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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호 신임협회장 취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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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호 신임협회장 취임사(전문)
먼저 부족한 이 사람을 이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은사와 사랑 앞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문형진 세계회장님, 문국진 이사장님, 그리고 참가정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뜻을 위해서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존경하는 선배원로식구님, 동료 목회자, 그리고 식구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재임 기간 중 훌륭히 임무를 수행 하시고, 수고를 많이 하신 양창식 회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오늘의 이 기반을 마련하여 주신 역대 협회장님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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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진 세계회장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모든 식구들은 초심의 심정을 잃지 말고, 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순수한 심정으로 돌아 가자! 그리고 낮은 자세에서 식구들을 섬기는 그러한 참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제 자신이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들어올 당시의 심정적 자세를 말씀드림으로써 협회장이 된 저의 결의와 각오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통일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0살 때 저의 모친이신 최원복 선생님께서 통일교에 나감으로써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통일교에 들어올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살아 왔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운동을 심하게 하다가 몸을 크게 다쳐 건강을 잃고, 절망 속에서 여러 해 동안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통일교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영감을 받고, 통일교에 대해서 수소문을 하여 교회를 찾아 가서 원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통일교에 입교한다는 것은 결국 저의 부친을 배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온 후에 들은 이야기 인데 참아버님께서 1965년 세계적으로 성지 책정을 하시느라 세계를 순회하시고, 한국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참아버님을 수행했던 저의 모친 최원복 선생님에게 갑자기 이러한 질문을 하셨답니다.

“아들이 3형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최원복 선생님은 처음 그런 질문을 받고, 놀라워 하시면서 이렇게 답변을 하셨
답니다.“제가 집을 나간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한번도 아들 3형제에 대해서 소식을 듣거나, 전혀 연락이 없고,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자 참아버님께서 “이제 아들 중에 한 사람이 들어올 때가 되었다.”고 하셨답니
다. 바로 그 때 그 시점에 저는 원리 말씀을 듣고 원리말씀을 깊이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전도를 한 믿음의 부모가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전도를 받고,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홀로 영감을 받고 뜻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저를 전도하신 믿음의 아버지는 참아버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통일교에 들어온 것을 눈치채신 저의 부친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교회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원리전도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월남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수천의 한국 군인들
이 목숨을 잃던 1967년경, 월남전에서 무도교관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에 자원입대 하여 월남 파병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월남에 무도교관으로 가게 되면 심리작전에 투입이 되어 사복을 입고, 민간인들과 자유롭게 접촉을 하게 되어 전도활동이 자유롭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선교사의 활동을 하기 위하여 월남전 자원입대를 결정하였습니다.

당시의 월남전에는 전ㆍ후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베트콩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민간인과 베트콩이 뒤엉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월남에서 무도 교육을 통해 베트콩에 동조
하는 월남인들을 아군 편으로 만드는 심리 작전에 투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월남 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찾아 다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하는 사회의 지식층 인사를 만나서 외적으로는 무도를 가르치고, 내적으로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월남으로 떠나면서 심각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제 진리를 찾았고, 참부모님을 찾았으니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을 각오하고 뜻을 위해서 헌신을 다해야겠다는 심각한 기도를 올리면서 월남으로 향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생명을 각오하고, 싸울 수 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 투입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월남에 가서 여러 사람을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중 YMCA총무와 국제학교 교장선생님 두 분이 한국에 와서 부모님께 경배를 드리고,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이렇듯 생명을 각오하고, 비장한 결의를 가지고 뜻 생활을 출발하였는데 이제 그러한 초심을 되살려서 신임 협회장으로서 다시금 비장한 각오를 갖고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월남에서 2년반 정도의 생활이 끝난 다음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저의 부친께서 다시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눈치 채시게 되었습니다.
저만 보면 화가 나셔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시면서 혈압이 자꾸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저에게 이러한 권고를 하였습니다.
“네가 통일교를 그만두던지, 집을 나가던지 해야 되겠다. 너의 아버지가 너만 보면 혈압이 오르고 얼굴이 붉어지고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러다가는 너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생겼다.”

그래서 저는 집을 나가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집을 나가는 그날 저의 부친께서 밥상을 잘 차려주셨습니다.
부친과 이별의 상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친이 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어머니가 나를 배반하고 통일교에 들어갔었는데,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너마저도 나를 배반하고 나를 떠나는구나”하시며 통곡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통곡하는 아버지 앞에서 저는 이러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부친을 버리는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겠느냐? 이제는 참부모님을 영원한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으로 받들고, 부친을 배반한 심각한 정도 이상으로,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참부모님께 진심으로 효도를 다해야겠다. 그래야만 부친을 버리는 오늘의 행동이 정당화되고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지금 내가 부친께 통곡의 눈물을 흘리겠지만, 이제 참부모님께 기쁨과 영광과 웃음을 드리는 그러한 효자의 모습이 됨으로써 언젠가는 부친께서도 나를 통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런 날을 반드시 오게 하리라!”이러한 결심을 하며 집을 떠나 뜻길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뜻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4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72년 2월에 부모님께서 미국에 불러 주셔서 미국에 갔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약 18년의 공적 생활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소련과 중국, 몽골을 중심으로 18년의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계 36년 해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부모님의 부름을 받아, 작년 5월 36년만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10개월 남짓 세계선교본부에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뜻밖에 한국 협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온 지 4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해외 선교활동을 한 지난 36년을 돌이켜 볼 때 부모님 앞에 한 없이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고, 불충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 앞에 가게 되면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런 심정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 부모님께서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셨으
니, 마라톤 선수가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서 안간힘을 다해서 뛰듯이, 초심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뛰겠습니다. 또한 겸손한 자세로 정성을 들이며, 낮은 자세로 식구를 섬기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협회장직을 수행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장황하게 협회의 방침이라던지, 사명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문형진 세계회장님과 문국진 재단이사장님의 지도하에 참부모님의 말씀과 지시를 중심 하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비전과 사명, 그리고 지침이 정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전과 사명과 지침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참부모님을 중심으로, 문형진 세계회장님, 문국진 이사장님, 그리고 참가정 전체를 아벨로 모시고, 저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 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겠지만, 우선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이요, 세계평화통일성전이며, 아벨UN의 기지인 천복궁을 이루어 드리는데 최선
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참부모님께서 지시해주신 가정연합의 근본 목표인 ‘식구의 심정과 영성을 부활 시키는 식구의 신앙화’와‘우리와 인연된 모든 사람들을 전도하고 교육하는 식구화 운동’, 그리고‘모든 사람들에게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인연을 맺어주는 축복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주인의식을 갖는 축복가정 양성’과 이를 통한 교회성장을 위해서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내적으로는 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서로 위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일으키고, 외적으로는 교회의 투명성과, 정직성, 공정성, 전문성을 도입함으로써 세상 누가 보더라도 통일교야 말로 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요, 조직적으로도 건강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서 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참자녀님들께서는 항상 모든 통일교인들이 통일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갖는 행복한 통일교를 일으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참부모님이 영원토록 빛나고, 영원히 빛나는 통일교를 만들겠다고 전심전력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013년 1월 13일까지 온 인류가 참부모님을 인정하고, 받들어 모시고,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천일국 실체화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계십니다.

저도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초심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남은 생애를 불태우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 이상의 각오와 결의가 되어 있을 줄 믿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진 합시다!

부족한 저를 항상 지도해주시고, 많은 성원 있으시길 부탁 드리면서 저의 취임사를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석준호 14대 가정연합 한국회장 약력>

출생 : 1944년 2월 6일 함경도 함흥 출생, 1살 때 서울로 남하

통일교 입교 : 1965년 8월

학력
- 1962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 1962년 연세대학교 상학과 입학(64년 도미)
- 1975년 미국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정치학 석사
- 1978년 미국 Nova Southeastern University 행정학 박사

경력
- 1967년~69년 : 육군무도 교관으로 월남전 참전, 월남 선교사 활동
- 1979년 : 미국 UTS 부총장 취임
- 1979년 4월 : 통일무도 창시
- 1982년~1993년 : 미국 CARP 회장
- 1985년~1993년 : 세계CARP 부회장, 미국협회 부회장, 미국교목협회 공동회장
- 1990년~현재 : 국제교육재단 회장
- 1993년~2008년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동북대륙회장
- 1997년~현재 : 세계평화무도연합 이사장
- 2008년 5월 18일~현재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선교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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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문정현님의 댓글

석준호 회장님의 일면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부모님의 원을 이루어 드리는데 초심으로
최고의 영광을 돌려드리소서 !!~

고종우님의 댓글

하나님께서 석 박사님이 협회장님 되시기까지 놀라운 역사의 연속 이였음을 감지 합니다.
부디 재임 기간중 참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시는 일인이실것을 믿습니다.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다가오는 우리가정회 총회시에 모실 석회장님의 취임사를 늦게나마 게재합니다.
복귀섭리사에서 피할 수 없는 탕감의 산 역사를 실감케 하는 감동적인 삶의 일부가 드러남을 보게 됩니다.
하늘이 택하신 지도자로서 새 시대에 영원한 승리의 이정표를 세우시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섭리의 중심 한국의 향도가 되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건승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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