다.

형님은 문왕이며, 조카는 성왕이다. 형이 나이 어린 아들을 동생인 주공에게 부탁을 하였다. 조카가 장성할 때까지 돌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동생은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당시 조카의 나이는 6살이었던가? 그 조카가 17세가 되자 삼촌인 주공은 11년 황제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조용히 산 속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감하였다.

수양대군과 한명회. 권남. 홍유성의 계유정난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조카를 죽이고,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이고 사육신과 무수한 신하를 죽인 수양은 악성 종양에 시달렸고, 권남은 많은 원귀에 시달리고, 원귀를 물리친 인연으로 얻은 남이장군도 세조와의 약속인 한 번은 꼭 목숨을 지켜주겠노라는 약속도 헛되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

한나라 4대 공신은 장량, 진평, 소하, 한신이다.

유방이 한나라를 드디어 건국하였으나, 그는 늘 자신보다 능력이 많은 4공신이 고맙고 감사하기는커녕 귀찮고 때로는 두려웠다.

유방은 어려움은 같이 하여도 즐거움은 같인 나눌 수 없는 작은 그릇의 인격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유방은 한신을 죽였고, 장량은 건국 후의 상황을 보곤 이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니 그곳이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 장가계가 아니던가?

생사를 다짐한 유방의 전우인 한나라 4대 공신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약속이란 아무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약속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늘을 두고 약속하지 마라. 하늘은 하나님의 궁전이 아니더냐. 땅을 두고 약속하지 마라.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 아니더냐. 다만 하나님께 내 몸과 내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할 뿐인 것이다.

성경은 두 약속이다. 하나는 예수님 이전의 약속인 구약이며, 하나는 예수님 이후의 약속인 신약이다.

나무아미타불! 법장스님은 나중에 아미타불이 된다. 그는 중생들을 위해 누구나 위급한 때에 자신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면 여러 변화된 몸으로 나타나 도와주겠노라는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을 불자들은 믿고 여기저기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즐겨 외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무수한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과 글자도 약속이며, 잠자리에 들면서 몇 시에 일어나야지 하며 자는 것도 약속이다.

약속은 그 사람의 최소한의 인격이다. 약속을 어겼을 때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를 상대에게 납득을 시켜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힘이나 돈이나 권력으로 어긴 약속대로 밀고 나가면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은 좀 바보 같은 사람이 지킬 수 있는 단어다. 약삭빠른 사람은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인격과 당당함을 귀하게 여기는 좀 바보 같은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사항이다. 바보 이반, 이 노크 아덴의 남편, 문경지우의 친구, 태성 산을 옮기려던 우공……. 모두 하나같이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세상은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많을 때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을 때 노약자나 젊은 여자들이 마음 놓고 밤길을 걸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돈과 권력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국민소득이 1,2위인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높은 자살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질도 풍요하지만, 정신도 풍요해야 한다. 영혼이 쑥쑥 자라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축복받은 나라가 아닐까?

네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내가 부활한 것처럼, 나를 믿는 너희도 부활하리라.

성경은 약속과 믿음의 종교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와 절대 선령의 천사를 믿으며 모든 종파의 도주들의 믿음의 연속이 기독교며, 불교며, 수많은 종교가 아닐까?

피천득과 아사 코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 '인연'을 읽어보면 그 제목은 약속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아사 코의 부모님이 대학생 피천득을 향해 앞으로 좋은 짝이 될 것이라는 말에 대해 대학생 피천득은 아사 코에게 반드시 안데르센 동화책에 나오는 뾰족집을 짓고, 그 속에서 같이 살겠노라는 약속을 하였다면 아사 코는 미군의 아내가 되어 시들어가는 백합처럼 쓸쓸히 살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대통령후보와 이명박서울시장과의 약속, 무수한 약속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진한 신뢰!

이해를 따질 때 IMF의 주역인 김영삼 대통령과 가까워야 된다는 판단이 서지 않았을까? 최소한 중립을 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 회장은 대선에서 지고 김영삼 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데 따른 자신의 무능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고 괴로워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역사는 호동을 더 칭찬하지만 나는 낙랑공주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호동을 위해 자명고를 찢고 나라도 부모도 모두 잃은 낙랑공주는 모든 것을 다 받쳐 사랑에 올인 한 멋진 천사 같은 사람이 아닌가?

호동은 사랑도 이용하고, 나라를 일으켜 세운 후 또 다른 사랑인 젊은 계모의 사랑으로 인해 자결하는 비운의 왕자임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강강필사인의왕이라는 말이 있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기는 듯 하나 결국은 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다.

고구려가 중국에 망함은 호동이 이긴 듯하나, 결국은 낙랑이 이긴 것으로 상징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진실의 힘과 순수의 힘!

사랑과 진한 믿음의 힘!

인간은 굴복하지만,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패배와 눈물로 얼룩진 진실과 사랑의 사람을 자신의 아들로 삼고, 자신의 딸로 삼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믿음을 잃는다면, 그 믿음을 토대로 하는 소망과 사랑을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네가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불치의 병을 고친다 할지라도 믿음을 토대로 한 소망과 사랑이 없다면 너는 공허한 나팔소리요, 햇빛으로 인해 바로 없어질 풀잎의 아침이슬이 아니던가?

약속에는 진한 눈물이 들어 있다.

약속에는 눈보라와 비바람 소리가 들어 있다.

약속에는 상대에 대한 진한 믿음이 들어 있다.

약속도 없이 기약 없이 헤어진 사람은 너무나 야속하다.

약속을 믿고 바위 고개 위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연인의 외로운 모습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돌이 된 망부석의 주인공 여인!

그러기에 성경에는 함부로 굳은 약속 곧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세는 정성을 다해 저 높은 푸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른바 성자는 천지도야며, 성지 자는 인지도야란 말이 바로 그 말인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을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을 충분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뒤 엎으려 한다면 그것은 상식을 뒤엎는 부끄러운 일이다.

금년 들어 칠순을 넘어서는 나이, 약속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는다.

우주보다도 무겁고, 바다보다도 넓은 것이 약속이란 두 단어임을 깊이깊이 깨닫는다.

단이 행지, 단호히 행함이 없이 이해에 흔들린다면 그의 약속은 벌써 울면서 날아가는 꿩 새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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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박순철님의 댓글

선배님, 댓글에 또 댓글을 달아 주시는 성의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홍성자 교감께서는 저와 각별한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선정여자실업고등학교"가 "선정관광고등학교"로 거듭날 때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학교를 위하여 많은 정성을 들이셨고, 특히 우정순 교장선생님과 같이
연말이면 선정의 세 학교를 성별을 하던 추억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먼 거리를 출근하시면서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오셨지요.
부하 직원들에게 통크게 접근하셨고, 직원들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하여
그들의 고생을 위로해 줄줄 아시는 어머니같은 분이셨습니다.

이제,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학교의 수호신으로 오셔서 영적 교육의 주관주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생전에 출근하시면 학교의 일에만 매달리셨던 것처럼,
육신의 갖가지 애환을 뒤로 하시고, 학교의 수호신이 되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홍성일님의 댓글

조향삼님,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1800가정 홈피에 들어와 글을 올릴 때마다 혹 나의 글이 귀한 가정회의 홈피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면서 조심스럽게 올리고 있는데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과찬을 해주셔서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흉금을 떨어놓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움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제 글은 나의 종족카페와 111ROTC 4기 동기회 카페에 전도를 목적으로 올리는 글이라서 우회와 은유의 내용이 많아 신앙의 고수들이 읽으시기에 불편이 많으실 줄 짐작됩니다. 널리 이해하고 봐주세요.

이존형님의 댓글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니다.
부모에게 공경하고,천법과,국법을 준수하고
세상살아가는 모든것이 약속의 이행에 연속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도 하나의 약속일 것입니다.
약속이 깨어지면 바로 사고가 납니다.

신앙생활도 역시 하나님과 약속의 한편인 것 같습니다.
크든 작든 약속은 소중하다고 생각됩니다.

약속은 실행이 되었을 때에 소중한 가치가 나타나리라고
생각됩니다.

귀하신 뜻을 담으신 약속에 대하여 감사를드립니다.

홍성일님의 댓글

정해관님, 안녕하시죠?
사적으로 물으신 권태순 권사님의 근황입니다.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셨는데 지난 2월 15일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다 방바닥에 주저 물러 앉으셨는데 그때에 잘못되어 오른쪽 엉덩뼈가 금이 가서 7주 진단을 받고 현재 안산에 있는 온누리병원에 입원 중이시고 막내아들(성원)은 작년에 선문대 졸업하고 보광그릅 공채에 합격해서 현재 훼밀리마트 충청영업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늘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바랍니다.

홍성일님의 댓글

박순철님, 모택동전법 16자 전법 맞습니다. 오타였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에 댓글을 달면서 인사도 드리고 가겠습니다. 선정에 근무하시면서 동생(홍성자교감)의 불의에 사고 시 이모저모로 보살펴 주셨는데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저의 허물을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금년 한해 늘 건강하시고 뜻하신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오늘도 동서고금을 통달하시는 해박한 지혜의 설교를 접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인물보다도 훨씬 못미치는 인격과 신심임을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私的으로) 권권사님의 건강과 똑똑한 막내의 근황이 궁금 합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선배님의 글을 읽고 보니 약속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우직한 바보들 이라야 약속을 지킨다는 코믹한 표현이 정말
이해가 갑니다.

좀 모자라는 듯한 바보들이 많아야 세상이 아름다와 지겠죠.
물론 역설적인 표현인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

박순철님의 댓글

모택동의 전법은 16자 전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진아퇴(敵進我退)
적주아교(敵駐我擾)
적피아타(敵疲我打)
적퇴아추(敵退我追)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후퇴한다.

적이 야영을 하면 우리는 적을 교란한다.

적이 피로를 느끼면 우리는 공격한다.

적이 후퇴하면 우리는 추격한다.

박순철님의 댓글

저도 원치 않게 후임자에게 배신아닌 배신을 당해 본 사람으로서,
선배님의 절절한 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저에게 주시는, 가슴 아픈 귀한 충고입니다.
정말로 약속이란, 눈물과 눈보라 고개 너머의 약속이라는 선배님의 지적이, 너무나 지당하게 들립니다.

굳게 약속해 놓고, 힘이 약하면 강한 쪽에 빌붙어 기회를 노리고,
기회로 인해 힘이 강해지면 자신을 도왔던 세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이 세상의 세속적 진실인가 봅니다. 저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기필코 당신을 좇을 것입니다."라고 장담했지만,
세속적 판단으로 예수를 배신하고, 뒤늦은 후회와 함께 괴로운 남은 인생을 살아 갑니다.


이제,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약속을 어긴 적은 없는가 ???
안타깝게도 여러 번의 약속어김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저는 반성과 배상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정년퇴직하면서 약간의 장학금을 학교에 내어 놓은 것도
그러한 반성과 배상의 연장선에서 내린 결론의 일부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정말로 약속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아니, 지킬 약속만 하겠다는 작심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귀한 옥고를 읽으면서, 저 자신에 대한 소중한 "회고와 전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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